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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1]
2003-01-27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과 우디 앨런

이제는 ‘거장’이라는 엄숙한 칭호가 어울릴 법하지만 찰리 채플린을 거장이라 부르는 게 어색하듯 우디 앨런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겸연쩍다. 아마 그의 익살에 배를 부여잡고 웃어본 사람은 누구나 비슷하리라. 현대 도시의 삶에 숨어 있는 희극성과 비극성을 발견하는 탁월한 작가지만 아마 우디 앨런을 좋아하게 된 첫째 이유는 그를 보면 진정, 확실히, 참을 수 없이 웃게 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박봉곤 가출사건> 시나리오를 거쳐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장항준 감독과 전복적 웃음이 숨어 있는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이우일씨가 우디 앨런의 세계에 입문한 과정도 다르지 않다. 웃음을 생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그들이(그리고 우리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디 앨런의 유머와 작가정신에 대해 바치는 헌사다. - 편집자

(<불어라 봄바람>이라는 시나리오의 막바지 수정작업이 한창일 때 <씨네21>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바쁘기도 하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잘 쓸 자신도 없고…. 원고라는 게 그렇지만 사실 고료도 얼마 안 되고 해서 점잖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흔쾌히 하게 되었다. 어찌 됐던 열심히 써봐야지…. 독자 여러분! 재미없거나 내용이 유치해도 귀엽게 봐주세요.)

“너 혹시 그 사람 알아” 격동의 80년대를 마감하던 해의 어느 봄날 대학 교정에서 어느 선배는 나에게 물었다. “누구” “으응… 우디… 앨런이라는 사람 말이야.” 선배의 어눌한 말투 탓에 난 한참을 웃었다. 그는 ‘우디 앨런’이라는 미국인의 이름을 독고영재, 선우은숙 같은 네 글자로 된 한국 이름처럼 발음했기 때문이다. 그 (선배 말투로) 우디… 앨런씨… 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이가 몇살인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난 그의 이름 네자()를 듣고 미친 사람처럼 킥킥거렸던 것이다.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웃기다니 코미디언 정부미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마감하는 서울의 남산 아래 교정의 봄날…. 그는 분명 이름 하나로 나를 웃겼다. 그 일이 있고나서 두달쯤 지나선가 학교 내 영화 동아리에서 국내 미개봉된 코미디 걸작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10평도 채 안 되는 강의실에서 필름이 아닌 3저의 요건(저입자, 저밀도, 저화질)을 갖춘 알 수 없는 출처의 ‘삐짜’ 비디오테이프로 상영회는 시작되었다. 몇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간간이 웃음이 터졌고… 잠시 뒤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이상한 올챙이 같은 타이즈 형태의 옷을 입은 남자 배우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역할은 놀랍게도 읍스! 정자였다. 김정자, 박정자나 초석루, 광한루 같은 정자가 아닌 남자의 생식기 안에 존재하는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정자들은 마치 정부기관을 방불케 하는 몸 속 기관의 통제 속에서 사정을 대비한 낙하훈련을 받기도 하며 언젠가 있을() 그날을 위해 불철주야 대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우주이자 세계인 남자는 여자와 섹스를 하게 되고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정자들에게 비상대기 명령이 떨어지고 정자들은 마치 특수부대 요원처럼 낙하산을 메고 결전을 대비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이야기는 1972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영화다.

근 100년을 긴장과 경직의 반복으로 정체돼 있었던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은 모두 이 기가 막히고 신랄한, 정말 골때리는 섹스코미디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당시엔 그럴 만했다. 모든 사회 분위기가 경직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다가 서서히 한쪽 구석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햇고.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그만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정신없이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와, 미국놈들도 이런 삼류 코미디를 만드는구나.’ ‘특히 저 빼빼 마르고 안경 쓴 번데기같이 생긴 놈 진짜 웃기네.’ 그때 옆에 있던 선배가 빼빼 마른 번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야. 우디… 앨런.’

…그렇게 미국이 낳은 유대인 천재감독과 나의 운명적() 대면은 시작되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난 빼빼 마른 미국 번데기가 내 존경의 대상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건 (선배 말투로) 우디 앨런도 마찬가지였으리라(헤헤 이렇게 쓰고보니 뭐 지금은 꽤나 친한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이리저리 비디오가게를 뒤져보고 수소문해보고 했지만 그의 영화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우디 앨런 영화가 거의 다 개봉되고 비디오로도 미개봉작들이 출시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겨우 구해서 본 영화가 <한나와 그 자매들>이라는 영환데…. (~씨익) 그의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난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중 한나로 나오는 우디 앨런의 조강지처 다이앤 키튼과 그녀의 자매들, 그리고 그녀의 전현직() 남편들과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삼각관계(사실 영화를 보면 한 4, 5각 관계는 된다)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보지 못할 톡 쏘는 유머와 위트의 정수를 담고 있다.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맛이다. 아무리 DVD가 나왔고 홈시어터가 발전을 해도 그 큰 스크린에 쾅쾅 울려대는 서라운드, 돌비, 울트라 뭐(남들 보기 쪽팔려서 아는 척할 때도 있지만 사실 난 사운드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이런 것들한테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장승 앞에서 눈 크게 부릅 떠봤자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우디 앨런의 명작들 <애니홀> <부부일기> <맨하탄> 등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은 참으로 크게 남는다. 그렇게 비디오로만 대하던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것이 아마도 <브로드웨이를 쏴라>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사동 사거리에 마를린 먼로상으로 유명한 그랑프리라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 자체도 나에게 참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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