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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3]
2003-02-04

어느 영화평론가의 고백,영리한 감독 장이모와 <영웅>이 불쾌한 까닭은?

<귀주 이야기> 이후 <인생>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그림자극을 만드는 바보 같은 남자. 역사의 격변기를 그저 착하게만 살아온 남자. 그 보잘것없는 인생을 그려내는 장이모의 솜씨는 의심의 여지없이 거장의 손길이었다. <인생>에서 장이모는 고정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색채로 화면을 버무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그 남자의 인생을 따라만 간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갈 때에도, 부인이 죽어도 그 남자는 ‘인생’이려니 하며 지나간다. <인생>의 장이모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세계를 조작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너무나 평이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준다.

국제영화제용 영화 혹은 자신을 위한 영화

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첸카이거와 장이모 등 5세대 감독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된 이유는 중국의 인민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국제영화제용 영화들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붉은 수수밭>과 <국두> <홍등>은 서구의 지식층 관객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영화다. 중국 대륙처럼 거대하고 거치른 에너지에 고상한 서구 관객이 압도될 만한 영화다. <귀주 이야기>조차 그런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귀주 이야기>의 연장선이라 할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은 기묘한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다. 이 영화들이 찬양하는 것은 권력에 항의하기 위하여 도시로 올라가는 시골 아낙네, 학생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어린 여선생 등등 순진무구한 인민과 고향이다. 장이모의 사실주의적인 카메라가 그리던 현실은 <집으로 가는 길>에 가면 추억과 향수로 변한다. 장이모는 어느 순간 관심을 상징에서 현실로 돌린 것 같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주제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장이모는 현실에 투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만들던 시점부터 장이모는 중국 정부와 가장 가까운 감독이 되었다. 한때 중국의 실상을 왜곡하는 영화를 만든다며 중국 정부의 비난을 받았던 장이모는 어느새 베이징에서 오페라를 공연하고, 국가 공식행사의 감독을 맡는 등 철저한 ‘이너 서클’의 일원이 되었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이 보여주는 ‘시골’은 순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달프고 힘들지만 행복한 곳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장이모는, 중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말해준다. 잘 만든 계몽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어느새 장이모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일까. 아니 처음부터 장이모가 원한 것은 그런 긍정적인 인간이 아니었을까 걸작을 만들어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그리고 중국 내에서도 그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위대한 국민예술가. 장이모의 목표는 애초에 ‘예술’이 아니라, ‘위대한’에 맞춰져 있었다는 억측까지 든다.

2000년에 만든 <행복한 시절>은 소품이다. <인생>의 부귀 못지않게 바보 같은 50대의 노총각 자오. 자오는 우연히 알게 된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를 위하여, 거짓말을 시작한다. 공장의 동료들과 함께 그녀만의 행복을 위한, ‘행복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행복한 시절>에서 장이모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인생>처럼, 그들의 뻔한 거짓말을 따라갈 뿐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너무 순진해서 소녀조차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다. 그렇게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한 생활의 여운이 눈물을 흐르게 한다. 장이모는 <행복한 시절>에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한 시절>의 목표는 소박한 감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거기에만 헌신한다. 장이모는 소품을 소품답게 만들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낸다. 문화혁명의 시대를 지나면서, 꽤나 거칠게 살아왔던 장이모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그걸 영상에 옮기는 재능이 있다. ‘바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인생>과 <행복한 시절>이 탁월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위대해지겠다는 야심 이전에, 그저 보고 들은 것을 그릴 때 장이모는 편안해지고 진정한 감동이 물밑에서 올라온다.

<영웅> <영웅>은 노골적으로 ‘공식’ 감독임을 자랑하며 만든 작품이다. 오만한 예술가는 쉽게 자멸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장이모는 영리하다. 기꺼이 천재‘급’이라고 부를 용의도 있다. 장이모가 <영웅> 하나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영화가 무엇인지 판단을 했을 때 장이모는 다시 ‘걸작’을 만들어낼 것이다. 혹시 그 영화가 대가의 원숙함을 보여주는 <인생>의 재림이라면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눈물도 아끼지 않을 용의가 있다. 장이모는 위대한 감독이다. 그리고 위대한 사기꾼이다. 기왕에 사기꾼이 되려면, 장이모처럼 위대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이모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영웅>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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