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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2]
2003-02-05

엄지손가락은 어디로?

예술은 죽지 않는다,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베스트 10

유난히 풍작을 이룬 2002년을 돌아보며,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걸작’과 조우한 기쁨을 이렇게 추억하고 있다. “예술은 죽지 않는다. 다만 쇠퇴할 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두 평론가 오언 글라이버만과 리사 슈워츠봄을 이렇듯 흥분하게 만든 영화는 <파 프롬 헤븐>과 <어바웃 슈미트>다. 멜로와 코미디로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이들 작품은 두 평자의 눈에 현대 미국사회를 비춘, 가장 맑은 거울이었다.

글라이버만은 <파 프롬 헤븐>이 “고전영화의 영광을, 금지된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라는, 유니버설한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면서, “50년대의 화려하지만 억압된 교외 풍경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어바웃 슈미트> 역시 “미국의 다양한 매너리즘을 종합한 국민 캐릭터에 대한 코미디”라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것이 슈워츠봄의 견해다.

글라이버만이 <어바웃 슈미트>를 2위로 올려놓은 데 이어, 슈워츠봄은 <그녀에게>를 2위로 꼽았다. 이 작품에 이르러 알모도바르는 “화려한 세트와 의상, 복장도착자에 기대지 않는, 성숙하고도 새로운 예술의 경지”에 올랐는데, 그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마술’이라고. 특이하게도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을 3위에 올린 글라이버만은 ‘총기 규제’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무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논거를 제시한 마이클 무어의 창의성과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또 다른 3위는 “중간계 모든 생명체의 도전이 장대하게 펼쳐진”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차지했다.

거장과 신인의 화려한 귀환

<뉴욕타임스>가 꼽은 2002년 베스트 10

영화에 대한 경축과 애도가 엇갈리던 예년과 달리, 2002년은 ‘영화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던, 풍요롭고도 의미심장한 해로 기록됐다. 이런 희망의 근거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네명의 평론가가 선정한 베스트영화 10편의 목록에서도 나타나는데, 바로 잊혀졌던 거장, 중진, 신인의 ‘화려한 귀환’이 그것이다.

A. O. 스콧이 2002년 결산 기사에서 지적한 대로 올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펼쳐 보인 ‘감독군(群)’은 90년대 미국 인디영화의 신동으로 추어올려졌던, 그러나 한동안 동어반복에 재능을 소모하는 듯 보였던, 젊은 감독들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어바웃 슈미트>로, 토드 헤인즈는 <파 프롬 헤븐>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은 <펀치 드렁크 러브>로, 스파이크 존즈는 <어댑테이션>으로, 토드 솔론즈는 <스토리텔링>으로 일제히 돌아왔고, 더 반가운 우연은 이들 작품이 모두 진일보해 있다는 사실. 이는 미국에만 한정되지 않아, <그녀에게>는 알모도바르의 ‘최고 걸작’이라는 극찬과 함께, <뉴욕타임스> 평론가들 사이에 2002년 베스트영화로 꼽혔고, 알폰소 쿠아론의 <이 투 마마>도 “멕시코의 오늘, 그 영혼을 탐구한 로드 무비”(스티븐 홀든)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방황하던 거장들의 최근작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그리고 마틴 스코시스의 <갱스 오브 뉴욕>이 그런 작품들. 올해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내놓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활약도 높이 평가됐다. 엘비스 미첼은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2위에 올려놓으며 “근래 스필버그의 빠른 손과 머리가 가장 돋보인 영화”라고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평론가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들어맞은 작품.

데이브 커는 “클래식 디즈니의 향수를 일깨울 뿐 아니라, 목판화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과시한” 이 작품을 2002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꼽았다.

하나된 엄지손가락, "<그녀에게>>!"

<타임>이 꼽은 2002년 베스트10

“사랑과 죽음은 알모도바르가 즐겨 다루는 소재지만, 장엄하고도 인간적인 이 영화에서는 독창적이고 영리한 구조의 힘이, 그 방대하고 모호한 소재의 힘을 능가한다.”(리처드 시클) “헌신은 어떻게 집착으로 옮아가는가, 반역은 어떻게 기적을 낳는가, 완벽한 끝은 어떻게 완벽한 시작처럼 보이는가. 알모도바르는 예기치 않은 기적과 같은 영화 속에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리처드 콜리스) 취향이 다른 <타임>의 두 평론가로부터 기꺼운 ‘투 섬스 업’(two thumbs up)을 이끌어낸 영화, 바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그녀에게>다. 이들은 최악의 영화에서도 의견 일치를 봤는데, 바로 “정치적 사회적 올바름을 지향하면서, 여성의 희생을 감상적으로 다루고, 결함있는 문학적 방식을 고집하면서, 무기력한 극구조로 일관하고 있다”는 혐의를 쓴 <디 아워스>다.

나머지 초이스는 전혀 겹치지 않는다. 리처드 시클은 “잭 니콜슨 생애 최고의 연기”가 돋보이는 <어바웃 슈미트>를 2위에 올린 반면, 리처드 콜리스는 “미국의 탄생에 관한 거대하고 난폭한 서사시” <갱스 오브 뉴욕>을 2위로 선정했다. 에미넴의 반자전적 영화 을 “에너지와 신념으로 가득한 영화”로 평가, 9위에 랭크시킨 시클의 선택, 그리고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원작의 비전을 잃지 않은 대중 오락물”이라며 5위에 올린 콜리스의 선택이 꽤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