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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3]
문석 2003-02-06

˝늬들이 한국 영화사를 알아?˝

최고 독립영화 흥행작 <파업전야>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파업전야>(1990)를 첫손에 꼽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다. 총관객 4만여명. <오! 꿈의 나라>에 이은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1990년 4월6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11개 지역에서 동시상영됐다. 한수라는 평범한 노동자가 모순된 현실을 인식하고 투쟁에 동참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극영화. 당시 정부는 4월7일, 상영 이틀째인 서울의 예술극장 한마당에 난입해서 영사기재와 필름을 압수했을 뿐 아니라 4월13일 전남대 상영장에 헬기를 띄우고 1800명의 병력을 동원하는 등 공권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공동투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4월15일부터 전국 8개 지역에서 동시상영 투쟁이 시작되는 등 전국적인 대열을 결집케 만들었다.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

“아기 업고 영화 만든” 감독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보라고 그래. <미망인>(1955)을 내놓으며 ‘여성 감독 1호’라는 수식을 얻었던 박남옥 감독. 산후 조리도 채 끝내지 않고 촬영장에 선 그는 네오 리얼리즘영화에 경도되어 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필모그래피는 16mm로 찍은 데뷔작이 전부지만,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등으로 이어지는 초기 계보뿐 아니라 이후 활동을 시작했던 여성 감독들에게도 시원으로서의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고몽영화사를 설립한 레옹 고몽의 비서 출신인 알리스 가이. 1896년, 혹은 고몽의 카탈로그에 따르면 1900년 <양배추의 요정>을 연출했다. 최초의 장편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은 미국 최초의 여성감독이기도 한 로이스 웨버. 1914년 <베니스의 상인>으로 데뷔했다.

최초의 대학 내 영화단체

1979년 결성된 서울대학교의 ‘얄라셩’ 영화연구회. 박광수, 김홍준, 홍기선, 송능한 감독 등이 이곳 출신이다.

최초의 극장 상영 다큐멘터리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 1995년 4월29일부터 동숭씨네마텍, 피카소, 뤼미에르 등 3곳에서 상영됐다.

최초의 여성 촬영감독

<연풍연가>의 김윤희. 처음 장편영화를 찍은 여성 촬영감독은 남편 아나톨리 골로브냐와 함께 <수보로프>(1941)를 찍은 러시아의 타마라 로보바.

최연소 데뷔 여성 감독

<러브러브>(1997)의 이서군, 스물셋에 데뷔했다.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로 열일곱에 <사과>(1998)로 데뷔한 사미라 마흐말바프.

최다 연출 여성 감독

6편을 연출한 이미례 감독. 1984년 <수렁에서 건진 내 딸2>(1984)로 데뷔한 이후 <고추밭의 양배추>(1985), <물망초>(1987),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1990), <영심이>(1990)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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