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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1]
문석 2003-02-06

˝늬들이 한국 영화사를 알아?˝

최초의 특수효과영화 <불가사리>

한국 영화계에 특수효과라는 개념을 가져온 작품은 1962년 광성영화사에서 만들어진 김명제 감독, 최무룡, 엄앵란 주연의 <불가사리>였다. 고려 말기에 역적들의 손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한 청년이 원한에 사무쳐 쇠를 갈아 마시는 불가사리라는 괴물로 환생,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의 괴기물인 이 영화는 1985년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불가사리>로 불붙은 특수효과영화는 <옹고집>(1963), <대괴수 용가리>(1967), <우주괴인 왕마귀>(1967) 등으로 이어진다. 일본 기술진의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불가사리>의 특수효과는 지금은 물론이고 당대 기준으로도 그리 ‘특수’한 느낌의 ‘효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괴수 용가리>가 만들어지던 66년 당시 <영화잡지>는 “방화 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특수촬영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불가사리>란 영화가 선을 보인 적이 있으나 역시 기술적인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트릭’과 ‘미니추어’ 등을 사용한 특수촬영을 방화계에서 급격히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옹고집>에 관한 내용. 허장강, 도금봉, 황정순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 소설인 <옹고집전>을 영화로 옮긴 것. 옹진에 살던 못되먹은 옹고집이라는 양반이 한 스님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옹고집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잡지>는 “여기서 허장강은 1인2역을 했는데 둘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면들이다. 따라서 국산영화로서 특수촬영을 성공시킨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아무튼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특수촬영”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괴수 용가리>는 일본 기술자 10여명이 들여온 200여종의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졌고, 훗날 한국 SFX영화의 모태가 된다. 그 적자(嫡子)가 심형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장 많은 작품을 담당한 영화음악가 황문평과 이철혁

정종화씨는 황문평씨가 400편 넘는 작품을 담당해 단연 최다 영화음악 작곡자라고 설명한다. 특히 50~60년대 거의 모든 영화의 음악을 맡다시피 했다는 것. 영상자료원의 기록상으로 따지면, 가장 많은 음악을 담당한 음악가는 이철혁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장으로 1971년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가을비 우산 속에> <장남> <감자> 등을 거쳐 2002년 <싸울아비>까지 250여편을 만들었다(본인 주장에 따르면 400편이 넘는다). 이씨가 한창 활동하던 70~80년대는 영화음악을 이씨와 정민섭씨가 가장 많이 담당했는데, 한해에 30~40편을 작곡하고 녹음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씨는 “요즘처럼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영화를 다 만들어놓고 의뢰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웬만하면 소리가 안 나는 러시필름과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작업을 의뢰했지만, 어떤 제작자는 “그냥 이런저런 얘기니까 대충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특히 의무편수제도가 있을 때는 의무편수 제작 상반기 마감인 6월과 하반기 마감 12월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는 그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끝내도 나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등 붙박이로 일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가장 많은 영화에 음표를 그려넣은 사람은, 인도 타밀의 뮤지션 일라이야라자다. 76년에 데뷔한 이래 500편 이상의 영화에 이름을 올린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영화음악가 중 하나. 하지만 우리의 귀에 익은 작곡가는 빈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음악가 막스 슈타이너. RKO의 <낙원의 새>(1932)로 처음 영화음악 음반을 만들며 데뷔한 이래 <킹콩><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306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최초의 뮤지컬 <푸른 언덕>

1948년 유동일 감독의 <푸른 언덕>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뮤지컬을 시도한 작품이다. 황문평이 음악을 맡고 현인이 주연한 이 영화는 시골 청년이 상경해 콩쿠르에서 장원을 한 뒤 가수로 대성공해 아가씨들이 줄을 서지만, 결국엔 고향에서 사귀던 아가씨와 결혼한다는 이야기. 이 영화는 촬영 도중 음악을 틀어 이를 녹음하는 이른바 ‘푸레이 백’을 이용해 동시녹음됐다. 한편 본격 뮤지컬영화는 아니지만 김상진 감독의 <노래 朝鮮>(1936)은 유사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O.K레코드 전속 가수 일행이 일본 오사카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 무대 모습을 촬영한 필름과 국내에서 촬영한 <코믹 춘향전>을 편집해서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뮤지컬 영화란 타이틀을 얻은 영화는 MGM의 <브로드웨이 멜로디>. 1929년 2월 1일 할리우드의 그로맨스 차이니스 씨어터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오리지널 스코어를 가진 최초의 뮤지컬 영화다.

최초의 영화용 음악

1939년 이창근 감독의 <妻의 모습>에서 조남두 작곡의 음악.

가장 많이 판매된 O.S.T

<접속>으로 77만장이 팔렸다.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영화음악

일본의 사기스 시로가 만들어낸 <무사> 음악. 총제작비 2억원 정도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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