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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영화제 개막리포트 [2]
최수임 2003-02-12

`관용`을 향하여,그리고 흥행도 좀 향하여

<어댑테이션> <디 아워스>, 예측최고별점 받아

세계 변방의 사람들을 다룬 영화들이 ‘관용을 향하여’라는 영화제 모토와 함께 영화제 서두에 거론되는 것과는 별도로, ‘황금곰상을 향하여’ 좀더 기대를 받고 있는 영화들은 따로 있는 것이 사실이다. 22편의 경쟁부문 작품들 가운데서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 스티븐 달드리의 <디 아워스>는 가장 먼저 경쟁작 예측별점을 매긴 TV영화잡지 <TV무비>에서 최고별점을 받은 작품들. 이 밖에도 앨런 파커의 <데이빗 게일의 생애>, 스티븐 소더버그의 <솔라리스>, 스파이크 리의 , 조지 클루니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등 미국영화들은 올해 막강한 라인업을 경쟁부문에 갖추고 있다. 사형제도 반대운동가인 대학교수가 동료 여자 운동가를 살해한 뒤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데이빗 게일의 생애>는 개막작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일반 관객 예매 성적이 가장 좋은 작품. <영웅>이 그뒤를 이었다.

이 밖에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을 비롯한 독일영화 3편, 클로드 샤브롤의 <악의 꽃>을 비롯한 프랑스영화 3편, 네덜란드의 <예스 너스 노 너스>, 이탈리아의 <난 두렵지 않아> 등 유럽영화들과 세네갈 부사 세네 압사 감독의 <마담 브루에트>, 리양의 <눈먼 화살>, 일본 야마다 요지의 <황혼의 세이베이> 등 아시아·아프리카영화들이, ‘의외의 결과’를 노리며 미국영화의 대오에 맞서는 판세다. 올해 한국영화는 경쟁부문 진출엔 실패했지만 파노라마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포럼에 <복수는 나의 것> <밀애> <경계도시> <김진아의 비디오일기>, 아동영화 부문에 <동승>이 초청되어 있다.

2003년 베를린영화제는 상영작들만큼이나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기억될 것 같다.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는 세계 61개국 500명의 젊은 영화학도 혹은 영화인들을 선발해 영화제 기간 중 2월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영화제작의 A부터 Z까지 고급교육을 시키는 행사. 영화제 주공간과는 조금 떨어진 ‘세계 문화의 집’에 그 둥지를 틀고 올해 ‘1기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인대 영화과 학생 1명과 영화인 김태식씨가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영화다. 내 일은 영화다. 내 삶은 영화다. 이렇게 말하면 슬프게도 들리지만, 사실은 퍽 재미가 있다”라는 어느 참가자의 자기소개서 한 글귀가 포스터에 큰 글씨로 적힌 채, 베를리날레 탤런트 캠퍼스의 패기만만한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베를린, 다양한 감수성의 도시

공식 경쟁부문 외에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작품전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회고전, <남과 여>의 배우 아누크 에메 오마주전, 아동영화 섹션, 파노라마, 포럼, 단편영화, ‘독일영화의 전망’ 섹션, ‘뉴 러시안 시네마’ 등 다양한 섹션에 나뉘어,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299편의 영화를 11일간 쏟아내듯 선보이게 된다.

그 시작을 연 개막작 <시카고>는, 입맛 당기게 하는 애피타이저로 손색이 없는 화려한 오프닝 쇼였다. “살인사건도 엔터테인먼트로 대접받”는, “예쁘게 생긴 여자 죄수에게는 결코 사형이 집행될 리 없다”는 1920년대 시카고.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 같은 보드빌 쇼의 스타를 꿈꾸는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는 자신을 스타로 키워주겠다며 접근해 애인관계로 지낸 남자가 사실은 가구판매상이었음을 알게 되자 그를 죽인 뒤 감옥에 수감되는데, 그곳에서 역시 살인죄로 수감된 벨마 켈리를 만나고 그녀가 어떻게 사형을 면하게 됐는지를 간파한다. 5천달러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이 그 비책이었던 것. 그와 함께 록시 하트는 달콤한 거짓말의 세계로 빠져들고, 쇼 무대에 대한 그녀의 환상은 그대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노래와 춤의 풀옵션 무대로 펼쳐진다. 기자시사장의 반응은 그리 뜨거운 편은 아니었으나 시종일관 화끈한 쇼를 보여주면서 또 사이사이 그럴듯한 조크도 잊지 않는 이 영화에 세계 각국 기자들은 웃음 혹은 산발적인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하지만 죄수의 사형집행마저 ‘쇼’가 되는 타블로이드 1면 연예기사풍의 1920년대 시카고라니. <시카고>와 <데이빗 게일의 생애>가 나란히 개막 전 관객예매 수위를 다퉜다는 것이 일견 아이로니컬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희대의 변호사 빌리 플린이 “시카고는 그런 도시야”라고 말하듯, ‘베를린은 그런 도시’인 것 같다. 무거움, 우울함이 깊은 만큼 가벼움, 유쾌함을 동경하고 필요로 하는 곳. 사회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예민함 이면에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기준으로 오락성도 추구하는 감수성.

삐죽삐죽한 건물들이 번쩍이는 유리로 뒤덮인 채 하나의 거대한 원형 벽을 이루고 있는 포츠담 광장이 매우 단순명쾌하게 미래적인 건축으로 보이면서도 어딘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괴상한 도시 풍경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베를린영화제는 ‘썰렁’해 보이는 외관에서 풍기는 것보다 사실은 훨씬 복잡하고 상반된 지향성들을 품고 있는, 묘한 영화제라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어떤 작품이 황금곰상을 받을 것인가를 넘어서, 53회째를 맞은 베를린영화제는 그 정체성에 관해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베를린=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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