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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신인감독 출사표 - <남극일기>의 임필성 [1]

올해 데뷔작 만드는 9명의 감독에게 듣는다 - 충무로에 나를 던진다!

아무리 한국 영화계가 데뷔하기 쉬운 곳이라고 하지만 막상 첫 작품을 만들게 된 감독들을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더러는 캐스팅 단계에서 좌절을 맛보고, 더러는 3년간 매달린 시나리오를 휴지통에 버리는 아픔을 겪으면서 데뷔에는 재능만큼 운도 따라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올해 첫 영화를 만드는 여기 9명의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일찍 능력을 인정받아 데뷔의 기회를 잡은 감독도 있지만 상당수 감독들이 여러 차례 데뷔할 뻔한 경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을 영화의 길로 인도한 것은 무엇이었나? 첫 영화는 어떻게 나왔는가? 그들은 데뷔작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2003년 데뷔작을 내놓는 임필성, 이철하, 이우현, 김현성, 이수연, 윤학열, 최동훈, 민준기, 김용화 등 9명 신인감독의 출사의 변을 들어보자. - 편집자

극한의 땅, 하얀 갈림길에서 | 출사표1-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이러다 감독됐지요

소년을 영화의 샘까지 인도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대여섯살 꼬마였을 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극장을 자주 찾았고 <스타워즈> <죠스> 등을 그 무렵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천지가 펼쳐졌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대구에서 검사를 하던 아버지가 압수한 불법비디오를 집에 갖고 왔는데 소년은 그때 <드레스 투 킬>이나 <그리스> 같은 영화에 빠져들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게 된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도 썼다. 아버지에게 맞을 수록 초능력이 강해지는 아이의 이야기 또는 한반 애들이 공모해서 담임선생을 살해하는 식의 이야기. 영화와 책과 음악을 좋아한 그 소년은 1993년 대학에 들어갔지만 영문과라는 전공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해 독립영화협의회에서 주최한 단편영화워크숍에 참가했고 95년 정지우, 김용균 감독 등이 단편을 찍었던 영화제작소 청년에 들어갔다. 임필성(32)씨가 감독의 길로 들어선 여정이다. 하지만 청년에서 단편 <기념품>을 찍고나서도 그는 과연 장편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97년부터 2년간 <씨네21> 객원기자를 하면서 감독이 아니라 기자를 해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갈림길에서 그는 잠시 흔들렸으나 결국 감독을 택했다. 98년에 만든 단편 <소년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청년에서 나오고 <씨네21> 객원기자도 그만둔 채 몇몇 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제작, 연출, 편집한 이 작품은 영화제작의 하나에서 열까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임필성 감독은 한겨울에 필동에 있는 어느 낡은 집에서 난로 하나, 전기담요 하나로 버티며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단편영화제든 본선에만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꿨다고 말한다. <소년기>는 부산단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곧이어 영화사로부터 장편 데뷔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남극일기>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99년, 남극탐험을 하는 허영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이다. 무보급 남극횡단에 도전한 허영호 대장의 팀은 의기충천해 출발했으나 횡단에 성공하진 못한다. 탐험 초반에 한 대원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적으로는 바이러스가 없는 곳이기에 감기가 걸릴 수 없는 곳인데 감기환자가 나온 것이다. 아픈 사람을 끌고 가면서 탐험대는 분란에 휩싸이고 결국 중간지점에서 횡단을 포기하는 사태를 맞는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한 순간, 허영호 대장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임필성 감독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허영호 대장의 눈물이었다. 과연 무엇이 허영호 대장처럼 성공한 탐험가를 울게 만든 것일까? 임필성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 탐험을 강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모비딕을 쫓는 에이하브 선장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집착하는 한 인간,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던 대원들, 그들이 생존의 위험에서 어떻게 갈등하게 되는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남극일기> 시나리오는 그렇게 3년간 10여 차례 수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렇게 할랍니다

<남극일기>의 현실적 어려움은 처음부터 명확했다. 한마디로 과연 어디서 이 영화를 찍을 것인가? 제작진이 발견한 곳은 <반지의 제왕>을 찍은 뉴질랜드. 임필성 감독과 김성재 프로듀서는 뉴질랜드에서 남극처럼 사방이 설원인 풍광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곳엔 <반지의 제왕>을 찍은 특수효과 스튜디오 웨타(WETA)가 있다. <반지의 제왕>을 찍긴 했지만 1년에 평균 5편을 찍는 뉴질랜드의 영화환경 탓에 일감을 기다리는 텅 빈 스튜디오는 <남극일기> 제작진을 환대했다. 특히 <반지의 제왕>에서 시각효과를 맡았던 리처드 테일러는 <남극일기>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했고, 영화 촬영을 유치하는 데 열성이 대단한 뉴질랜드 영화위원회는 제작비 규모에 맞는 비용을 제시했다. 해외로케이션이지만 제작비 40억원대에서 수준급 영상을 만들 가능성이 확보된 것이다. 송강호의 캐스팅도 큰힘이 됐다. 시나리오를 읽고 바로 다음날 출연 결정을 내리면서 <남극일기> 촬영준비는 지금 가속도가 붙어 있는 상황. 뉴질랜드의 겨울인 5∼6월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 이혜정 socapi@hani.co.kr 사진자료 ANTARCTIA

<남극일기>는 어떤 영화? 1922년 탐험대 비극의 재현

세계 최초의 무보급 남극 횡단에 도전한 탐험대. 최도형 대장을 포함 전체 6명인 탐험대는 그들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설원에서 1922년 영국탐험대가 작성한 남극일기를 발견하고 대원 중 막내인 민재는 식별하기 힘든 일기의 내용을 읽어나간다. 일행 중 한명이 감기증세를 보이고 화이트아웃을 만나는 등 이상한 징후가 하나둘 나타나는 가운데 민재는 1922년의 일기에서 영국탐험대의 여정이 그들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제작사 미로비전 출연 송강호 5월 크랭크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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