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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포,나카다 히데오 [2]

<검은 물밑에서>

<여우령>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흉내내 성인용 영화를 만들었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고다르의 정치적 영화, 이론적 영화에 경도되어 또한 연출활동에 발을 디뎠다. 나카다 히데오 역시 비슷한 흐름의 끄트머리에 합류해 영화계에 입문한 경우다.

영화사적 기억

나카다 히데오는 1961년생.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도쿄대학 재학 시절, 비평가로 명망높던 하스미 시게히코의 강연을 듣고 영화에 뜻을 두게 되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와 같은 경로를 밟은 것이다. 졸업 이후 영화현장에 뛰어든 그는 성인영화와 TV시리즈, 그리고 비디오용 영화를 찍으면서 연출공부를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그가 이름을 걸고 영화연출을 할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능했다.

<여우령>(女優靈, 1996)이라는 공포물을 찍은 뒤 “진짜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나타났다”는 평을 들었던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여우령>은 어느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촬영장 시사실에서 촬영한 필름을 시사하던 스탭들은 소름돋는 경험을 한다. 시사실에서 상영되는 필름에서 이상한 장면이 보이는 것이다. 문제의 필름은 20여년 전 촬영장에서 찍은 것이다. 놀라는 여주인공 뒤편에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호들갑스럽게 입을 벌린 채 웃고 있는 어떤 ‘존재’인 것으로 보인다. 20여년 전 필름 속 여주인공은 의문사를 당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현재 촬영되고 있는 영화현장에서도 의문의 사건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여우령>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당시 관심을 지니고 있던 것을 피력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것은 ‘과거’의 영화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가,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의문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는 비슷한 시기 영화를 배운 구로사와 기요시, 수오 마사유키에 비해 대중적 노선을 택했다. 안전한 장르영화를 만들되 그 안에 개인적인 영화사적 기억을 각인했던 것이다. 나카다 감독이 은연중에 존경을 표하며 영향받은 것은 조셉 로지 감독이다. 조셉 로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여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그는 가명을 사용해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하인>(1963)이나 <돌발사건>(1967) 등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풍부한 상징을 쓰면서 인물의 심리 메커니즘을 세밀하게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조셉 로지의 연출세계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적 있는데 당시부터 조셉 로지의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 영화화면의 이중구조, 캐릭터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 등은 모두 그의 영화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여우령>에서 20여년 전 촬영한 필름 뒤편에서 귀신이 나타나거나 <링> 시리즈에서 동그란 모양의 거울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 <검은 물밑에서>의 물탱크가 공중에서 바라볼 때 우물처럼 보이는 것 등은 조셉 로지에게서 나카다 히데오가 받은 영향의 흔적이다. 나카다 감독은 조셉 로지 감독이 즐겨쓰던 시각 스타일, 다시 말해 특정 장면에 상징을 배치하거나 한 장면을 다층적 구조로 짜낸 그의 1960년대 영화들이나 <미스터 클라인>(1977) 등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근작 <검은 물밑에서>에선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모녀가 사는 아파트 관리실에 설치된 TV 모니터가 공포를 자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스크린으로 볼 때, 운행 중인 아파트 엘리베이터엔 한 여성만 비춘다. 그런데 TV 모니터가 같은 장면을 보여줄 때는 다른 ‘존재’가 그녀 옆에 있다. 영화 속 인물은 그 사실을 모른다. <링>을 비롯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가 긴 머리결을 늘어뜨린 한을 품은 여성, 초현실적 민담 같은 극히 동양적 소재의 영화임에도 서구 관객과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영화 스타일이 극히 서구적이라는 이유를 간과할 수 없다.

<카오스>, 장르영화의 곤혹스러운 해체

개인적으로 나카다 히데오 영화 중에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카오스>(2000)였다. <카오스>는 처음엔 진부한 장르영화의 길을 걷는다. 아내가 유괴되고 남편은 형사들을 동원해 범인의 뒤를 밟는다. 치밀한 두뇌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남편에게 범인의 전화가 걸려오고 남편은 경찰과 함께 약속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범인은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해 협박을 한 뒤 돈을 뜯어낸다. 과연 아내는 진짜로 유괴된 것일까? 혹은 상황을 꾸며낸 뒤 남편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돌발적으로 벌어지는 살인극의 피해자는 누구이며 가해자는 또 누군가? <카오스>의 시작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스릴러 <천국과 지옥>(1963)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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