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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공포,나카다 히데오 [1]

공포는 밤그림자처럼

<검은 물밑에서> <링> 시리즈 만든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세계

그가 웃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나카다 히데오(中田秀夫)를 한번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00년 여름, 국내에서 열린 어느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나카다 히데오를 만난 것이다. 그는 <링> 시리즈로 국내 영화 마니아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처음 그를 만나기 전엔, 막연하게나마 딱딱하고 말주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공포영화 감독 같겠지. 그런데 의외였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정훈이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다고 할까? 엉뚱하고 유머감각이 있었다. 자기표현이 확실하며 말주변이 좋은 편이었다. 감독에게 예상보다 인상이 좋아서 다행이다, 라며 농담을 하자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선입견이란 위험하다.

당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일본의 장르영화, 그중에서 공포영화에 대한 불만을 피력했다. <링> 시리즈 이후 후속작으로 만들어진 ‘아류’ 공포영화에 대해 소감을 밝힌 것이다. “<링>의 성공 이후 MTV식의 영화, 다시 말해서 흐름이 빠르고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선 ‘자극’만을 위한 영화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감독의 말은 과장된 것으로 들리지 않는다. 스즈키 고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링>(1998)이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자 일본에선 공포영화 붐이 일었다. 만화에서 소설, TV시리즈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대중문화의 분야에서 공포물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매체간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만화의 영화화, 소설의 영화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일본 저널에선 “신세기 호러의 전성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나카다 히데오 자신도 <링>이 이후 시리즈로 만들어지자 속편의 연출을 맡은 적 있다. 그럼에도 속단일지 모르지만 이같은 일본 호러물의 유행은 <링>의 후광을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조잡한 특수효과, 상업적인 노림수에 치중했던 작품이 많았던 점을 부인하긴 힘들다.

<검은 물밑에서>, 그리고 과거

나카다 히데오는 잠시 공포영화의 자장에서 벗어나 있었다. 만화적 감성을 부각한 <유리의 뇌>(2000) 등을 만들면서 외유를 즐겼던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 필모그래피 (극장용 장편영화)

<여우령>(女優靈, 1996)<암살의 거리>(暗殺の街, 1997)<조셉 로지, 네개의 이름을 가진 남자>(ジョセフロジ 四つの名を持つ男, 1998)<링>(リング, 1998)<링2>(リング2, 1999)<유리의 뇌>(ガラスの腦, 2000)<카오스>(カオス, 2000)<검은 물밑에서>(仄暗い水の底から, 2001)<라스트 신>(Last Scene, 2002)

그런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지난해에 일본에서 공개했던 영화가 <검은 물밑에서>다. <링>과 마찬가지로 스즈키 고지의 원작을 영화화한 <검은 물밑에서>는 베를린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검은 물밑에서>는 한마디로, 공포물을 가장한 재난영화다. 한 모녀가 어느 허름한 아파트에 이사온다. 아이의 양육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엄마의 신경은 바늘처럼 날카로운 상태이고 아이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탓에 불안정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 모녀가 살고 있는 방 천장에서 물이 똑똑 새기 시작한다. 처음엔 작은 물방울이었다가 차츰 분수처럼, 폭포처럼 거대해진 물의 이미지는 모녀를 압박한다. 영화는 멀쩡한 육지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모녀가 사는 아파트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침몰하는 배처럼, 압도적인 물의 세례가 영화 속 공간을 침범해 들어온다. 게다가 모녀는 노란색 비옷을 입은 어느 아이 귀신을 목격한다. <검은 물밑에서>는 나카다 히데오의 최고작이라 선뜻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처럼 세련되게, 그리고 과묵한 언어로 현대 일본사회의 병적 현실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흔치 않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선 영화사에서 기념할 만한 명장면을 재현하는 사람은 없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영화에 대한 정열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학자이자 평론가인 요모타 이누히코의 소견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영화에 대해 논할 때 이같은 언급은 중요하다. 이와이 순지, 쓰카모토 신야 등의 젊은 세대 감독은 어떤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영화사에 대한 순진한 ‘무관심’이라고 표현할 만한 것이다. 일본의 고전영화, 해외 고전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며 영화의 역사 자체에 무지한 것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현상은 현대 일본영화를 논할 때 무게감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이전 시기 감독들은 다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1980년대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이타미 주조, 구로사와 기요시, 수오 마사유키 등의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한 고전기 거장들의 영화를 철저하게 인용하는 것을 원대한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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