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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한국영화 [6]

"운 사람 손들어보라"<밀애> <동승> <경계도시> 등 한국영화 뜨거운 관심 불러

한편에서는 경쟁부문에 진출작을 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영화 장르의 전 스펙트럼을 커버하며 각국 영화계의 현주소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포럼부문 등에 더 큰 관심이 쏠리는 베를린영화제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리 아쉬워만 할 일도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올해 한국영화는 베를린에서 성공했다.

포럼부문에 관심을 집중시킨 <밀애>

관객의 관심을 자로 잴 수는 없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변영주 감독의 <밀애>인 듯하다. <밀애>는 시사 뒤 극장에 불이 켜지고 감독이 무대에 오른 지 한참이 지나도록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한 차례 극장쪽 사고로 1시간가량을 영화상영이 끊겼던 날에도 관객은 이 화제작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좋게 표현해 비밀스런 사랑, 까놓고 말해 불륜을 다룬 작품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변 감독은 이 “뻔할 뻔 자의 스토리에 특유의 터치를 가해 매스터피스를 만들어냈다”.(<타게스슈피겔>의 다니엘라 잔발트) 비평가 및 관객을 놀라게 한 점도 바로 이것으로, <밀애>는 전통 멜로영화 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하고 새로운 해석까지 가능하게 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리스 공영방송은 <밀애>가 “올해 포럼부문 출품작들 중 최고”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어린이 영화제의 꽃 <동승>

<밀애>가 포럼부문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면 주경중 감독의 <동승>은 어린이영화제의 꽃이었다. ‘일상과 정신세계’라는 올해 킨더필름 부문의 주제에 가장 걸맞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동승>은 영화제 시작 전부터 사람들을 울렸다. 2월5일 미리 열린 시사회에서부터 소문이 나서, <동승>은 카탈로그에 섹션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실리는 것을 위시해 신문 등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2월10일 일반시사회에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운 사람은 솔직히 손들어 보라”는 감독의 주문에 한동안 머뭇거리던 어른 관객까지 다 손을 든 일도 있었다. <동승>이 이러한 호평을 받은 것은, 이 영화가 불교영화의 틀을 갖추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꼬마스님의 그리움과 외로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슬픔 등을 탁월한 미장센에 담아 관객의 가슴에 고스란히 꽂히게 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동승>은 ‘세계적’영화라는 인정을 받았다.

정치적 토론을 이끌어낸 <경계도시>

포럼 특별프로그램에 출품된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는 베를린에 살고 있는 송두율 교수를 다룬 다큐일 뿐만 아니라 국정원 직원들이 ‘우정출연’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2월7일, 밤 9시라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떼지어 몰린 수백명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하자 주최쪽은 임시 상영실을 따로 마련해 비디오로 동시상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상영 뒤 있었던 송두율 교수 내외가 참석한 토론회는 끝이 없는 관객의 질문으로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이슈는 주로 주인공의 정치적 역경과 인간적 고뇌, 한반도 문제 등 정치적인 건들이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김지하 시인의 귀국권유 장면과 관련해서는 왜 그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준법서약서에 서명하고 귀국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자유사고를 가진 학자로서 자신의 원칙에 떳떳하게 학자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답이었다.

그외 김진아 감독의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다큐에 퍼포먼스를 접목시킨 ‘퍼포머티브 다큐멘터리’라는 실험적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다가 최악의 흥행실패라는 기록을 세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한 반응은 베를린에서도 좀 썰렁하고 뜨악한 편이었다. 한국 관객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선우 감독의 화두를 외국인들에게 던지니 상당히 버거웠던 모양. 2년 전 <공동경비구역 JSA>로 경쟁부문에 참가했던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은 기자시사회에서 “매우 독창적인 필름누아르”라는 평을 받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진화영=베를린 통신원

“그리움에 관한 영화다”<동승>의 주경중 감독 인터뷰

7년의 제작기간과 여러 국제영화제의 ‘유랑’을 거쳐온 <동승>을 베를린 킨더필름 관객은 따뜻하게 맞이했다.

어린이 관객은 진지한 질문으로, 어른 관객은 공감어린 눈물과 기립박수로. 영화는 월북 희곡작가 함세덕의 동명희곡이 원작.

무슨 생각으로 7년이나 매달렸나.

97년 기획해서 99년부터 찍었으니까 순제작기간은 4년이다. 돈 생기면 찍고, 또 돈 구하러 다니고 하다보니 길어졌을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관객과 만나 대화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광주를 소재로 한 <부활의 노래> 제작자에서 얼핏 동화 같은 <동승>으로 선회한 이유는.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였는데,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마음에 닿았다. 그게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라서 대중적 공감을 얻을 자신도 있었고, 어린 동자승 조념이 큰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유의지로 어머니를 찾아내는 결론도 좋았다.

젊은 스님 정심이 포경수술을 하겠다고 집요하게 조르는 일화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스님들에게 들은 얘기다. 대중탕 가면 훑어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더라. 그걸 영화 속으로 가져오면서 ‘알을 깨고 비상한다’는 비유로 읽히기를 바랐다.

불교영화라고 생각하나.

영화를 본 한 스님이 ‘부처가 없다’고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래서 ‘부처가 뭐냐, 삼라만상 중 부처 아닌 것이 어디 있냐’고 억장을 질렀는데. 함세덕의 <동승>을 유물론적 불교해석으로 평한 글도 있던데, 불교의 세계는 품이 넓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동승>은 본질적으로 그리움에 관한 영화다.

국내 개봉은 언제쯤 할 예정인가.

4월 중순쯤. 국제영화제 상을 몇 차례 받고나니 배급비용 투자하겠다는 쪽들은 생겨난다. 집을 팔아 제작비를 건네주신 아버님께 집을 다시 장만해드릴 수 있을까.베를린=글 안정숙/ <한겨레> 기자 namu@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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