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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화제작2,3 <이 세상에서><난 두렵지 않아>[3]
최수임 2003-02-21

세상은 내게 강해지라 하고마이클 윈터보텀의 <이 세상에서>

눈발이 날리던 2월7일 아침, 8일간의 경쟁작 시사회 대장정의 첫문을 열었던 영화 <이 세상에서>는 멀게는 아시아에서 열몇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온 기자들을 갑자기 파키스탄에 떨어뜨린 뒤 거기서 런던에까지 ‘육로로’ 가는 긴 여정에 훌쩍 띄워보냈다. 파키스탄의 한 아프간 난민캠프에 살던 소년이 육로로 런던에 피난 겸 유학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중간중간 디지털 지도 화면 위에 빨간 여로를 표시하면서) 이 영화는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건드리는 가슴 시린 로드무비였다.

“여기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몰라”라며, 자말의 아버지는 아들 자말을 ‘안전한 나라’ 영국에 보낸다. 브로커에게 돈을 맡긴 뒤 여권도 비자도 없이 어느 낡은 버스를 타고 그의 ‘안전한’ 난민캠프를 떠나는 자말은, 파키스탄 산악지역의 눈덮인 아름다운 산을 보며 ‘눈’이 영어로 무엇인지, ‘산’이 영어로 무엇인지 되뇌인다. 아랍권에서 점점 유럽으로 가까이 감에 따라 처음에 이처럼 아름다웠던 풍경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오히려 더 평화로움을 잃어간다. 이는 주인공 소년 자말도 마찬가지. 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이란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이탈리아로,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점점 더 열악한 교통수단으로 차를 옮겨타던 중 자말은 동행해준 사촌형 에니얏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숨을 거두는 사건도 겪는다. 하지만 울 여유도 없이 그는 액세서리도 팔고 도둑질도 하며 겨우 런던에 도착한다. 런던의 그는 더이상 파키스탄에 있을 때의, 어린 동생과 아버지와 걱정해주는 어른들 사이에서 보호받는 건강한 소년 자말이 아닌, 너무나 다쳐 있고 너무나 망가져버린 난민 소년이 되어 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저 자말이에요. 지금 런던에 있어요. 에니얏이요? 그는 이 세상에 없어요.”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가해자들로 가득한 ‘안전한’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관객에게, 아픈 화살을 날리며 긴 여행을 마무리한다.

마이클 윈터보텀

“나와 촬영감독 1명, 배우와 스탭들을 비롯한 우리 일행은 미니버스를 타고 다니며 작은 핸디 카메라로 이 영화를 찍었어요.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길을 함께 여행했다고 할 수 있죠.”

다큐 같지만 픽션인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자말을 연기한 배우 자말 우딘 토라비는 영화촬영이 끝난 뒤 제작진들에 의해 다시 가족의 품에 되돌려진 뒤 실제로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갔으며 다시 파키스탄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감독 윈터보텀은 밝혔다. “자말이 영화를 찍으면서 런던에 가는 법을 배운 것 아닐까요?” 어느 유럽의 기자가 무심코 내뱉은 이 무심한 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각자가 서 있는 지점을 드러내게 하는, 매우 감도 높은 정치적 영화라 할 수 있다.

1m 세상, 어른들은 몰라요가브리엘 살바토레의 <난 두렵지 않아>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영화, <지중해>의 가브리엘 살바토레가 만든 <난 두렵지 않아>(Io non ho paura)는 바로 다음날 아침 다시 한번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의 테아터 암 포츠다머 플라츠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 언덕 가득 햇살이 넘실대는 남이탈리아의 여름, 1978년이 배경인 이탈리아 작가 니콜로 아만티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아홉살짜리 소년 미켈레가 동네의 폐가 주변 땅 속에 갇힌 유괴당한 소년 필립포를 발견한 뒤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필립포를 유괴한 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포함된 조직임을 알게 되면서, 그는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 아래에 묻혀 있는 폭력적인 현실을 보게 된다. <이 세상에서>가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면, <난 두렵지 않아>는 미켈레가 땅 속의 소년과 나누는 우정을 그리는 한편 유괴자들과 벌이는 대결을 그린 영화로, 우화 같은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담아낸다.

<난 두렵지 않아>

의 두 아역배우 마티아 디 피에로(필립포 역), 기우세페 크리스티아노(미켈레 역)와 여배우 알타나 산체스 기욘(어머니 역). “배우를 계속할 거냐구요? 이미 커리어를 시작한걸요?” 아역배우들이 그들의 첫 국제 기자회견장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계획을 밝히는 한편, ‘NO WAR’라는 글씨가 새겨진 배지를 달고 참석한 산체스 기욘은 “우리는 전쟁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햇볕이 눈부신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에 대해, 원작자는 “낮은 아이들의 세계를, 밤은 어른들의 세계를 상징한다. 아이들이 들판 위를 뛰노는 반면 어른들은 집안에 머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땅 위 1m 이내의 ‘아이들의 시점’에서 움직이는 카메라의 눈높이다. 밀밭 사이의 두더쥐와 밀대 위에 앉은 곤충을 아이들과 동일선상에서 비추며, 이 작품은 어른들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자연의 ‘에코 시스템’ 속에 놓인 어린이들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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