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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2003,<갱스 오브 뉴욕>은 이렇게 태어났다 [2]

1970~77년 @ 맨해튼 여기저기

처음에 마티는 나에게 “이건 마치 화성을 배경으로 한 서부영화 같은 거야. 우주의 서부극처럼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했다. 주인공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일단 맥도웰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긴 했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이 화약고에서 탄생되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밑바탕에 ‘아버지의 복수’라는 클래식한 주제를 가진 인물의 개인사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결국 영화를 대규모 서사시로 풀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오히려 리서치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사실은 날로 먹는 부분이 많았다. 왜냐하면 내가 리서치를 시작하기 이전에 많은 것들이 이미 조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허버트 애스버리의 <갱스 오브 뉴욕>을 비롯해서 뤽 산테의 <로 라이프>, <뉴욕의 빛과 그림자> 등 많은 서적과 사진집이 있었다. 몇몇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에서 따왔고 몇몇은 새롭게 창조했다. 또한 몇몇 날짜와 장소를 드마마틱 허용으로 바꾸어 나가기도 했다

최초의 시나리오는 “당신은 당신의 여름을 이 거리에서 구세주가 나타나길 기도하며 헛되이 보낼 수 있지”라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마지막 역시 그의 노래인 <아담은 카인을 키웠다>의 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라졌으나 어두운 꿈의 심연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은.”(Lost but not forgotten from the dark heart of a dream) - 제이 콕스(시나리오 작가)

1977년 @ 뉴욕 맨해튼

제이와 나는 대강의 초안을 완성하자 <버라이어티>의 두면을 통틀어 광고를 냈다. 왼쪽면 전체에는 야곱 리스의 사진집 중 1870년대 찍은 <갱들의 보금자리>란 흑백사진을 싣고 오른쪽엔 <갱스 오브 뉴욕>이란 영화의 제목과 함께 “지금은 제작준비 중”이라고 크게 내붙였다. 가슴이 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 마틴 스코시즈(감독)

Re_ “쩝… 난 겨우 두살인데….”레오74 “앗싸! 난 네살이다!”카메론72

1980년 @ 뉴욕 맨해튼

<분노의 주먹>은 <갱스 오브 뉴욕>과 닮은 점이 많은 영화였다. 이를테면 ‘가미카제’식 영화, 즉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모든 정열을 다 쏟아붓고나서 가라앉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 <분노의 주먹>이 개봉하고 열흘 뒤 사건은 터진 거다. 마이클 치미노의 최악영화 <천국의 문>이 개봉하고 쫄딱 망하자 큰 예산으로 개인적인 영화를 찍는 시대는 가버린 것이다. 아. 옛날이여! - 마틴 스코시즈(감독)

1991년 @ 캘리포니아

지난해부터 나는 마틴 스코시즈 영화에 출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내 에이전시는 그와의 단 한번의 미팅도 성사시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스코시즈의 에이전시인 CAA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서서히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배우)

1993년 @ 뉴욕 트로이

<순수의 시대>를 트로이에서 찍던 도중 시장집무실에서 마티와 나는 우연히 한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바로 불타버린 집 위로 고드름이 여기저기 달려 있는 1896년 뉴욕의 사진이었다. 마티는 당장 나에게 이렇게 외쳤다. “단테! 이 사진을 <갱스 오브 뉴욕>의 첫 이미지로 써야겠어.” 물론, 그는 매번 자신의 다음 작품은 <갱스 오브 뉴욕>이 될 거라고, 준비하라고 말한다. 뻥치지 마라. 그는 <순수의 시대>를 찍고 나선 <카지노>를 찍었고 이어서 <쿤둔>을 찍었다. 결국 참다못해 내가 물었다. “그 영화, 정말 찍긴 찍는 건가요?” - 단테 페레티(프로덕션디자이너)

Re_ 결국 찍게 됐잖나, 친구! 그리고 그때 우리가 본 사진의 이미지는 처음 빌이 파라다이스 스퀘어에 등장하던 신에 고스란히 담기게 됐고말이야. - 10년 뒤 자랑스럽게 리플단 마티

1998년 @ 헬스키친

<비상근무>를 촬영하던 중에 마이클(마이클 오비츠 - 매니지먼트업계의 대부)이 헬스키친의 촬영장으로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마티 혹시 평생 꿈꿔오던 프로젝트가 있나?”라고 물었다. “아! 왜 없겠나!” 나는 당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불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갱스 오브 뉴욕>을 뜨끈뜨끈한 상태로 꺼내주었다. 결국 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해 주었고 그와 함께 제작비에 물꼬가 트였다. 미라맥스가 붙겠단다. 이니셜이 해외 배급은 책임지겠단다. 오! 신이시여. 드디어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드나이까. - 마틴 스코시즈(감독)

Re_ 규모에 상관없이 마틴 스코시즈와 한번은 꼭 작업을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지. 흥! 하지만 당신은 늘 어딘가 묶여 있더군. 그래서 틈이 생기자마자 뛰어들었다구! - 얍샵 하비

1999년~2000년 9월 뉴욕에 가는줄 알았다, 로마로 왔다!

1999년

마티의 영화에 내가 출연하게 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어떤 배우가 마티와의 작업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은 SF영화가 시대만 과거로 옮겨간 것 같았다. 먼저 나는 암스테르담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책을 읽었다. 암스테르담의 초상은 <갱스 오브 뉴욕>과 <로 라이프>로부터 나온 정보의 혼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조사원들이 발견해 손으로 쓴 문서자료들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교정의 집’이라고 불리는 소년원에서 어린 시절을 몽땅 저당잡혔던 어떤 젊은이의 일기였는데 이 책은 극단에 이른 절망이 무엇인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전해주었고 그것은 암스테르담의 복수를 향한 집념을 이해하기에 완벽한 뒷받침이 되었다. 이제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 웨이트 트레이닝, 칼던지기, 그리고 다양한 투쟁도구들을 연마할 것이다, 아자!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배우)

Re_ 그를 망가뜨리는 건 쉽다. 몸집을 불리고 살을 찌게 만든 뒤 촬영을 무기한 연기시키는 거다. - 심술 마티

2000년

<미녀 삼총사>의 촬영을 마치자마자 <갱스 오브 뉴욕>을 위해 뉴욕의 오디션장으로 날아가는 순간, 나는 꼭 제니 에버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라면 무조건 출연할 의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을 앞두고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윗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디션장에 들어섰을 때,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레오가 방긋이 웃으며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한결 안정됐다. - 카메론 디아즈(배우)

Re_ 휴! 나와 마티는 정말 많은 여배우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디션을 정말 오디션같이 치렀던데 반해 카메론은 마치 이야기하듯이 편안하게 대본을 읽어내려갔다. - 짝궁 레오 오디션장에 카메론 디아즈가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레오의 목소리가 상기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일종의 두 사람간의 화학작용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흐흐. -뚜선생 마티

1999년 @ 미라맥스 사무실

마티가 나에게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며 80편의 영화목록을 던져주었다. 80편!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숫자란 말인가. 게다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최악의 오르간 반주가 곁들어진 1928년산 무성영화라니. 이뿐이더냐. 이 영화들은 비디오도 DVD도 아니다. 죄다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란 말이다. 이건 ‘스코시즈 교수님’의 강의목록에 가깝다. 아! 돌겠다. 주판알 튕기기도 바쁜데 언제 이걸 다 본단 말인가! - 하비 웨인스타인(제작자)

Re_ 마티는 나에게 일찍이 렘브란트의 화집을 전해주며 “이 영화가 이 그림의 느낌처럼 보이길 바라네”라고 말했다. 그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는 것을 사랑하는 진정한 감독이다. - 모범학생 마이클 발 하우스

2000년 @ 로마

문제는 늘 시작부터 발생하게 마련이다. 영화의 첫 장면이자 아일랜드 이민자의 삶의 터진인 양조장 내부의 인테리어를 놓고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뉴욕 양조장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턱이 있나. 그 어떤 사진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술고문인 뤽 산테(<로 라이프>의 저자)의 도움을 받아 뉴욕의 양조장이 같은 시절 프랑스의 양조장 내부와 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아냈다. 또한 마티가 상상한 “사람들이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인 층으로 분리된 작은 방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며 고양이 걸음으로 서로 내통하는 지하터널 같은 느낌”을 살렸다. 결국 만들어놓고보니 이건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지옥도다. - 단테 페레티(프로덕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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