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10]

----------오우삼은 <영웅본색>에 이어 <첩혈가두>와 <첩혈쌍웅>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첩혈가두>의 그 낭만성을 사랑한다. 평범하게 자라난 친구들이 베트남이라는,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의 공간으로 들어가 처참하게 뭉개지고 서로를 배신하게 된다. 양조위, 장학우, 이자웅이 서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그 멋진 장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에서 반복한 바로 그 장면이다. 후일 머리 속의 총알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장학우는, 양조위에게 부탁한다. 마지막 총알을 날려달라고. 양조위의 총을 입에 물고, 절실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홍콩누아르의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다. 그들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홍콩누아르에는 오우삼의 영화만이 아니라 수많은 걸작이 있었다. 홍콩누아르가 발견되기 이전에 서극의 <제1유형위험>과 맥당웅의 <성항기병>이 있었고 <영웅본색> 이후 임영동의 <용호풍운>과 <타이거맨>, 왕가위의 <열혈남아>, 관금붕의 <지하정>, 맥당웅의 <강호정>과 <영웅호한>, 황지강의 <천라지망> 등의 걸작, 수작들이 뒤를 이었다. <복수의 만가> <재전강호> <중환영웅> <흑사회> <흑전사> 등 수많은 범작과 졸작들도 뒤를 이었다. 누아르 열풍으로 여타 홍콩영화들도 함께 인기였다. <천녀유혼> 시리즈가 그랬고 <아랑> <가을날의 동화> <인지구> 등의 멜로물도 있었다. 두기봉의 <천약유정>과 <천장지구>처럼 멜로와 액션, 비극적인 주인공이 어울린 영화들도 있었다. 하지만 홍콩영화가 늘 그랬듯이, 홍콩누아르 역시 너무나 빨리 절정에 달하고 너무나 빨리 소진해버렸다.

----------홍콩 상업영화의 제왕인 왕정이 이른바 ‘카지노 무비’인 <지존무상>을 만든 것이 고비였다. <지존무상>은 홍콩누아르의 장르적 특성을 고스란히 살린 수작이다. 시대의 의미를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왕정의 상업적 감각은 탁월했다. 홍콩누아르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박의 스릴을 가미하여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두기봉의 <지존무상2>는 더욱 애잔함이 가미된 수작이다. 하지만 카지노 무비 이후 홍콩누아르는 급격하게 몰락했다. 도박과 멜로와 액션 등등을 마구 뒤섞고 서로를 모방하면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서극은 <영웅본색3>로 홍콩누아르의 근원을 파고든 뒤 <동방불패>와 <황비홍> 등 중국 고유의 정신과 문화를 강조하는 영화로 성공을 거두었다. 86년에 시작되어 약 5년간 인기를 누렸던 홍콩누아르는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홍콩누아르의 열기는 사라졌다. 졸작들이 마구 쏟아지며 질려버린 탓도 있었지만, 홍콩 누아르의 ‘단순한’ 비장함이 절대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던 80년대는 이미 사라져갔다.

홍콩누아르의 시대는 갔어도…

----------<무간도>는 과거의 홍콩누아르 못지않게 비장하지만, 과장은 없다. 유건명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진영인의 죽음에 개입하게 된다. 그것은 오래 전 조직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한침의 명령으로 경찰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예정된 것이다. 시대가 흘렀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유건명이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부조리한 세계는, 시스템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그는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영원한 고통 속에서. 그렇다. 80년대는 사라지고, 90년대를 거쳐 21세기가 왔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변했지만, 그의 내면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본질이 세월을 거듭해도 변하지 않았듯이 그들을, 우리를 둘러싼 인간 조건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무간도>의 비극과 슬픔은 가슴을 울리고, 그들의 싸움은 감동을 준다. 홍콩누아르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들의 싸움은 여전히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