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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3인방이 온다 - <헐크> [4]
박은영 2003-03-14

분노는 나의 힘<헐크>, 스크린에 귀환하는 `슬픈 괴물`

박은영 cinepark@hani.co.kr

리안은 헐크를 가리켜 “슬픈 괴물”(Sad Monster)이라고 했다. 수천명을 맨몸으로 상대할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인 헐크의 추동력은 극심한 분노와 고통의 스트레스. 더 크게 분노할수록 더 큰힘을 발휘하게 되는, 그러나 그 힘 때문에 인간들의 사냥감이 되고 마는, 헐크의 딜레마는 조용하고 예민한 이국의 영화감독을 매혹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헐크 Hulk

1. Who are you? 로버트 브루스 배너. 원자화학자죠.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답니다. 가끔 뚜껑이 열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몸집이 평소보다 서너배가 커지고 눈도 머리칼도 피부색도 녹색으로 변해버립니다. 사람들은 그럴 때의 나를 ‘헐크’ 또는 ‘살아 숨쉬는 파괴 엔진’으로 부르더군요.

2. What do you have? 힘이 장사죠. 한번에 탱크 몇대 날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일당 천’이라고 들어나 보셨나? 저는 민간인도 아닌 군인 1천명을 혼자 상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몸집에 비해 민첩한 편이라 웬만해선 나를 따라잡을 수 없죠. 탄력이 좋아서 점프도 잘하구요. 잘 다치지도 않지만 설령 그런 불상사가 있다 해도 저절로 치유되곤 합니다. 한마디로 ‘분노가 나의 힘’이죠.

3. What is your story? 영화에선 어떻게 달리 다룰지 몰라서, 일단 만화 버전으로 말씀드리죠. 남부럽지 않게 문제 많은 가정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는 걸 보고 자랐어요. 그 고통스런 기억을 잊기 위해 공부에만 매달렸고, 인정받는 원자화학자가 됐습니다. 일명 썬더볼트, 로스 장군이 비밀리에 주도한 핵무기 실험에 동원된 게 화근이었죠. 실험 중에 위험천만한 감마선에 노출된 뒤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헐크가 돼버리는 거예요. 저의 유일한 안식처는 사랑하는 연인 베티입니다. 제 비밀을 알고도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그녀는, 핵무기 실험 프로젝트 이후 줄곧 저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로스 장군의 딸입니다.

4. What is your wish? 좀머씨 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날 좀 내버려둬! 내가 헐크로 돌변하는 건 내 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다구요. 그런데 썬더볼트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은 나를 잡아넣지 못해 안달이지요. 난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데… 너무 화가 나요. 화가…. (순간 헐크로 돌변하는 브루스 배너) 우워어~.

5. Character vs Cast 에릭 바나가 낙점되기 전에 어떤 사이트에서 설문조사를 했더군요. 네티즌들은 에드워드 노튼과 가이 피어스를 가장 강력히 지지했대요. 3위는 정말… 의외의 인물이군요. 스티브 부세미라… 음 노코멘트입니다. 에릭 바나라는 이름은 사실 생소합니다. 호주 출신이고, <블랙 호크 다운>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던가. 리안 감독의 안목을 믿어보렵니다. 그리고 헐크 버전의 그 디지털 배우, 말도 많고 탈도 많던데… 그래도 탱크를 투포환처럼 던져보이던 그 체력, 그 침묵 연기, 훌륭하지 않습디까.

궁금한 몇 가지

1.어떤 얘기인가<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그 원형인 코믹북 <놀라운 헐크>의 영화 버전. 스토리 라인이 크게 다를 순 없겠지만, 디테일은 ‘새삼스럽게도’ 비밀에 부쳐져 있는 상태다. 물론 <헐크>도 과학실험 도중 치명적인 감마선에 노출된 뒤 극심한 분노를 느낄 때마다 괴력의 녹색괴물로 돌변하곤 하는 젊은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고통스런 비밀을 열어보일 것이다. 영화에선 그런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썬더볼트 장군, 변함없는 사랑으로 감싸안는 연인 베티의 존재 못지않게, 그 아버지의 비중과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안의 작품인 만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에, 로맨틱하고 비극적인 정조를 채색한 결과물이 될 듯하다.

2.뭘 보여줄까<헐크>의 관건은 ‘변신 뒤’를 얼마만큼 리얼하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 제작진은 ILM에 위탁, 순수 컴퓨터그래픽(CGI)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헐크 고유의 태도와 감정”을 살려내는 동시에 코믹북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제작기간과 함께 예산이 불어나고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루머가 떠돌게 된 것도 바로 그 헐크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헐크>가 준비한 장관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시가지를 배경으로 헐크가 그를 쫓는 군대와 맞서는 후반부의 전투장면. <아이스 스톰> <블루벨벳>의 촬영감독 프레드 엘므스, <혹성탈출> <슬리피 할로우>의 프로덕션디자이너 릭 하인리히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도, 전반적인 비주얼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다.

3.어떻게 만들었을까<플레이어> <딥 임팩트>의 마이클 톨킨과 <엑스맨>의 데이비드 헤이터가 함께 쓴 시나리오를 <와호장룡>에 이르기까지 리안과 오랜 짝을 이뤄온 작가 제임스 샤무스가 손을 보면서 비로소 윤곽이 잡혔고, 2002년 3월부터 8월까지 애리조나,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캠퍼스, 서부의 외딴섬과 숲 등지에서 촬영을 전개했다. 애초 2002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했던 이 프로젝트가 제작기간과 더불어 예산이 불어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던 것에 대해 리안은 “제작비가 늘어났다는 건 관객에게 좋은 일 아닌가”라며 여유롭게 응수하는 한편,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 코믹북의 골수팬들과 자신의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영화 자체는 코믹북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지만, <두 얼굴의 사나이>에 헐크로 출연했던 보디 빌더 출신 배우 루 페링고를 카메오로 동원해 TV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다.

4.만화 vs 영화원작만화에서 브루스 배너의 아버지는 포악한 알코올 중독자로 그의 분노와 고통의 핵이 되는 인물이지만,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돌변하게 된 계기는 그 자신이 과학실험 중에 치명적인 감마선에 노출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유력한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영화에선 아버지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이 달라진다고 한다. 브루스 본인이 실험 중 사고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스스로를 실험도구로 활용한 과오가 브루스 배너가 ‘두 얼굴’을 갖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 그 아버지 역할로 닉 놀테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은 역할의 비중과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또 <헐크>를 “아버지가 자신의 창조물에 책임지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프랑켄슈타인>과 친연성이 있다고 본 현지 기자의 분석도,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5. 감독 가라사대"나는 <헐크>에 착수하기에 앞서, ‘헐크’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를 시도했다. 과학적으로는 인간의 세포가 어떻게 팽창할 수 있는지, 기술적으로는 거구의 괴물을 어떻게 형상화할지, 문화적으로는 헐크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알아보려 했다. 나를 매혹시킨 건 이 지점이다. 헐크가 수십년 동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슬픈 괴물’이면서, 동시에 슈퍼 히어로인 까닭이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두고두고 탐구할 가치가 있는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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