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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2]

여성영화가 달라지고 있다. 다양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그 스펙트럼을 한껏 넓혀가고 있다.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 여성 작가들이 그들의 성과 사랑을, 일상과 이상을 이야기한다. 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5인이 추천한 ‘새로운 여성영화’를 만나보자. 눈과 귀가 번쩍 열리는, 머리와 마음이 훤히 트이는, 충격적 만남을 보장한다.

비너스 보이즈(Venus Boyz)

감독 가브리엘 바우어/ 스위스/ 2001년/ 102분/ 35mm/ 다큐멘터리/ 새로운 물결프로그래머 추천사 _ 성의 경계 자체를 허무는 도발적인 드렉 킹의 에너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가끔씩 혹은 평생 동안 남자 옷을 입고 남자 흉내를 내는 사람들. 보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착적이라고 여길 남장 여자들을 <비너스 보이즈>는 돋보이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안에는 다양한 이유를 가진 드랙 킹(drag king)들이 나온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삶 자체이고 어떤 이에게는 즐거운 이벤트이거나 의식적인 공연이다. 후자의 경우 옷차림과 분장은 물론이고 가짜 성기까지 매단 채 무대 위에서 공연하기도 하는데, 남성성에 대한 풍자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에게 남장이란 내면에 있는 남성성을 겉으로 끌어내서 표현하는 것이고, 따라서 여성성 혹은 인간의 본성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으로 간주된다. 한 흑인 여성 가수는 인종, 젠더, 성, 계급에 걸쳐 온갖 주변부에 내몰려 있는 자신에게 남장이란 하나의 도전적인 돌파구였다고 말한다.

<비너스 보이즈>는 사이 공간(in-between)에서 사는 여성들을 통해 마치 건널 수 없는 대륙처럼 여겨지는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흥미롭고 강력한 다리를 놓는다. 드랙 킹이라는 예측불허의 움직이는 다리들 덕분에 성 정체성에 관한 완고한 벽이 급진적으로 해체되어 흘러내린다. 프레임과 이미지의 윤곽이 불분명하고 흐르는 듯 움직이는 것은 이같은 주제에 상응하는 형식상의 전략일 것이다. 드랙 킹들이 연출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그들의 내면을 들려주는 내레이션이 두개의 축을 이루고, 간혹 개인사나 일상이 조금씩 덧붙여졌다.

어쩌면 우리는 “생물학적 성은 여성이고 나의 남성성은 드랙 킹, 여성성은 아마조네스이며 드랙 퀸과 함께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식으로 자기 소개하는 시대를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축복(Blessed)

감독 레이첼 더글러스/ 뉴질랜드/ 2002년/ 77분/ 디지베타/ 드라마/ 새로운 물결

프로그래머 추천사 _

하늘을 나는 여성의 눈으로 본 여성들의 하루. 독창적인 이야기 구조가 돋보인다.

가정주부 나딘, 전기공 케빈, 여배우 크리스티, 카메라맨 데니스, 아시아계 여학생 조세핀, 매춘센터 접수원 한나, 사업가 리처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사는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없다. 한결같이 외롭고, 일상을 영유하기 위해 제 나름대로 분투한다는 것 외에는.

그런데 레이첼 더글러스 감독은 이들 사이에 ‘축복’의 연결망을 선사한다. 그 방법은 매춘센터와 하늘을 나는 여인 테레사다. 한국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비극과 폭력의 느낌 대신 이곳에서의 매춘은 단지 하나의 건조한 직업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각자의 돈과 육체를 서로 거래하면서, 현대의 여느 직업인들처럼 무미건조함과 소통의 부재에 시달린다. 거기에 비해 하늘의 천사는 좀더 시적이다. 자다가 문득 하늘을 날고 나뭇가지 위에서 깨어나기도 하는 테레사는 등장인물 모두를 연민의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몽유병 환자가 잠결에 현실을 벗어나긴 해도 땅 위의 길에 붙잡혀 있는 반면, 테레사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시점으로 웰링턴 시민들의 삶을 바라본다. 물론 그 자신도 쓸쓸하다. 이같은 유토피아적 무질서는 아마도 카메라의 시선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테레사를 포함한 사람들의 삶은 크고 작은 파국을 맞거나 변함없이 지속된다. 건조한 불모의 실존으로 가득 찬 대도시에서 이들은 과연 서로를 껴안을 수 있을까? 카메라가 형성시킨 가상의 연결망은 자신이 영화 속에 만들어낸 인물들에게 구원을 선물할 수 있을까? 영화 <축복>이 제시하는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매춘이라는 진부한 소재에 디지털이라는 새 매체와 참신한 화법을 결부시켜 새로운 의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자유를 향해>(Emporte-Moi)

감독 레아 풀/ 캐나다/ 1999년/ 94분/ 34mm/ 드라마/ 감독특별전

프로그래머 추천사 _

고다르의 걸작 탐구를 통한 열 세 살 소녀의 성장 영화

여성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입 우적 베어먹고 말 크로아상을 핀셋으로 한겹씩 들어내는 듯한 섬세함을 통해 여성의 자아가 성숙해가는 내밀한 순간의 빛을 포착해낸다는 것이다. <자유를 향해>는 이같은 여성영화 혹은 시네 페미니즘의 한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는 영민한 소녀의 성장기를 성숙한 감성으로 기억해내고 몽타주한다. 훔친 물건으로 친구 초대상 차리기, 그뒤의 나른함과 키스놀이, 평화가 없는 가정, 버려진 개, 고생만 하다가 식물인간이 된 엄마, 어설픈 창녀 흉내 등 맥락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한나의 내면 풍경을 각각의 사건에 대한 감정적 주석처럼 매번 펼쳐보임으로써 통일된 결을 확보한다.

“내 인생에서 국적이나 자신의 종착지 없이 떠돌아다닌 아버지를 둔 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남성은 한나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반면 한나에게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시켜주는 사람은 여성이다. 연민과 사랑으로 기억되는 어머니, 정체성과 쾌락의 모델이 되는 영화 속 여주인공,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갖도록 도와주는 여교사가 그들이다. 감독의 자전적 자아인 한나는 특히 고다르의 <그녀의 삶을 살다>에 나오는 주인공을 고스란히 따라하는데, 누벨바그의 여성적 독해 사례라 할 만하다.

한나의 손에 카메라가 주어지는 순간, 소녀는 내면의 상처를 벗어나 외면으로 향하는 시선을 갖게 된다. 재능 넘치는 사랑스런 소녀 배우가 홀로 기타치며 나지막이 노래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시네 페미니즘에 대한 하나의 요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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