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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2]
박은영 2003-04-25

본편 촬영 시작

96. 3. 19 | <모노노케 히메>를 작업하는 동안은 디지털페인트 기계를 CG부에 두기로 한다. 시아게(완성작업)부에 기계의 사용방법을 숙지시킨다. <모노노케 히메> 이후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더욱더 디지털화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이 정도의 작업은 CG부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96. 4. 4 |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가-나이젤 강의 이동어민>의 상영회가 열린다. 신입사원을 포함해 20명 이상이 관람한다. 사전에 미야자키 감독이 강제성이 다분히 엿보이는, 참여 권유 안내문을 붙였기 때문이다.

96. 4. 10 | 미야자키 감독이 정오 이후에 출근한다. 자택 근처에서 벚꽃을 관찰하고 왔다고 한다.

96. 4. 13 | 러시 체크에서 리테이크 분량이 다수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브에나비스타에 넘기게 될 그림 콘티의 카피를 부탁했더니 “복사만은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그만두겠습니다”라며 가버렸다. 그것도 인내력인가. 기가 막힌다.

96. 4. 29(월) | 미야자키 감독이 아침부터 침을 맞으러 갔다. 최근 그 횟수가 상당히 늘어난 것 같다.

96. 5. 6 |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지브리로 출근한다. <모노노케 히메>의 해외 배급을 디즈니사에서 맡기로 한 모양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걸로 되지 않냐”며 다소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해외 배급 건은 극비사항이라면서, 스스로 사원들에게 말을 퍼뜨리고 있다.

96. 6. 18 | 친분이 있는 잡지 편집자가 ‘만다라케’(주-만화 관련 중고서점)의 카탈로그를 보내왔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름을 내건 그 카탈로그에는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의 진귀한 작업물이 그득했다. <천공의 섬 라퓨타>의 레이아웃이 2만∼4만엔, 셀화가 3천∼8천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사인 색지가 20만엔 등으로 다양하다. 최고가품은 <하이디> 1화의 실제 그림 콘티로 60만엔이나 한다. 그 밖에 재미있는 것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스터의 인쇄 원판(물론 금속이다)이 팔리고 있다는 것. 니키와 엔도는 자신들이 그린 레이아웃이 상점에서 팔리고 있는 사실에 착잡한 표정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색지 한장이 20만엔에 팔린다면 하루 5장씩 그려서 생활해야겠군”이라고 농담한다. 물론 스즈키 프로듀서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96. 7. 6 | <푸른 연>으로 유명한 중국의 영화감독 티엔주앙주앙이 지브리를 방문해 미야자키 감독과 3시간 넘게 인터뷰를 한다…. 다음날 아침, 티엔주앙주앙 감독이 다시 찾아와 스즈키 프로듀서를 비롯한 부문별 주요 스탭들을 인터뷰하고 각각의 작업실을 비디오 카메라로 꼼꼼히 촬영한다. 아침 11시부터 시작된 취재는 미야자키 감독을 마지막으로, 밤 10시에 끝난다. 그의 집념과 끈기에 모두가 놀란다. 역시 중국 정부와 10년 넘게 싸워온 인물답다.

96. 7. 23 | 스즈키 프로듀서와 함께 디즈니와의 제휴 발표회에 다녀온 미야자키 감독이 “1500컷으로 생각하여 지금의 속도라면 원화는 언제 완성하나?”라고 묻는다. 예정했던 1380컷보다 120컷이 늘어났으니, 빨리 해도 한달, 현재의 속도라면 두달 가깝게 스케줄이 연장될 것이다. 원래 컷 수라 해도 원화가 10월 말에 완성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식이라면 1월 말까지는 걸릴 것이다. 원화 멤버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96. 8. 6 | 러시 체크가 있다. 리테이크가 다수.

96. 9. 4 | 미야자키 감독이 다음 관동대지진(50년마다 관동지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아직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다들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을 대비한 재해 훈련을 겸하여 이모니카이(감자, 고구마를 삶아먹는 파티)를 연다고 말한다. 재해 훈련과 이모니카이를 위해 미야자키 감독은 이런 지령을 내린 바 있다. “재해시 즉시 회사로 달려올 수 있는 독신 사원 10명 정도를 추려내게.” 그의 지령에 따라 회사로부터 반경 2km 내에 사는 직원 몇명을 선발하지만 재선발이 불가피하다. 미야자키 감독이 “5km 정도라면 충분히 걸어올 수 있지 않나”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96. 10. 3 | 지브리 내의 동화 멤버들에게,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의 상황인지를 자각하도록 한다.

96. 10. 9 | 근래 3주 동안 동화 체크 분량이 평균 1300장 정도로 저조하다. 주당 1천장만이 다음 작업을 위해 보내지곤 한다. 조금씩 동화 인력을 늘리고는 있지만 동화의 내용이 후반으로 가면서 어려워지고 있어 눈에 보이는 진전은 없다.

96. 12. 12 | 아침 11시 반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다. 원화부의 Y씨가 출근길에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로 출근하던 중 전신주에 부딪혀 공중을 20m 정도 날았다고 한다. 검사결과 상당한 중상임이 밝혀진다. 허리의 뼈, 골반, 등뼈의 골절에다 내장 출혈도 있다. 사흘 안에 피가 멈추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부상 수준이 골절 정도라고 들은 미야자키 감독은 “원화를 어떡하나”며 화를 내다가 나중에 중상이라는 보고를 접하고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몇 시간 뒤. 일단 위기는 넘겼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미야자키 감독을 포함한 사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96. 12. 23 | 미야자키 감독이 원화의 남은 분량을 체크, 상세한 할당표를 만든 모양이다. 원화 멤버를 (1) 작업량이 많이 남아 있는 신참 (2) 작업량이 많이 남아 있는 베테랑 (3) 좀더 추가할 수 있는 스탭의 세 그룹으로 나눠 최종 스케줄을 통보한다. 불가능한 스케줄을 세워 스탭을 혼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날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각자 노력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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