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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2]
심은하 2003-06-05

그러니까 그녀는

불안하게 반짝이는 불빛, 그러나 검은 재는 그녀 안으로만 떨어진다

토니 콜레트 Toni Collette

333

1972년생

주요작

1994 <뮤리엘의 웨딩>

1996 <엠마>

1998 <벨벳 골드마인>

1999 <식스 센스> |

2002 <어바웃 어 보이>

2002 <디 아워스>

토니 콜레트를 ‘조연’이라고 칭하는 건 사실 실례일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에서는 인상적인 조연으로 익숙하지만 그는 사실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오스트레일리아산(産) 여배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8살에 앤서니 홉킨스와 찍은 데뷔작 <스팟츠우드>로 호주영화협회의 여주조연상 후보에 오를 만큼 큰 주목을 받았던 코니 콜레트가 진정한 ‘월드와이드’ 배우로 도약한 것은 P.J. 호건의 <뮤리엘의 웨딩>을 통해서였다. 7주 동안 40파운드를 불리면서 만들어낸 뚱뚱한 몸에 꿈꾸는 표정과 세상 끝에 떨어진 표정을 오가며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뮤리엘’의 캐릭터는 강한 인상을 남긴 만큼 그의 이미지를 졸라매는 ‘코르셋’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화려한 글램록 스타 브라이언의 자유분방한 아내 맨디로 분해 감량한 몸을 자랑하듯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옷차림과 방탕한 입담으로 무장한 <벨벳 골드마인>의 토니 콜레트는 <뮤리엘의 웨딩>의 주근깨투성이 촌스런 처녀나 <엠마>의 맹한 숙녀 해리어트로 그를 기억하던 관객에게 강력한 한방이었다. 물론 <벨벳…>은 그녀에게 다른 식의 한방을 선물했지만. 브라이언 역의 조너선 라이 메이어스와의 연인 관계가 끝나자 그녀는 8달 동안 패닉에 가까운 상태로 칩거했고 이런 정서불안적 전적은, 병색 짙은 아들을 키우는 불안한 ‘싱글맘’이었던 <식스 센스>의 엄마 린이나 카펜터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툭하면 눈물바다를 이루는 <어바웃 어 보이>에서 조울증에 걸린 엄마 피오나의 뒷모습에서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렇게 토니 콜레트는 줄리언 무어의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하면서도 예의를 차리며 싸늘하게 돌아서던 <디 아워스>의 우아한 키티보다는 선병질적인 줄리언 무어의 역할이 더 어울렸을 법한 여자다.

“연기는 고문의 이상한 형태”라고 말하는 그에게 정말로 모든 연기는 고통의 산물처럼 보인다. 어떤 역할에서든 그의 쏟아질 듯한 큰 눈은 겁을 집어먹은 채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눈을 감을 생각을 하지 않는 배우다. 토니 콜레트는 어쩌면 이 ‘이상한 고문’을 즐기는 마조히스트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은하 lucie@hani.co.kr

그러니까 그녀는

이렇게 예쁜 조연 봤냐?

프랜시스 오코너 Frances O’Connor

1967년 생

주요작

1999 <맨스필드 파크>

2000 <일곱가지 유혹> | <어바웃 아담>

2001 <A.I.>

2002 <윈드토커>

2002 <어니스트 되기의 중요성>

2003 <타임라인>

아마도 프랜시스 오코너는 이곳에 등장한 조연배우들 중 가장 경력이 짧고, 가장 두드러지지 않은 배우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짧은 시간 내에 도약한 가장 운좋은 배우일는지도 모른다.

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균형잡힌 냉정과 열정을 타고난 그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2살 때부터 호주에서 자라났고 연기 아카데미를 거쳐 호주 TV에서 첫발을 떼었으며 주로 <키스 오어 킬> 등 적은 예산의 호주 독립영화에 출연해왔다. “나는 그저 착하기만 한 캐릭터들에서 구토를 느꼈다. 그럴 때 주변 사람들은 ‘그게 너야, 넌 아마 다른 역할을 못할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혀 다른 타입의 캐릭터에 나를 몰아넣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첫 번째 발판이 되었던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각색한 <맨스필드 파크>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여인 패니로 등장한 프랜시스 오코너는 “마치 빈칸으로 쓰여진 것 같아서 누가 어떻게 채워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릴 소설” 속 패니를 연약한 외모와는 달리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여성상으로 만들어냈다.

이후 할리우드 데뷔작인 된 <일곱가지 유혹>에서의 앨리슨은 달력 속 모델 같은 그다지 색다른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러나 할리우드라는 땅에 안전하게 착지하기에는 적절한 선택이었고 이 영화를 통해 프랜시스 오코너는 북미 관객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욱 비약적인 뜀틀이 나타났으니 이는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자나깨나 꿈꾸는 엄마 모니카로 캐스팅된 오코너는 이 영화를 통해 예쁜 아가씨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숙한 여성의 느낌을 풍겼고, 그의 적당히 현대적이면서도 적당히 고전적인 얼굴은 현재 속에 미래를 적절하게 심어놓은 <A.I.>의 프로덕션디자인 속에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이후 그는 오우삼의 <윈드토커>를 거쳐 콜린 퍼스와 <어니스트 되기의 중요성>를 찍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다. 프랜시스 오코너는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한 배다. 그가 어디로 갈지 어떤 향해를 하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지금껏 그의 편이었던 순항의 여신이 그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백은하 lucie@hani.co.kr

그러니까 그는

어디에 숨어도 보이는 남자, 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존 C. 라일리 John C. Reilly

1965년생

주요작

1989 <전쟁의 사상자들>

1993 <길버트 그레이프>

1996 <리노의 도박사>

1997 <부기 나이트>

1999 <매그놀리아>

2002 <시카고> | <갱스 오브 뉴욕>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 정도이다. “존 C. 라일리는 단지 한명의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유형이다.” 그래서 <시카고>의 에이머스가 처량한 표정을 짓고 아무리 셀로판, 셀로판 한탄을 하여도 그건 배우 존 C. 라일리 자신을 설명하는 농담 섞인 역설이 된다. 타락한 19세기 뉴욕경찰 해피 잭을 연기한 <갱스 오브 뉴욕>, 줄리언 무어의 남편으로 변신한 <디 아워스>, 무능하지만 착한 남편 에이머스를 떠맡은 <시카고>. 동시에 이 세편의 영화가 2003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면서 존 C. 라일리의 신화는 공고해졌다.

이제 할리우드의 조연들 중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정도이다. 예상이나 했겠는가? 시카고 태생의 문제아가 우연히 영화에서 보게 된 대학동창생의 연기를 보고 “저 정도는 나도 하겠는걸” 하며 아버지의 가업도 팽개친 채 배우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 누가 이 멋대로 생긴 사내에게 신뢰를 보냈겠는가?(그는 대학에서 같이 연기를 공부한 케빈 J. 오코너가 <페기 수 결혼하다>에 출연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1989년 <전쟁의 사상자들>로 데뷔한 이래, <천사탈주> <헬스키친>까지 그는 잘생긴 숀 펜과 짝패를 이루는 ‘막생긴 숀 펜’일 뿐이었다. 사실 테드 레빈만 아니었어도, <양들의 침묵>의 미치광이 버팔로 빌은 원래 존 C. 라일리의 몫이었을 정도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을 만나기 전까지 그랬다. <리노의 도박사>에서 레노 역을 맡으며 그는 <부기 나이트>의 포르노 스타, <매그놀리아>의 심성 좋은 경찰관까지 독창적인 캐릭터를 이어나간다. 그 독창성이란 주절거리고, 망설이고, 우유부단한, 무능함, 또는 비열함, 때로는 순박함이다. 이런 것들이 그를 하나의 ‘유형’이라 부르도록 만든다. 영화 속에서 그는 대체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인생 낙오자이다. 그러나 그가 “나는 말야, 우리 세대의 마이클 케인, 진 해크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야”라며 호언장담하는 순간 그 영화 속 불행 또한 역설을 맞이하게 된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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