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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칸 영화제 결산 [4]
박은영 2003-06-07

“비극의 원인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황금종려상과 감독상 휩쓴 <엘리펀트> 감독 구스 반 산트를 만나다

꼭 1년 전 칸영화제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을 초청했었다. 미국사회에 전방위적 공격을 가하는 <볼링 포 콜럼바인>은 감독의 선언과 주장과 쇼맨십으로 가득한, 그렇게 떠들썩한 센세이션을 기도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소재를 정반대 스타일로 다룬 극영화 <엘리펀트>가 ‘애프터서비스’ 내지 ‘비교체험’을 권장하기라도 하듯이 올해 칸을 찾아왔다. 주관과 분석이 이상하리만치 배제돼 있는 ‘영상시’ <엘리펀트>는 욕구불만의 영화제 내방객은 물론, 잊혀져가는 어린 망자들의 넋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영화제 규정(특정 작품에 상을 몰아주면 안 된다는)을 어기면서까지 <엘리펀트>와 구스 반 산트에게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안기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아이다호> 이후 줄곧 남의 시나리오를 받아 컨벤셔널한 영화를 만드는 데 안주했던 구스 반 산트는 이로써 진정한 ‘시네아스트’로서의 비상을 시작하게 됐다.

<엘리펀트>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을 오후의 교정을 찬찬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데리고 등교한 존, 오다가다 마주치는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엘리아스, 연습을 마치고 여자친구를 만나는 축구 선수 네이단, 수업 시간에 학급 친구에게 이유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알렉스,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알렉스의 단짝 에릭, 짧은 체육복 바지 입기를 거부하는 미셸, 그녀를 왕따시키는 미녀 삼총사 등등. 이들이 함께한 시간과 공간, 사건은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너번씩 반복돼 보여진다. 별스럽지 않은,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 위로 <월광소나타>와 <엘리제를 위하여>가 흐르면서, 이들의 마지막 순간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알렉스와 에릭이 왜 총을 들게 됐는지는, 끝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우린 구스 반 산트의 말처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사건의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다.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어!”라고 내지르는 대신 “재미 좀 보자”(Have fun)며 총을 드는 아이들. 구스 반 산트는 그처럼 폭력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맥락없이, 우리의 일상을 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아름다운 영화 <엘리펀트>는 그렇게 우릴 슬프고 망연하게 만든다.

타이틀이 앨런 클라크의 동명영화를 연상시킨다. 앨런 클라크 감독의 <엘리펀트>는 북아일랜드의 폭력문제를 다룬 영화로, 타이틀은 거대하고 심각한 나머지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가리키는 서양 속담 ‘거실 안의 코끼리’의 뜻을 차용했다고 들었다. 나는 장님 여럿이 코끼리의 귀와 다리 등 서로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이게 나무니 뱀이니 하고 다퉜다는 인도의 옛이야기를 생각했다. 아무도 전체를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나온 뒤인데, 같은 소재를 픽션으로 재조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 <아이다호> 이후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었달까. 컬럼바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이걸 텔레비전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사건에 연루됐음직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엔 텔레비전이 적합할 것 같았는데, 어느 방송사도 이 프로젝트를 감당하지 못했다. <HBO>에서 “<컬럼바인>은 못해도 <엘리펀트>는 할 수 있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인물의 행동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반복을 통해 특정한 시간대를 강조한 의도는 무엇인가. 나는 이 끔찍한 사건을 묘사하고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 자신은 컬럼바인 사태에 대한 견해가 있지만, 영화 속에 드러내진 않았다. 시적인 표현과 인상들을 통해 관객 스스로 대답과 이유를 찾아가길 바랐다.

초반부엔 다큐멘터리의 인상이 강하다. 실제 사건을 영화에 얼마나 반영했나. 사건의 원인이 궁금해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4년간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다른 작가가 <토미 건>이라는 초기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했고, 나는 그 사이 <제리>라는 작품을 찍기도 했다. 이후 선정성과 오락성을 완전히 탈색시키는 방향으로 <엘리펀트>의 가닥을 잡아갔다. 스토리는 실제 사건과 상상을 뒤섞어 구성했다.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나 충동은 없었는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볼링 포 콜럼바인>을 봤고, 정말 영리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클 무어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나와 다른 것 같다. 나는 총격을 벌인 두 젊은이가 인상적이었다. 지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그들은 자폐적으로 변해가고, 결국 자기 파괴로 나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동참을 강요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 배우들은 컬럼바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연기했나.

(존 로빈슨) 컬럼바인은 엄청난 비극이고, 미국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 사건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면서, 당시 그리고 지금의 미국 아이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꼈다.

(알렉스 프로스트) 그 사건은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학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180도 바꾸어놓았다.

(엘리아스 매코넬) 나는 홈스쿨을 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에 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인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앵글을 바꿔 같은 사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등의 촬영에 모티브가 있었나. 미리 계획한 것은 없었다. 초반에는 8mm 광각렌즈를 썼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나서 더이상 쓰지 않게 됐다. 내가 바란 것은 인물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주욱 쫓아가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알렉스가 피아노 칠 때 카메라가 뒤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가장 아낀다.

학살장면을 보여주느냐 마느냐에 대한 갈등은 없었나. 그 대목을 배제하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다. 이 결말을 향해 이야기 전체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비관습적이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등의 작은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보는 이의 뇌리에 남아 영화 전체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곤 한다. 어떤 연관을 의도했나. 피아노 연주를 삽입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범인 역을 맡은 알렉스가 피아노 치는 것을 듣고, 다음날 당장 촬영장에 피아노를 갖다놓았다. <엘리제를 위하여>나 <월광소나타>는 피아노를 좀 치는 사람이라면 즐겨 연주하는 곡들이다. 특별한 의도를 갖고 음악을 삽입한 것은 아니다.

총을 난사하는 두 소년이 동성애적 관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두 사람이 샤워하며 키스하는 장면은 다양하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이뤄진 성적 만남이다. 죽음을, 학살을 함께 계획하고 단합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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