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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X-ray 7 -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 방안 [2]
심은하 2003-06-26

“개별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수용상태, 인식변화에 대한 지식없이는 프로페셔널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세일즈 회사가 직면한 과제이며, 실제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1∼2년 안에 거품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각국 시장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DB 구축, 전문적인 마케팅 능력이 필수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금 안으로부터 나오는 정보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문혜주) 요컨대 지금 해외판매 종사자들의 화두는 DB 구축과 지역화(localize)가 되었다.

이 작업은 한국영화를 사서 개봉한 외국 회사들로부터 배급 실적 보고서(sales report)를 받는 데서부터 첫 단추가 꿰어진다. 그 다음 단계는 이들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여러 개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시장 특성에 대한 분석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개별 영화의 판매가를 판단하고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으며 현지 실정에 맞는 마케팅이 이루어지도록 협의하고 지원하는 고도화된 단계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쪽에서 프로모션하는 대상은 현지의 구매자들이다. 그들이 영화를 수입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이쪽의 정확한 목표가 되어야 하고 직접 관객에게 가닿는 문제는 현지 마케터들의 소관 사항”(신철 신씨네 대표)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도 유념해둘 만하다.

현재 판매회사 가운데 일부는 외국 회사로부터 마케팅 보고서를 받아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DB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자료에 대한 판단 능력도 초보적이거나 개안 단계라는 것이 자체 진단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민간회사 단독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이거나 효용성이 떨어지는 작업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끼어들어 근사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안성맞춤인 일인데, 민간회사는 “자료를 넘겨줘도 실적 발표용으로 쓰이고 만다”고 푸념하고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뜻은 있지만 지금 하는 일만 하기에도 일손이 달린다”(노혜진 영진위 해외진흥부)고 하소연한다. 영진위가 무언가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할 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얻어진 통계들은 “해외가 단일 시장이 아니다”라는 경험 법칙을 뒷받침해준다. “일단은 검은 머리 시장과 그 밖의 시장으로 확연히 나뉘고, 같은 아시아라도 일본, 대만, 홍콩이 다르고 비아시아 시장도 유럽과 미국이 다르다.”(이송원 전 미로비전 이사) 규모로 보면 아시아가 전체의 70%, 유럽과 북미가 20∼30%를 차지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같은 시각을 얻게 된 전환점이 된 영화다(표 참조). 한국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고 스크린 수가 10개만 넘어도 와이드 릴리즈로 간주되는 홍콩에서 프린트 17벌에 박스오피스가 2천만홍콩달러를 기록한 것을 비롯, 아시아 전역에서 대부분 흥행했다. 이후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영화의 상업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였고 한국영화가 안정된 가격에 협상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판매회사로서는 박스오피스와 마케팅(P&A) 비용의 관계를 인식하면서 개별 시장의 특성과 배급사의 역량에 대한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갖기 시작했다. 제작자에서는 “엽기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야만적, 잔혹한’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는 것을 몰랐다. 개봉 당시에 ‘서쪽에서 온 그녀’라는 제목을 제안받았는데 도쿄 입장에서 서쪽인 오사카 여자는 욕도 많고 드센 여자를 뜻하며 오사카에서 봤을 때는 한국이 서쪽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신철)고 했다. 결론은 제목 때문에 2∼3배의 시장 가능성을 놓쳤다는 것이다.

04. 국내 영화계 손발 맞춰야 할 때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부분 국내 개봉 위주로 후반작업을 서두르기 때문에 해외 판매용으로는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예컨대 ME(music & effect)를 따로 분리하지 않아 나중에 비용이 곱절로 들거나 아예 음원이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한다. 텔레시네의 전반적인 퀄리티 문제로 반려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번짐 현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특정 공정을 밟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 저작권도 영화를 팔고나서 사후 해결에 골치를 썩이는 분야. “아시아 지역은 아직 덜 민감하나 미국이나 유럽에 팔 때는 뒷골이 당긴다”는 게 세일즈맨들의 하소연이다. 이러니 최종 합의에 1년씩 걸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현지 배급에 맞추어 스타들이 홍보에 나설 수 있는 스케줄을 확보하는 것도 희망사항 중 하나.

중국의 불법복제에 대해서는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가 나서서 통상 문제 차원으로 협의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 현장의 불만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에서 800만 카피가 팔렸다는 설이 있고 전지현은 6억원짜리 CF를 하는 한류 스타가 되었지만 한국 회사는 수입이 거의 제로다.

판매회사의 역량 제고에 대한 요청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부스를 차린 회사를 기준으로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시네클릭아시아, 강제규필름, 미로비전, e픽처스, 튜브엔터테인먼트, KM컬처 등 총 7개사가 활동 중인데, 단순히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서 한발 나아가 영화에 대한 식견과 제작 및 기술 관련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제 기본 상식에 속한다. 아직은 부딪치면서 보충해가는 형편인데, 그나마 “파티걸 노릇에 그친다”거나 “자사 이기주의에 갇혀 큰 그림을 못 본다”는 불평을 듣는 사람도 없지 않다. 연간 제작편수 50∼60편인 나라에서 판매회사가 7개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숫자인데 각자의 장점을 특화해야만 시장의 압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단순지원에서 정책수립으로의 방향전환”(이건상)에 대한 요구를 인식은 하고 있으나 몸이 따르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업무는 선명하고 깔끔한 편이지만, 공적 기관이나 정부와의 관계 전반에 대해서는 요구하는 사람이나 돕는 사람이나 기대 수준이 낮다. 심지어 올해 칸영화제에서 문화관광부 고위 관료와 영진위가 보인 언행에 대해서는 “초를 치지나 말라”는 소리도 나온다.

방향전환의 일환으로 최근 영진위는 프랑스와 공동제작 협약을 맺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데, 무려 40개 국가와 유사한 협약을 맺고 있는 프랑스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교환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아직 기초적인 논의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가 안고 있는 예산상의 한계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업 협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송원 전 미로미전 이사는 “<쉬리>를 유럽에 내보낼 때 현대자동차가 서유럽에 5천만달러를 지원하도록 설득했다가 IMF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100만달러 정도는 단일기업에서 그리 큰돈이 아니고 영화는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아직 미개척인 영역이다. 재미있는 캠페인이 나올 소지가 많고 쌍방의 이익이 클 것이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머리의 문제”라고 제안한다.

영진위가 아직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단편독립영화다. “단편독립영화는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주류영화가 잘되는 나라는 반드시 단편독립영화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쪽 감독들은 영화제를 활용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나갈 수 있도록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단편독립영화의 제작편수는 400편대에서 고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모션의 혜택을 입는 것은 상위 25%이고 그중에 10편 정도가 해외 배급채널까지 닿는다. 30∼40편이 꾸준히 서클을 따라 돈다. 외국 시장 규모는 수천만원대, 국내까지 합하면 2억원 정도로 노하우나 네트워크가 쌓이면 장편처럼 큰돈 안 들이고도 활동할 수 있다. 초기 인프라 쌓는 것만 밀어달라”(구정아, 인디스토리 이사)는 요청을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국내의 각종 시스템을 효율화, 고도화하고 그것을 수행할 전문 인력과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조다. 이것은 해외문제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브루스 리 프로젝트’라는 7천만~1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할리우드에서 추진하고 있는 어떤 이는 “과대망상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할리우드의 쟁쟁한 사람들에게 안 꿀린다. 해볼 만하겠더라. 과정은 훨씬 길고 복잡하지만 영화 하는 사람들의 생리적 화학작용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단 한국에서 확실한 경험을 쌓고 공부해야 한다.”(신철) 이제 슬슬 움직여보는 거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편집 심은하eunha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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