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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로 가는 아시아 공포영화들 [1]
이다혜 2003-06-26

할리우드 호러, 동양의 원혼에 탐닉하다<검은 물 밑에서> <주온> 리메이크하는 할리우드, 왜 아시아 공포영화에 열올리나

지금 할리우드에는 낯선 유령들이 떠돌고 있다. 우물에 버려져 혼자 죽어간 소녀와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 목을 맨 처녀, 분노를 품고 죽어 저주를 내리는 원혼이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본 적이 없던 이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액션과 무협영화에 이어서 할리우드에 새로운 핏줄을 대주고 있는 <링> <디 아이> <주온> 등은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공포영화들이다. 저예산으로 만들었지만, 그 위력만은 만만치 않은 아시아의 공포영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고 있는 이 영화들의 매혹과 공포의 근원을 파헤쳤다.

아시아 공포영화가 할리우드를 흔들고 있다. 아직은 미진(微震)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충격이 닥칠 것이다. 이미 고어 버빈스키의 <링>이 북미에서 1억2천만달러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링>의 감독 나카다 히데오가 만들었던 <검은 물 밑에서>의 판권은 디즈니가 사들였고, <카오스>는 로버트 드 니로와 베니치오 델 토로의 출연이 결정됐다. 팡 형제의 <디 아이> 리메이크는 톰 크루즈의 제작사 크루즈-와그너프로덕션에서 만들어진다. 비디오영화로 출발하여 극장판으로 대성공을 거둔 <주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샘 레이미가 제작하고 감독 시미즈 다카시가 할리우드로 가서 직접 연출할 예정이다.

크게 눈에 띄는 목록만 이 정도다. 아시아 공포영화의 DVD 출시나 소규모 개봉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홍콩의 ‘마셜 아트’영화만이 아니라, 일본의 공포영화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마니아집단이 형성되어 있었다. 고바야시 마사키의 <괴담>과 신도 가네토의 <오니바바> 등은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인정받았고, 80년대 이후 만들어진 <기니어 피그> <오르간> 등의 저예산 공포영화들도 지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첫 번째 스플래터영화라고 말하는 이케다 도시하루의 <이블 데드 트랩>은 98년 제작 10주년을 맞이하여 LA 등의 아트시어터에서 개봉되었고, 올리버 스톤과 쿠엔틴 타란티노 등 익히 알려진 할리우드의 아시아영화광들이 찾아 축사를 하기도 했다. 홍콩 무술영화와 마찬가지로, 주류에 진입할 때는 이미 무르익었던 것이다.

피투성이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공룡이 되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할리우드가 일본 공포영화에 눈을 돌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이 증명하듯, 21세기의 할리우드는 동양 사상과 액션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리고 아시아 공포영화에서도 마침내 광맥을 찾아낸 것이다. 80년대 호러의 몰락 이후 90년대 들어 <스크림>으로 반짝 붐을 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호러는 고답적이었다. TV스타를 앞세운 10대 슬래셔영화, 첨단의 특수효과를 활용한 50년대 변종괴물영화와 고전 호러의 리메이크 등으로 조금씩 돌파구를 찾아나섰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가디언>은 1980년대 슬래셔영화 이후 미국 공포영화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식스 센스>와 <블레어윗치>가 있었고, 케빈 윌리엄슨의 자의식 강한 시리즈 <스크림>이 있었지만, 1970년대 <엑소시스트>처럼 초자연적이며 센세이셔널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할리우드는 우리 주변을 헤매던 원혼을 발견했다. 드림웍스의 제작부문 사장 로리 맥도널드는 1998년에 제작된 일본판 <링>을 3년 뒤에 보고는 보자마자 제작비와 맞먹는 액수인 100만달러를 주고 판권을 구입했다. 고어 버빈스키가 연출한 <링>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호러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세 번째 주말에 첫 번째 주말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이변을 낳았다. 그것은 서구의 관객이 <링>의 공포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단지 순간적인 충격효과나 잔인한 고어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등골이 오싹해지는 ‘아시아의 공포’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실 <링>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할리우드는 조금씩 동양적인 공포영화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는 전통적인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심령멜로영화에 가깝지만, 분명하게 원혼의 한풀이를 다루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승의 회한 때문에 자신의 죽음조차 모른 채 떠돌았고, 소년에 의해서 마침내 안식의 길에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식스 센스>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스터 오브 에코>도 동일한 주제를 다룬 공포영화였다.

아무리 몰락의 기운이 농후하다 해도, 공포영화는 할리우드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장르다. 공포영화는 제작비 1억달러가 넘는 여름 시즌 대작들과 달리, 비교적 안전한 투자대상이다. 1500만달러로 제작된 <스크림>은 국내외 개봉수입이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1억7500만달러에 달했다. 박스오피스를 집계하는 회사 박스오피스 이그지비션의 대표 폴 데가라베디언은 “호러는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장르다. 마케팅에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호러영화는 절대적인 팬층이 있다.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호러는 최종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미라맥스가 디멘션을 만들고, 조엘 실버와 로버트 저메키스가 합작하여 다크 캐슬을 만드는 이유다. 호러영화에는 분명한 마니아가 존재하고, 가끔씩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공포영화의 스릴을 즐기는 관객층이 있고, 때로는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질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과거에 <싸이코>와 <엑소시스트>가 그랬듯이.

<스파이더 맨>으로 주류에 안착했지만, 혁신적인 공포영화 <이블 데드>로 데뷔했던 샘 레이미는 <주온>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면서 감독 시미즈 다카시도 함께 데려왔다. 레이미는 시미즈 다카시가 미국 호러 장르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공포를 가져올 거라고 믿고 있다. 샘 레이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주온>은 분노와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자신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공포영화였고, 그 창백한 색조는 내가 만들었던 <이블 데드> 시리즈의 피투성이 영상과는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하얗게 분장했을 뿐인 동양의 원혼이, 어떻게 장난기 많은 레이미를 매혹시켰을까? 샘 레이미는 그 근원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3년 전에 만든 <기프트>는 어느 정도 <주온>과 닮은 점이 있다. 약혼자에게 살해당한 처녀가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여인 앞에 나타나 복수를 요구하는 <기프트>는 요란한 특수효과가 없는 공포영화였다. 핏기없는 흰 피부의 유령이 전부였지만, <기프트>는 죽음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며 원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동양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레이미는 침묵이 지배하는 아시아영화의 공포에 빨려든 것인지도 모른다.

핵심은, 공포와 두려움

고어 버빈스키는 “<링>은 증오가 어떻게 변해가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링>이 가지는 공포의 핵심을 고어 버빈스키보다 더 날카롭게 파악한 사람은 할리우드 최고의 메이크업아티스트 릭 베이커다. 베이커는 <맨 인 블랙> <너티 프로페서> <프라이트너>처럼 특수효과와 분장이 강렬한 영화에서 인상적인 메이크업을 맡아왔다. 그는 일본판 <링>이 자신이 사용하는 값비싼 도구가 없이도 더욱 무서운 장면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릭 베이커는 일본판 <링>이 시체의 창백해진 얼굴과 벌어진 입만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링>은 관객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사람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공포는, 피와 살점이 아니라 원한과 두려움인 것이다.

<링>은 미국 공포영화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원혼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동양의 괴담이 왜 매혹적인지를 다루면서, “우리는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적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령은 우리를 패닉 상태에 빠뜨린다”고 말한다. <링> <주온> <디 아이> <검은 물 밑에서>는 항상 우리 주위에 머물고 있는 원혼이 주인공인 영화들이다. 그들은 물리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보지 않거나, 그들 스스로 어디론가 떠날 따름이다. 서구의 합리적인 관객은 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악마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과 동일할 수도 있는 원혼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선입관과 편견에 의한 외면이 아니라면, 그 원혼은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편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서구 관객은 이제야 그 공포를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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