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말하는 장철과 그의 순결한 사내들 [2]

<복수>

나는 이 영화를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지구상에 비디오가 없었다. 영화는 극장에서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볼 기회가 없었다. 그것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걸 몽땅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부터 학교만 끝나면 미아리극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지막회까지 내내 보았다. 나는 정말 필사적으로 보았다. 단 한 장면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두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첫 장면부터 다시 복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기억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또 달려갔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나는 <심야의 결투>를 보고 또 보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영화는 숏으로 쪼개지며, 그 숏들은 신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걸 책이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그리고 숏으로 암기하는 것보다 신으로 외운 다음 그 신을 쪼개는 숏으로 기억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다. 토요일에 간판이 바뀌었고, <심야의 결투>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슬픈 일이었다. 물론 신문을 뒤져서 실린 상영극장표를 통해 다른 극장에서 하는 것을 발견했지만, 뚝섬극장은 초등학교 5학년이 가기에는 우리집에서 너무 멀었다.

세트,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같은 절망의 공간

그러나 여기가 클라이맥스가 아니다. 장철 영화를 기다리는 나날은 계속되었고, <단장의 검>과 <용호의 결투>는 심금을 울린 만했다. 내가 보기에 <철수무정>은 좀 별로였고, 는 장철의 야심적인 시대극이며, 물론 명장면도 있지만(특히 함정에 빠진 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질릴 만큼 기나긴 대결의 연속) 산만하다. 그리고 여기에 <수호지>를 더해야 한다. 또는 <권격>(과 그 속편인 <흑객>). 이건 진짜 놓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내 생각에 장철의 최고 걸작은 <복수>이다. 이건 백번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교 1학년 때 대지극장에서 보았다. 깡따위와 적룡(그 당시에는 다들 추룡이라고 불렀다) 콤비의 탄생을 알리는 이 영화는 온통 어둠과 음울함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밤이거나, 어두운 극장이거나 실내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아주 나쁜 꿈이다. 아그파컬러의 어두운 감촉은 몽환적이지만, 그것은 악몽이다. 세트장이 너무나도 분명한 장철의 영화는 그걸 일종의 탈출이 불가능한 공간처럼 이용한다. 그래서 시종일관 쇼 브러더스 세트장에서 작업한 그의 공간은 일종의 심리적인 막다른 골목이며, 그 안에서 보는 사람은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리고 <복수>는 그걸 정말 끝까지 가본다.

베이징오페라극장의 주인공 연기자인 적룡은 예쁘지만 바람난 아내가 있다. 이 아내를 극장주와 사내들이 기웃거리자 적룡은 경고한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다. 항상 그런 것처럼. 음모가 꾸며지고, 작은 새장을 들고 차를 마시기 위해 적룡이 객잔을 찾아온 순간 함정에 걸려든다. 이 2층 객잔에는 모두 악당들뿐이고, 적룡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척하던 악당은 그의 등 뒤에서 칼로 찌른다. 그런 다음 수십명이 달려들어서 적룡을 난자한다. 시작하자 10분 뒤에 벌어지는 이 장면은 진짜 명장면이다. 악당들은 칼과 도끼를 들고 사방에서 달려들고 이층 난간에서 아래층으로 떨어지자 그 아래서 기다리던 수십명의 악당들이 달려든다. 그리고는 두눈을 찌른 다음 앞이 보이지 않는 적룡에게 돌아가면서 찌르고, 베고, 찍고, 쑤신다. 이 장면을 장철은 한껏 즐긴다. 적룡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앞이 보이지 않아 적들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순간은 그의 베이징 오페라 무대의 장면과 교차되고, 그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있는 대로 절망의 시간을 늘려놓기 시작한다.

<십삼태보>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이제 형의 죽음을 알게 된 깡따위(나는 이 이름이 주는 어감이 좋다!)가 돌아와 ‘복수’를 시작한다. 여기서부터가 거의 죽음이다. 어둠과 그림자로 가득 찬 이 세트장에서 저 세트장으로 연결되는 장면들은 이제 여기서 누구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때 아주 유치한 수준으로 카프카를 읽고 있었는데(그 나이에 뭘 알았겠는가?), 장철의 이 영화야말로 카프카적인 미로라고 내 일기장에 그날 썼다. 물론 마지막 장면은 피가 넘쳐나는 대살겁이 벌어지며, 동생 깡따위는 또 다른 음모에 빠져서 더 끔찍하게 죽어간다. 그런데 나는 그게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하게 보였다. 칼은 짧아지고, 격투의 거리감은 더욱 가까워지고, 공간은 더욱 좁아져서 피할 데가 거의 없어 보인다. 거기서 칼부림은 마치 내 몸이 베이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 피는 정신의 정화이며, 죽음에 이르는 저 피할 길 없는 운명은 영혼의 순결이었다. 장철은 거기서 어린 중학생에게 세상은 음모로 가득 차 있으며, 배신은 질서이며, 죽음은 곁에 있고, 그 안에서 너는 어차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복수>가 위대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적 구조의 필연성을 찍었기 때문이다. 결국 악은 승리하고, 육체는 부서진다. 거기서 영원한 것은 죽음뿐이다. 그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는 사실상 영웅주의의 부정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반쯤 넋이 나갔다. 나는 다시 한번 매일같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매일 대지극장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좀더 체계적이 되어서 노트를 들고 가서 장면을 베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 어찌하랴! 다음주 토요일은 너무 빨리 다가왔고, 나는 이 영화와 작별해야만 했다. 그래서 금요일에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빼먹고 대지극장에 가서 하루종일 이 영화를 보았다. 거기서 도시락을 먹고, 저녁으로 빵을 먹으면서 보고 또 보았다. 나는 그날 텅 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슬프게도 작별인사를 하는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처량했다. 그건 나의 가장 슬픈 하루였다.

그리고 약간의 후일담

그리고 그 이듬해 7월16일 피카디리극장에서 이소룡의 <정무문>이 개봉했다. 이소룡의 첫 번째 한국 개봉작이었다. 나는 그 영화가 (그의 열렬한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진짜 재수없었다. 거기서 나는 아무런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장철의 저 말할 수 없는 처절함과 육체에 대한 황홀감은 더이상 거기 없었다(더 정확히 말하면 이소룡의 영화는 그 어떤 영화도 액션의 숏감각이 한심하고 따분했다. 장철의 화면들과 편집이 보여주는 저 일사불란한 황홀감이 이소룡 영화에는 없다). 그 이후 진짜 이상하게도 장철의 영화는 개봉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이소룡 때문에 홧병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합리화했다(장철은 2002년 6월22일에 죽었다). 그리고 다시 그 이듬해 11월 나는 프랑스문화원에서 고다르를 발견하였다. 나에게는 홍콩영화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고, 그 이듬해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패배하고 철수하였다. 나는 온통 폭력과 음모로 넘쳐나며,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지내야 했던 박정희의 시대를 그렇게 살았다.

약간의 후일담. 그리고 난 다음 나는 줄기차게 저 영화들을 다시 보기 소망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장철의 67년에서 73년에 이르는 영화들은 비디오로 볼 수 없었다. 75년 이후 장철이 류가량과 손을 잡고 만든 일련의 소림사 연작들과 ‘상당히 민망한’ 80년대 영화들은 심심찮게 비디오로 구할 수 있었지만 저 기억 속의 위대한 영화들은 결코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살아생전 저 영화들을 다시 볼 것인지 내심 초조하였다. 그런데 드디어 그 영화들을 다시 만난다. 그것도 비디오가 아니라 필름이다. 정말 기쁘다. 그건 달리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나는 장철의 나머지 영화들도 그렇게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막무가내로 기다릴 것이다(나는 이 글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다. 때로 어떤 글은 평생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

제7회 부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쇼 브러더스의 영화홍콩영화 황금기의 유산 6편

장철, 호금전, 이한상 감독 등의 무협영화를 제작한 쇼 브러더스는 1920년대부터 영화제작과 극장업에 뛰어든 회사로 1957년 홍콩에 대규모 스튜디오를 건립한 이후 홍콩영화의 황금시대를 장식했다. 장철 감독의 시대가 저물면서 무협영화의 주도권은 이소룡과 성룡의 작품을 생산한 골든하베스트로 넘어갔다. 올해 부천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쇼 브러더스 회고전에선 장철 감독 영화 네편을 포함해 쇼 브러더스의 유산 6편을 소개한다.

양산백과 축영태 梁山伯與祝英台

감독 이한상/ 출연 능파, 요체/ 123분/ 1962년

중국 4세기가 배경인 민간설화 <양산박전>을 스크린에 옮겨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서극의 <양축> 역시 같은 이야기로 만든 영화다. 남자만 학생으로 받는 서원에 남자로 변장해 입학한 축영대는 그곳에서 양산백을 만나 3년간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나눈다. 어느 날 축영태는 아버지의 급한 부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양산백은 그가 떠난 뒤에야 축영태가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베이징오페라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일종의 뮤지컬로 베이징오페라의 전통에 따라 여배우인 능파가 남자인 양산백 역을 맡았다. 감독 이한상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홍콩 박스오피스를 휩쓸었던 흥행감독으로 호금전의 영화스승이기도 했다.

대취협 大醉俠

감독 호금전/출연 정패패/ 94분/ 1966년

1967년 국내에서 <방랑의 결투>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던 호금전의 첫 번째 무협영화. 지난해 호금전 회고전에서 누락된 작품으로 올해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새 프린트로 상영될 예정이다. <와호장룡>에서 ‘푸른 여우’로 나온 정패패가 도적떼에 납치된 오빠를 구하러 도적떼 소굴로 뛰어드는 여성 검객 금연자로 나온다. 영화평론가 스티븐 테오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 고독한 총잡이, 악당으로 나오는 무법자들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니콜라스 레이의 <쟈니 기타>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독비도 獨臂刀

감독 장철/ 출연 왕우/ 111분/ 1967년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로 잘 알려진 영화. 왕우가 외팔이 검객으로 등장, 무협영화의 스타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왕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펑강은 아버지가 스승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뒤 스승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하지만 스승의 외동딸과 사형들은 그런 펑강을 질투하고, 더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한 펑강은 아버지의 유품인 부러진 칼을 챙겨 스승의 집을 나온다. 그때 스승의 외동딸이 그를 막으려다 실수로 펑강의 오른팔을 자르게 된다. 지나가던 여인에 의해 목숨을 건지는 펑강, 시간이 흘러 스승의 집에 위기가 닥치자 외팔이 검객이 나타난다.

금연자 金燕子

감독 장철/ 출연 정패패, 왕우/ 108분/ 1968년

국내 개봉 제목은 <심야의 결투>. <대취협>의 속편격으로 <대취협>과 마찬가지로 정패패가 금연자라는 이름의 여성 검객으로 등장한다. 강호를 떠나 산속에서 한타오와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던 금연자는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곳곳에서 도적을 죽이고 시체 옆에 금연자의 비녀를 놓고 가는 사내 은붕, 그는 자신의 사매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금연자를 강호에 끌어내려 한다. <독비도>의 왕우가 은붕으로 등장, 혼자 수십명을 쓰러뜨리는 절세무공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장미 넘치는 결투장면은 오우삼 영화의 근원을 짐작게 한다.

십삼태보 十三太保

감독 장철/ 출연 강대위,적룡/ 125분/ 1970년

국내 개봉 제목은 . 무협영화이자 전쟁스펙터클로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당 말기, 지방 제후인 리계영에겐 뛰어난 무공을 가진 13명의 무사가 있다. 반역자의 무리가 장안을 점령하자 그들은 장안에 잠입해 반역자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계략을 세운다. 제후는 총애하는 막내에게 작전을 지휘하도록 명령하는데 넷째와 열두 번째가 이에 반발해 작전 수행 도중 대열을 이탈한다. 왕우 다음에 등장한 장철 영화의 스타, 강대위와 적룡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영웅본색>의 적룡이 다리 위에서 펼치는 일당백의 액션과 강대위의 사지절단 장면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복수 報仇

감독 장철/ 출연 강대위, 적룡 / 98분/ 1970년

1970년에 같은 제목으로 국내 개봉했던 <복수>는 장철 영화의 지지자들에 의해 최고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1925년 중국. 경극배우 관유로우(적룡)는 자신의 아내를 희롱한 극단주에게 경고를 보낸다. 그러나 오히려 앙심을 품은 극단주는 관유로우를 살해한다. 동생 관샤오루(강대위)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극단에 위장잠입하고, 복수의 액션이 펼쳐진다. 강대위는 <십삼태보>에서 연기한 리춘샤오 역과 상반되는 냉철하고 무표정한 캐릭터로 등장하여 피의 복수극을 이끌어간다. 검술영화에서 쿵후영화로의 이행과정에 놓여 있는 장철 감독의 과도기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