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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1]
2003-08-14

그는 황야에서 인간을 발견했다할리우드 서부극의 장인 존 포드, 그의 걸작 15편 미리 보기

8월22일(금)부터 31일(일)까지 개최되는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미국 서부영화의 수호신 존 포드의 회고전을 마련한다. 영화제 동안 상영될 존 포드의 작품은 <역마차> <청년 링컨> <분노의 포드> <수색자> <황야의 결투> <리오 그란데> 등 193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는 총 15편이다. "나는 서부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외친 가장 미국적인 장르의, 가장 대중적인 작가 존 포드. 그 위대한 총잡이, 존 포드를 만나러 가자. 편집자

올해는 존 포드가 사망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1973년 8월31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난 서부극을 만들었을 뿐”(I made the Westerns)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1917년 처음 연출을 맡은 이래 14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으며 그 가운데 54편이 서부극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무엇보다도 할리우드 서부극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왔다. 사실 그는 할리우드 서부극의 역사 그 자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사랑받았고 평생 총 6차례에 걸쳐 아카데미상을 수상- <정보원>(1935), <분노의 포도>(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조용한 사나이>(1952) 그리고 다큐멘터리 2편- 하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를 대표하는 장르인 서부극을 통해서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존 포드는 1894년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아들로 태어났다(그 당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포드가 경험한 아일랜드인 특유의 기질 및 공동체 지향성은 이후 그가 만든 영화들 속에 빈번하게 드러나곤 한다. 그는 19살에 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다 실패하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곧 중퇴한 뒤 초창기 영화계에서 감독으로 일하고 있던 형 프란시스를 따라 영화 일에 뛰어든다. 그가 나중에 비평가이자 감독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본디 영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저 ‘배고픔’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화현장에서 감독을 처음 맡게 된 이후 존 포드는 1923년까지 잭 포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30년대는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시작한 시기로 분류되는데(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첫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인 <정보원>을 내놓았다), 특히 1939년은 그의 이력에서 중요한 해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에 그는 <드럼스 어롱 더 모호크>와 <젊은 날의 링컨>(뒤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들이 공동작업으로 행한 이 영화에 관한 길고도 꼼꼼한 분석은 유명하다), 그리고 비평가 앙드레 바쟁이 “고전적 완성으로까지 도달한 스타일의 성숙성을 나타내는 이상적 예”라고 불렀던 <역마차>를 동시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역마차>는 이후 포드의 서부극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사용되는 모뉴먼트 밸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영화로도 알려져 있다.

헨리 폰다가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 역으로 등장하는 <황야의 결투>(1946)를 통해 자신만의 고전적인 이상주의와 도덕적 공동체를 완성한 그는, 이후 이른바 ‘기병대 삼부작’으로 알려진 일련의 작품들- <아파치 요새>(1948), <노란 리본을 한 여인>(1949), <리오 그란데>(1950)- 에서 이를 심화하는 한편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아마 <웨건 마스터>(1950)일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체계에 대한 어떠한 의혹이나 자의식도 드러내지 않는 이 단순하지만 매혹적인 서부극은 포드 자신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가 “성취하고자 했던 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었으며, 포드의 열렬한 찬미자였던 린제이 앤더슨은 이를 “아방가르드적 웨스턴”이라 이름붙였다.

<리오 그란데>를 발표한 이후, 1950년대에 포드는 <존 웨인의 기병대>(1959)를 연출하기까지 이상하게도 단 한편의 서부극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걸작의 반열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수색자>(1956)이다. 여기서 포드는 그간 스스로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거의 모든 도덕적 가치들을 두고 격전을 벌이는데, 이러한 자의식적인 태도는 또 하나의 후기 걸작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에선 깊은 회한과 노스탤지어의 감정과 융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거의 최고조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포드가 후기에 연출한 작품들은 오히려 오늘날에 와서야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을 듯싶다.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 대한 완벽한 거울상 같은 낙천적 희극 <도노반스 리프>(1963)나 동성애적 암시로 넘쳐나는 포드의 마지막 장편영화 <일곱 여인들>(1966)은 그야말로 거장의 ‘마지막 함성’ 같은 걸작들이다. 이후 포드는 다큐멘터리 두편을 더 연출했을 뿐이다.

이상 주로 포드의 서부극에 관해서만 언급했지만, 이번에 우리에게 찾아올 14편의 영화 가운데는 비단 서부극만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포드의 영화들은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영화적 스타일로 지극히 복합적인 주제를 표현할 수 있었던 드문 예를 보여주는데, 그저 포드를 ‘서부극의 장인’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 회고전을 통해 그가 얼마나 폭넓은 세계를 펼쳐낸 인물이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운성 /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1]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2]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