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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2]
권은주 2003-09-05

관광객, 동네주민, 언론인 그리고 스타들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브뤼노 뒤몽의

8월27일 현지시각 저녁 7시30분, 개막식이 열리는 팔라초 델 치네마 앞은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과 자전거를 몰고 온 동네주민, ID카드를 목에 두른 언론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올해 개막식장 앞은 붉은 카펫 대신 나무로 만들어진 ‘파도’(The wave)라고 이름 붙여진 조형물로 장식되었다. 60회 베니스영화제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주단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한 이 ‘파도’는 지난해 개막식장 앞을 나누면서 원성을 샀던 높은 연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 설치되었다. 지역 행정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말하자면 ‘관내예술가’인 카를로 카파이에 의해 설계된 연단은 영화제 3주 전부터 대규모 공사에 들어가 개막식 아침이 돼서야 완성이 되었다. 하델른은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몇번이고 연단의 끝과 끝을 오가면서 새로운 연단을 시험했지만 정작 귀빈들은 그다지 ‘파도타기’를 즐기지는 않았고 언론에서는 “캣워크라기보다는 스케이드보드용 구름판 같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파올로 코스타 베니스 시장을 비롯해 정계 인사들이 입장한 뒤 어깨에 가짜 앵무새인형을 달고 등장한 이탈리아 원로배우 마리나 리파 디 메아나, 이탈리아의 신예스타 알레산드라 마르티네스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잠잠했던 극장 앞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프리다! 프리다!” 지난해 개막작인 <프리다>의 주연을 맡았고 올해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베니스를 찾은 샐마 헤이엑은 자신의 이름보다 ‘프리다’로 불리며 누구보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제이슨 빅과 크리스티나 리치, 그리고 아내 순이 플레빈을 대동하고 우디 앨런이 등장하자 술렁이던 분위기는 “우디! 우디! 우디!” 하는 구호에 가까운 복창으로 잠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제는 9월6일, 베니스 골동품상과 사랑에 빠진 캐서린 헵번의 55년작 <섬머타임>의 복원판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가만있자, 약국이 어디 있더라? 세계 각국의 명망높은 요리사들이 차려낼, 영양가 넘치고 가끔 양도 많은 이 영화들을 다 먹어치우다보면 소화불량에 걸릴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소화제를 챙길 시간이 온 것이다.편집 권은주

베니스의 우디 앨런

“ 나는 여전히 작고, 여전히 유대인이다 ” <애니싱 엘스> 들고 베니스 찾은 우디 앨런 인터뷰

1977년작 <애니 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 농담이 생각나는군. 어떤 남자가 정신병원에 찾아와서 그러죠, 우리 형이 미쳤어요 자신을 닭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의사가 대답해, 그럼 당신 형을 데리고 와봐요, 그 친구 대답이 뭔 줄 알아? 그럼 계란을 못 낳잖아요. 남녀관계도 그런 것 같아, 비이성적이고, 광적이고 부조리해.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사랑을 할 거야. 왜냐면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 제60회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우디 앨런의 <애니싱 엘스>를 보며 <애니 홀>을 떠올리지 않을 재간은 없다. 내러티브에서 빠져나와 끊임없이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주인공이나, 때론 자신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상황을 관망하는 장면 등은 거의 찍어낸 듯 똑같다. 그러나 감독은 이제 카메라를 향한 자신의 숏을 거두고 그 자리를 한 젊은 남자의 정면 프로필숏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의 입을 빌려 왜 우리에게 여전히 ‘계란’이 필요한지, 왜 계속해서 다른 무언가를 찾아가며 살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애니싱 엘스>는 <애니 홀>의 사반세기 뒤의 개정판이자, 한쌍의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과장되지 않은 유머와 수다 속에 풀어낸 우디 앨런풍의 로맨틱코미디다.

뉴욕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 제리(제이슨 빅스)는 “늘 약속시간에 늦고 실수투성이에 예측불가능한” 여자친구 아만다(크리스티나 리치)를 만나면서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에겐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친구 도벨(우디 앨런)이 있지만 그 역시 안전강박과 편집증으로 고생하는 상담이 필요한 인물이다. 운명적인 첫 만남, 몇번의 이별과 결합을 지나 아만다와의 관계가 끝나갈 무렵 도벨은 제리에게 자신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도벨은 우연히 총기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제리는 결국 홀로 뉴욕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 68살의 노감독은 떠나는 젊은이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삶이란 그저 ‘다른 무언가’(anything else)를 찾는 거”라고, 아만다의 엄마가 피아노를 치며 들려주는 노래가사처럼 “울지마, 또 다른 봄이 찾아올 거야”라고.

그동안 많은 작품이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었음에 불구하고, 영화제 기간 동안 당신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지난해 칸영화제에 간 것은 내 인생 처음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베니스까지 왔다. 두 영화제는 내가 자라나면서 가장 로맨틱하고 근사하다고 느낀 이벤트였다. 나는 솔직히 ‘축제형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탈리이 사람들은 프랑스 관객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나와 나의 영화들을 지지해주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내 영화를 봐왔다면, 펠리니나 안토니오니 등 많은 이탈리아 거장감독들의 영화로부터 내가 얼마나 많은 도둑질을 해왔는지 알 것 아닌가? (웃음)

예전과 다름없이 코믹한 농담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애니싱 엘스>는 당신 영화 중 가장 절망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픈 왕관을 쓰고 절망에 빠진 한 코미디언, 내가 바로 그렇다. 나는 지금 우울하고 회의적이며, 현실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난 아직도 이런 것에 대응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를 절망하게 하는 주제들을 계속 다루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음악과 농담을 실은 한 시간짜리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이 상황에서 도망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시도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애니싱 엘스>에서 연기한 도벨은 지금껏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우디’와는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당신이 지금껏 보여주던 캐릭터들은 젊은 제이슨 빅스에게 옮겨간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내가 조금만 젊었으면 그 역을 했을 거다. 하지만 즐거운 사실은 제이슨이 나와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나의 연기를 흉내냈다면, 정말 우스꽝스럽지 않았겠나? 그랬다면 도벨과 제리, 두 캐릭터의 차이점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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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분명히 그놈들이 주(jew-유대인)스 달라고 했단 말야” 같은 대사는 당신의 유대인으로서의 끊임없는 강박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영화란 게 늘 사람들의 존재에 관련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사실 그 예는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유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서 다른 장애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항상 어떤 압력에 눌려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공격적인, 그러면서도 실수가 많은, 비판받을지도 모른다는 태도가 있다. 뭐가 달라졌나. 나는 여전히 작고, 여전히 유대인인걸.

비록 코믹한 방법이라도 영화는 9·11 이후 드러난 뉴요커들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외부적으로 보이는 뉴욕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뉴욕은 똑같다. 일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이나 도시의 리듬이 변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전과 다른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상에 자주 파시즘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왜냐하면 모두 파시즘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도 이 두려움이 느껴진다. 테러리즘은 여러 위험한 태도들을 산출했다. 모두 철저한 안전을 원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1]

▶ 제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현장리포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