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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김무령 [1]
문석 2003-09-05

여성들이여 충무로를 바꿔라!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11인과의 조우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등 올해 세인의 주목을 받은 영화들에는 얼핏 눈에 띄지 않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5편 모두 프로듀서가 여자라는 사실. <지구를 지켜라!>의 김선아, <살인의 추억>의 김무령, <장화, 홍련>의 김영, 의 안수현, <바람난 가족>의 심보경 등은 심재명, 오정완, 김미희 등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여성 제작자의 뒤를 잇고 있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의 안은미와 <거울속으로>의 김은영도 올해 충무로 데뷔작을 낸 프로듀서. <스캔들>의 이유진, <귀여워>의 이선미,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의 이유진(동명이인) 등 올해 하반기에 개봉할 영화 가운데도 여성프로듀서가 제작한 작품은 적지 않다. 이 밖에 <친구>의 현경림, <청춘>의 오은실, <밀애>의 신혜은, <H>의 류진옥 등도 현재 작품을 준비 중이며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 중이라 이번 취재에 응하지 못했던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미영, <중독>의 임혜원, 두 프로듀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바야흐로 2세대 여성프로듀서가 충무로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프로듀서가 된 경로를 돌아보면 90년대 초·중반 영화사 기획실에서 막내사원으로 출발한 인력이거나 그무렵 제작부, 연출부에서 경험을 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한국영화의 산업화 과정을 연구한다면 새로운 여성프로듀서의 등장을 한 챕터로 다뤄볼 만하다. 일단, <씨네21>은 지금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여성프로듀서 2세대들의 면면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 편집자

흥행을 부르는 마케팅의 귀재

| 김무령 | 2001년 <인디안 썸머> | 2003년 <살인의 추억>

| 프로듀서의 길

앳되 보이는 용모와 어울리지 않게 김무령(35) 프로듀서는 충무로 13년차의 베테랑이다. 마케팅으로 시작, 차츰 기획업무와 제작부로 옮아간 그의 경력은 전형적인 한국 여성 프로듀서의 행보와 일치하지만, 성취도 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로드쇼> 기자가 될 뻔했던(당시 기자를 뽑지 않아 그는 번역일만 했다) 그가 졸업 직후 선택한 직장은 이장호 감독의 판영화사였다. 당시 기획실장이던 유인택씨 아래서 <숲속의 방>과 <핸드백 속 이야기>를 홍보한 뒤 다남흥업에 들어간 그는 <사랑과 슬픔의 여로> <위험한 여자> 같은 외화를 극장에 거는 일을 했다. 1년 반 동안의 ‘트레이닝’을 마친 뒤 그는 92년 한국 여성 프로듀서의 산실이라 할 만한 신씨네 기획실에 들어간다. <미스터 맘마> 준비팀으로 결합한 뒤 <백한번째 프로포즈> <구미호> <결혼 이야기>까지 홍보를 한 그는 <은행나무 침대> 때부터 기획실장직을 맡아 <편지> <약속> <거짓말>을 차례로 기획하며 신씨네의 전성기를 함께 누렸다. 현장에 상주만 하지 않는다뿐이지 기획에서 마무리까지 총괄했던 탓에 당시 프로듀서 일의 절반 이상은 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신씨네의 대표 인력 중 하나로 자리잡았던 그는 1999년 <거짓말> 개봉이 연기된 상황에서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 대책없이 뉴욕으로 떠났다. “스스로도 신씨네에 말뚝박는다, 생각했는데… 아마도 오래 함께 일했던 조직과의 애증, 심신의 피로 때문이 아니었을까.”

재충전을 마치고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의 제안으로 2000년 싸이더스 창립과 동시에 결합하게 된 그는 <화산고> <봄날은 간다> <인디안 썸머> 중, 프로듀서 데뷔작으로 가장 현실화 가능성이 높고 자신의 능력을 잘 담을 수 있는 <인디안 썸머>를 선택했다. 신씨네 시절 <백한번째 프로포즈>를 쓰는 등 잘 알고 지내던 노효정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 또한 그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 프로듀서의 시련

처음으로 프로듀서 직함을 단 작품 <인디안 썸머>의 작업 초반, 그는 이중의 문제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현장쪽의 일을 잘 모르는 탓에 나름의 콤플렉스와 조급증이 있었고, 다른 한쪽으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마케팅 부서와의 조화로운 관계였다. 하지만 막상 나가본 현장은 제작부원들을 잘 활용하고 감독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만 된다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마케팅 부서와의 관계 또한 감독의 구상을 마케팅에 접목시키는 데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풀려갔다.

다음 작품인 <살인의 추억>은 누가 보더라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80년대라는 시대를 재현해야 하고, 워낙 지방 로케이션도 많은데다, 연출은 자신의 영역이 단단한 봉준호 감독 아닌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제는 순탄하게 풀려나갔다. 꼼꼼하기로는 남 못지않은 봉 감독도 김무령 프로듀서의 ‘왕꼼꼼’에는 혀를 내둘렀다. “배우와 스탭에게만 보여질 뿐인 시나리오 책을 인쇄하는 데도 표지에까지 신경을 쓸 정도였다. 게다가 보기와 달리 천하독종, 철의 여인이다”라고 봉 감독은 회고한다. 결국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의 치밀한 계획과 구상이 김무령 프로듀서의 촘촘한 실행능력과 어우러지며 상승효과를 발휘한 작품이었다. 또 한국영화 기획, 마케팅의 명가 신씨네 출신답게 그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개봉 전까지 일사분란한 마케팅 계획을 주도하며 흥행 돌풍을 이끌었다. 또 하나 그의 능력이 발휘된 지점은 제목이다. ‘인디안 썸머’와 ‘살인의 추억’은 모두 그의 작품. “‘살인의 추억’이란 제목은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 노트에서 찾아낸 구절이다. 이 제목을 제시하자 봉 감독은 좋다고 나섰지만 주변의 반대가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안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 프로듀서의 꿈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반짝반짝 빛나는>을 준비 중인 그는 최근 프로듀서의 ‘실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신씨네 시절부터 그동안 흥행에 실패한 영화가 하나도 없는데, 제작의 최일선에서 활약한 자신에게는 성공의 열매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독립도 생각했지만 영화 외적인 요소가 영화제작을 방해할 것 같아 현재는 회사 안에서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마케팅쪽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추구하겠다는 그는 자신의 장점을 영화 속에서 극대화해낼 수 있는 충무로 여성 프로듀서의 전범이 되고 있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김무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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