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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3]

물의 도시를 출렁이게 한 3편의 화제작

<참을 수 없는 사랑>

베니스 = 백은하 lucie@hani.co.kr

우연한 죽음이 가져온 파국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아모레스 페로스>를 함께 만들었던 작가, 스탭들과 함께 미국판 <아모레스 페로스>로 불러도 무방할 이야기방식으로 을 찍었다.

“21그램… 5센트 다섯개, 벌새 한 마리, 초코바 하나, 어쩌면 영혼의 무게….” 사망 직후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무게에서 제목을 딴 은 <아모레스 페로스>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두 번째 작품이자, 올해 39살의 멕시칸 감독의 첫 번째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자동차 뒷좌석이 피로 물든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달리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누군가의 총에 맞고 피투성이가 된 폴(숀 펜)과 그런 그를 무릎에 눕히고 안타깝게 울부짖는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잭(베니치오 델토로). 과연 이들 세 사람은 왜 이곳에 같이 있는 걸까. 영화는 그렇게 종국에 다다르는 비극의 파편을 아무렇지도 않게 관객에게 툭 던져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심각한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수학자 폴, 한때 마약중독으로 고생했지만 결혼 뒤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주부 크리스티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함께 다시 태어난 전과자 잭. 어느 날 잭은 우연히 크리스티나의 남편과 두 아이를 치어 죽인 뒤 뺑소니치게 되고 크리스티나의 남편의 심장은 이식을 기다리던 폴의 가슴으로 전달된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던 모든 이를 잃은 크리스티나는 좌표를 잃은 채 마약에 다시 손을 대고, 심장이식을 받은 폴은 수영장에서 스쳐지나가는 크리스티나가 낯설지 않다. 또한 더이상 자신에게 할당된 신의 구원 따윈 없음을 알게 된 잭은 집을 떠나 모텔에 칩거한다. 연민의 정으로 다가선 폴과 크리스티나는 결국 사랑에 빠지고 폴은 자신의 손으로 잭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한기가 느껴질 만큼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는 창백한 조명, 어지러울 정도의 핸드헬드 촬영을 통해 가쁜 호흡을 그대로 전하는 영화는 우연한 죽음이라는 것이 이 3명의 인간을 어떻게 파국으로 몰아넣는지를 거칠게 주워 담는다. 사건은 시간과 공간, 시점에 관계없이 교차되고 때론 흩뿌려진다.

“인생은 사고로 가득 차 있다. 삶이란 마치 매일 아침 6시에 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다. 이 작품 역시 주사위 같은 입방체의 영화다. 모든 것들이 매우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이 선명해질 거다.”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우연한 교통사고를 통해 연결되는 의 이야기 방식은 ‘미국판 <아모레스 페로스>’로 불려도 무방할 것이며, 일견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과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를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할리우드라는 재단사를 만난 의 외벽은 훨씬 깔끔하게 박음질되었으며 로버트 알트먼보다 활기찬 심장박동과 폴 토머스 앤더슨보다 질퍽한 정서로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형식적 기발함, 뮤직비디오 같은 긴박한 리듬, 섬세한 감성으로 상업적 성공과 함께 멕시코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의 평단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끌어낸 <아모레스 페로스>. 멕시코는 이 기발한 신인감독을 통해 잠시 자국 영화산업의 재건을 꿈구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냐리투는 “정부보조금으로 만들어지는 아무도 이해 못하고 어떤 관객도 보지 않는 영화를 걸작이라고 부르는 멕시코 영화계에 염증을 느꼈다”며 등을 돌렸고 결국 유니버설의 예술영화 디비전인 ‘포커스픽처스’의 전액투자에 수준급의 스타들로 캐스팅보드를 채우며 화려하게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은 그 역시, 다른 수입감독들이 그러했듯, 큰 예산과 빅스타를 제공하는 스튜디오의 임무를 수행하는 명석한 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그는 의 제작과정을 통해 이런 걱정을 일축시켰다. <아모레스 페로스>를 함께 썼던 시나리오 작가 귈레르모 아리아부터 사운드디자이너 마틴 헤르난데스,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까지 자신의 ‘멕시칸사단’을 할리우드로 데려오는 조건을 내건 그는 마지막 컷의 편집까지 어떤 상부의 간섭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를 “파시스트 디렉터”라고 부르는 그는 “나에게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나는 일하고 있는 동안 고통받는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은 거의 죽느냐 사느냐의 도박일 정도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은 날선 가시와 풍부한 수액으로 내부를 채운 싱싱한 멕시코산 선인장이 할리우드의 사막으로 상처없이 안전하게 옮겨져왔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배우 및 제작진 인터뷰

‘죽음의 무게’에 대한 영화다

이야기 진행방식이 독특하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나는 이야기를 처음엔 허리 뒤춤에 숨겨놓았다가 조금씩조금씩 꺼내가는 방식이 재밌다고 느껴진다. 아버지가 대단한 입담가였는데 어릴 적부터 그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고, 그것이 결국 내가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시간과 등장인물의 순서는 늘 점핑되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지 않나. 그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단 각각의 이야기들이 영화라는 뼈대에 제대로 자리잡은 근육처럼 붙어 있을 때만이, 하나의 사건이 터졌을 때 상당한 세기의 주먹을 날릴 수 있다.

당신은 배우인 동시에 또한 인정받는 감독이다. 감독의 입장으로 이냐리투에게 작업 중에 충고한 부분은 없었나.

숀 펜 | 그는 별 충고가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상당히 열려 있는 사람이고. 물론 작은 의견들을 제시한 적은 있지만 한번도 이 영화를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던데.

귈레르모 아리아가(시나리오 작가) | 3년 정도 걸렸다. 그러나 늘 윌리엄 포크너의 “모든 이야기는 이미 만들어졌다”는 말을 떠올렸다. 오로지 나의 걱정은 이 주인공들을, 이야기의 균형을 어떤 식으로 맞춰나갈까였다.

결국 은 무엇을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나.

나오미 왓츠 | 은 잃은 것에 대한,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모두 종교를, 가족을, 희망을 잃는다. 각기 다른 지옥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새로운 천국을 만나는 이야기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요즘엔 모든 영화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에 무뎌진 채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죽음과 폭력은 스크린에서 어떤 중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은 ‘죽음의 무게’에 대한 영화다.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1]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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