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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2]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음악을 음향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방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의 하나가 히치콕의 고전인 <새>이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없다. <시민 케인>의 스코어 작곡가이기도 한 전설적인 버나드 허먼이 맡은 사운드트랙은 합성된 전자음을 통해 새의 끔찍함, 비명, 히치콕이 나중에 ‘전자음향적 정적’이라고 부른 아스라한 바닷소리 등을 표현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음향들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극명하게 상황적이고 또한 음악적이다.

또한 음향적 전위음악은 수많은 사이-파이필름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음악가인 제리 골드스미스는 1968년작 <혹성탈출>(Planet of Apes)에서 당시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전위적 사이-파이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보였는데, 이 전자사운드는 지금까지도 사이-파이 사운드트랙의 전범으로 남아 있다.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실험영화들이 전위음악의 힘을 영화 속에 통합시키고 있다. 특히 브라이언 이노류의 앰비언트 음악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장르이다. 기본적으로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앰비언트 음악은 영화의 사운드 문법과 배치되는 요소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라면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웅성거리는 공장 앰비언트 사운드를 마치 음울한 미국적 삶의 운명을 표상하는 안개인 듯 전체 사운드트랙의 기저에 깔아놓고 있는 이 효과음들은 근본적으로 음향지향적인 현대음악의 범주에서는 음악으로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영화들의 사운드는 영화가 어떻게 음향과 음악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지 선구적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적 전위음악이나 구체음악도 이젠 하나의 고전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경향을 ‘모더니즘’의 품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주요 관심사는 ‘과거를 어떻게 뛰어넘을까’였다. 그것은 서구 근대의 시간 기획, 최첨단의 이상향을 만들어 역사의 종점에 끝끝내 도달해보자는 기계론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반성해보자. 새로운 음악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것들과 비교해서 새로운 것일 수도 있다. 모더니즘의 ‘전위주의’가 갖는 맹점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 가령 슈톡하우젠이 새로운 음향을 제시했지만 그 음향은 기존의 음악적 틀을 전제할 때만 새롭다. 그러나 그 사운드의 결과는 잠잘 때 어디선가 우는 보일러 소리보다도 덜 감동적일 수도 있다. 결국 음악적 모더니즘은 자기 모순을 드러내고 마는데, 음악을 음향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음악의 차원에서는 새롭지만 음향의 차원에서는 결국 음향으로의 복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존 케이지의 침묵은 모더니즘의 귀결점을 극적으로 반향하고 있다.

그 침묵을 넘어, 새 세대의 반성적 현대음악 개념들이 나왔고 그 핵심은 이런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음향적 음악을 새롭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그 개념적 시도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자체의 신선함, 힘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다시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탈모더니즘적(포스트 모더니즘적) 음악을 사고하는 사람들의 시작 지점에는 이러한 반성이 들어 있었다.

<미시마>

<제니파포>

실험과 체험적 음악-미니멀리즘

스티브 라이히, 테리 라일리, 그리고 필립 글라스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 역시 ‘음악적 힘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아토날한 음열주의적 불협음을 버리고 원시적인 리듬이나 화성악구의 반복을 통해 사람들을 음악의 시퀀스 안으로 몰입시킨다. 물론 미니멀리즘의 근저에는 미국식 대량생산 체제의 공업생산품들이 주는 어떤 느낌들이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다보면 똑같이 생긴 수많은 상품들이 스탠더드화된 컨베이어벨트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을 반영하고 있는 그 음악들이 갖는 힘은 그러나 매우 원시적이다. 반복된 악구들이 서로 맞물리고 다시 엇나가면서 연쇄를 이루는 장면들에 몰입하다보면 한마디로 원시적 제의의 현장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리듬의 일원론적 합일화의 기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원시적이면서도 탈현대적 소비사회의 특징과 결합된 미니멀리즘 음악은 1960년대의 전위영화에서 그 힘을 발휘한 바 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스티브 라이히는 1963년, 생활이 어려워져 택시운전을 하는 와중에 첫 주요 작품을 완성하고 계속하여 실험영화인 <플라스틱 헤어컷>(Plasitic Haircut)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다.

미니멀리즘은 실험음악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체험적 음악’이다. 이런 시도를 한 미니멀리스트 작곡가 중에서 필립 글라스의 성과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월드뮤직의 힘을 길어와 미니멀리즘적 언어 속에 부어넣는다. 1960년대 중반, 시타르의 거장인 라비 샹카를 파리에서 만난 뒤 음악에 관한 생각에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은 그는 반복적이고 색채감 넘치는 미니멀리스트적 악구들을 월드 뮤직의 살아 숨쉬는 리듬감과 결합시키는 데 일정하게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음악적 힘을 좀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화가 갖는 힘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부이기도 한 고트프리 레지오 감독과 함께 만든 <삶 삼부작>의 1편과 2편이다. 1편 <균형 잃은 삶>(Koyaanisqatsi)과 2편 <변형 속의 삶>(Powaqqatsi)이다. 감독인 레지오는 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브라질, 이집트, 케냐, 페루, 인도, 홍콩, 이스라엘, 프랑스, 네팔과 베를린 등 5대륙 10개국을 여행하면서 대도시와 시골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필립 글라스는 페루와 브라질 그리고 서아프리카를 탐험하며 제3세계 음악을 채집, 미니멀리즘적 어법 속에 통합하였다.

이러한 음악적 힘의 복원은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작곡가로 분류되는 존 애덤스나 영국의 미니멀리스트 재즈 밴드이자 미니멀리스트 크라우트 록밴드 캔의 추종자이기도 한 매력적인 ‘아이스 브레이커’의 음악에서도 엿보인다. 존 애덤스는 흑인 교회에서 체험한 가스펠의 영적인 힘이나 바흐의 푸가가 지닌 우주적 보편성 같은 것을 실제로 귀로 체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디 아워스>

<트루먼 쇼>

음향과 음악은 갈등하며 확장된다

물론 이러한 음악적 시도들도 기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립 글라스는 월드 뮤직을 ‘통합’하려는 이색적인 시도를 해왔지만 월드 뮤직은 사실 근본적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적이고 소집단적인 삶의 문화와 언어 속에 녹아 있다. 그와는 반대로 모더니즘 이후의 서양 전위음악은 소집단의 삶을 반영하는 지역적 음악 속에 분산적으로 흡수됨으로써 새로운 음악적 자장을 낳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서 들려준 장영규의 독특한 미니멀리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양하게 가지를 치고 있는 탈현대적 전위음악이 영화나 기타 공연물의 힘들 속에 참여하거나 혹은 역으로 그 힘을 길어오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 생각에 중요한 것은 통합이 아니다. 오히려 분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그 다양한 힘들이 서로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지를 그 자체로 이해하는 일이다. 20세기 전위음악과 영화 사이의 관계 역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관심사가 전혀 다른 두 장르 사이의 연관성, 예컨대 ‘음향적 음악’의 사고 같은 유사성은 오히려 그 분산적 관심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진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배신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불편한 관계라 오히려 서로를 일깨우는 관계이자 생산적인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전위음반 7選 #2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 제리 골드스미스

골드스미스의 사이-파이 사운드트랙 가운데 가장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영화다. 지금 들으면 약간 순진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특유의 ‘울림효과’를 동반한 각종 악기들의 집적은 영화 쪽에서 어떻게 특별히 의식도 하지 않았는데 전위적 성취가 이루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사이-파이’라는 장르에 부합하는 ‘현실성’이 특별한 사운드를 낳은 것이다.

<균형 잃은 삶>(Koyaanisqatsi) | 필립 글래스

필립 글래스는 그래도 대중적인 사운드에 속한다.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그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그의 전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약점이기도 한데, 어쨌든 초원의 느낌인 월드 뮤직 비트와 뉴욕의 느낌인 미니멀리스트 대위법을 섞은 앨범.

| 장영규

최근에 장영규의 음악은 눈에 띄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학적인 리듬 분할과 그 하위체계로의 분할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OST는 전위적 현대음악이 우리 뮤지션의 손에서 어떻게 소화되는지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 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1]

▶ 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