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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2]
박혜명 2004-03-05

메이저 중심의 비교적 탄탄한 산업 구조

이런 상황에서 올해를 내다보는 타이의 영화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제작편수 감소를 이야기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호황기를 충분히 누린 메이저들은 그 반대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영화에서 손해를 봤어도 “대부분의 큰 이익은 자국영화에서 나온” 사실을 잊지 않는다. 최대 메이저인 사하몽콜필름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포함해 총 80편을 배급한 사하몽콜은 올해도 자체제작으로 14편을 개봉할 예정이다. 외화 배급규모도 그대로 유지한다. 한해 평균 250여편의 영화가 개봉하는 타이에서 사하몽콜이 차지하는 30%의 점유율은, 전체 개봉편수가 줄어든다면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사하몽콜의 관계자는 RS나 GMM도 올해 편수를 더 늘릴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스크린 수도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방콕은 이미 스크린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멀티플렉스들의 목표는 지방에 있다. SF시네마, EGV와 함께 3대 메이저 극장 체인인 메이저 시네플렉스는 치앙마이와 나콘사완 등의 지역에 이미 500만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올 하반기 7개 스크린을 오픈할 예정이다. SF시네마는 타이의 대표적 관광지인 푸켓 북쪽 지역에 올 상반기 안으로 극장을 개관한다. 결과적으로 타이에는 10개 이상의 멀티플렉스가 추가 건설되고, 120개 이상의 스크린이 늘어난다.

또 최근에는 세 군데의 대학에서 영화관련학과가 개설되기도 했다. 중소 규모의 제작사들이 겪고 있는 현장 스탭 부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비슷한 추세를 낳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EGV극장 내부. 이 세련된 시설의 멀티플렉스들은 10년 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했다.

타이의 영화산업은 민간인들이 성장시켰다. 정부지원책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 같은 제도는 고사하고 타이의 영화인모임(Federation of National Film Association of Thailand)이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정부에 어필해왔던 단 한 가지는 검열제도 완화다. 로열패밀리, 종교, 섹스 등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표현의 제약을 놓고 시위를 벌일 만큼 강하게 호소했지만 정부로부터 들은 대답은 없다. 난타쾅 시라순토른의 말에 따르면 “80년 동안 개정된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기껏해야 해외영화 수입 때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스처만 보인 정부를 뒤로 하고, 타이 영화산업은 스스로 시스템을 갖추고 성장했다.

산업이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간 상황에서도 메이저사들의 보폭이 줄어들지 않는 모습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온갖 해외영화들을 전문 수입·배급하는 논타넌드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관계자는 “색다른 개성을 가진 영화를 배급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급 규모의 제작사 매칭 스튜디오 관계자도 “타이에서는 로맨틱코미디가 성공한 적이 없다”며 해외 합작을 포함해 올 한해 동안 여덟개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타이 정부가 친기업 정책으로 경제난국을 정면돌파한 것처럼 타이의 영화인들 역시 눈앞에 닥친 고비 앞에 주춤하지 않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꿈꿨던 가벼운 목돈들은 도로 다 빠져나가겠지만 이것이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에는, 메이저가 받치고 있는 타이의 영화산업 구조가 생각보다 탄탄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타이 예술영화계의 마당발 아루니 스리숙

10년 경력의 프리랜서 아루니 스리숙은 화려하고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에겐 주업무가 따로 없다. 그는 필름 방콕, 시네마시아 등 굵직한 영화사에서 마케팅 담당자인 동시에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아시아영화제, 시네마테크 설립 등의 일도 쉴 틈 없이 진행해온 열정의 영화인이다.

-어떤 일들이 주요 관심사인가.

=오래전에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라는 걸 했다. 타이 관객에게 예술영화를 소개하자는 의도였다. 그뒤에 아시아필름페스티벌을 기획했는데, 아시아영화가 할리우드나 유럽영화에 대응이 안 되니까 아시아영화들끼리만 모아보자는 취지였다. 이전까지는 타이에 국제적 규모의 영화제가 한번도 없었다. 한국, 일본, 홍콩, 중국, 대만, 캄보디아, 이란, 이스라엘 등 아시아 25개국 영화를 초청했다. 한회로 끝났지만 그게 최고로 보람있었던 일이다(이 영화제는 방콕국제영화제의 모태가 됐다). 지금은 타이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들과 연계해서 단편영화제도 열고 있다. 올해로 2년째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프랑스 비디오아트물을 국내에 소개한 것이 시초였다. 지금은 방콕과 그외 지방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화 워크숍과 단편영화제 등을 꾸준히 열고 있다. 제작을 비롯한 영화 전반에 관한 지식을 교육하고 단편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최근에 시네마테크도 만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시네마테크가 있는데 타이에만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고,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하면서 동시에 교육을 포함한 워크숍도 진행할 생각이다. 4월에 개관한다.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투자자를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풀렸다. 타이에서는 배급사들이 영화관을 잡기가 어렵다. 좋은 영화를 들여와도 출구가 없어서 상영 못하는 영화들이 태반이다. 이런 소스를 가진 사람들과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고민하다가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이 주축이 돼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하몽콜필름이 로열 시티 애버뉴(방콕의 구번화가)에 있는 단관극장 UMG를 내놓게 됐다.

-구체적인 운영계획이 있는가.

=현재로서는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200편의 영화를 공짜로 상영할 계획이다. 한두달 정도 예상하고 있다. 타이에서 짧게 개봉했던 영화들이나 미개봉작을 중심으로 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존 말코비치 되기>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그녀에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이다. 영화에 애정은 있지만 어떻게 영화 일을 시작하고 영화에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마이 걸>을 만든 6명의 신인감독들이 모두 이렇게 단편영화 활동을 해오던 사람들이다. 타이의 단편영화도 꾸준히 커가고 있다. 원래 40편 정도 만들어졌던 단편영화 수가 최근에는 160편까지 늘어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