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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스크린쿼터 논쟁 [2] - 비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안성기, 정지영 인터뷰(1)
김수경 2004-07-07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안성기, 정지영 인터뷰

"쿼터 축소론자의 논거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스크린쿼터는 일촉즉발의 위기다. 물론 사람들은 ‘또 쿼터 이야기냐’ 하고 반응할지도 모르겠으나 언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할지 긴장감이 감도는 게 사실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비대위 공동 위원장이며 한국영화 발전의 산 증인들과 나눈 스크린쿼터 이야기.

-스크린쿼터(이하 쿼터)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겪는 어려움.

정지영 I 막연하게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안성기 I 사실 막연하겠지. 우리만 해도 오랜 시간을 싸우면서 여러 요소를 끊임없이 공부한 뒤 지금 정도 인식이 생겼으니까. 영화를 전공하거나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 우리 영화를 좋아하는 보통 관객에게 쿼터문제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30분 이상 걸린다. 축소론자들은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가서 툭 던지며 말하는데 우리는 반론을 제기하려면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 때 이것이 가장 어렵다. 매스컴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리해주고 논점을 잡아주는.

-쿼터를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집단 무의식

쿼터 축소론을 펼치는 이들은 국내영화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고 1천만 관객 시대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한국영화가 성장할 만큼 성장했으니 쿼터를 줄여도 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국내 점유율 50%를 근거로 쿼터를 줄이라는 미국영화의 자국시장 점유율은 98%이다. 해외시장 점유율은 85%.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IMF 때문에 우리나라가 먼저 쌍무협정을 하자고 달려들었지만 그게 뭔가 도움이 된다는 근거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정지영 I 무엇보다 일반 대중에게 쿼터에 대한 잘못된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것은 쿼터는 원래 줄여야 당연한데 영화인들이 안 줄이자고 버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집단 무의식은 정부와 경제부처가 오랫동안 이 문제로 문화논리를 가진 사람들과 싸워오면서 지속적인 홍보 전략과 여론몰이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면 쿼터는 대미통상협상을 가로막는 한국 경제발전의 걸림돌이라고 근거없이 규정한다. 그럴 때 양자간 투자협정(BIT)이 자국에 도움을 준 사례는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는 사실은 쏙 뺀다. 한국에 전혀 이익이 없는 대미무역협상을 누구를 위해 체결하나. 거기는 ‘미국은 큰형인데’라는 식의 잘못된 접근이 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도 있다. 힘있는 자에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백이면 백 모두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쿼터를 한미통상과 결부시켜 무조건 줄이거나 없애려는 발상은 해방 이후 50년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미선동의 연장선이다.

안성기 I 워낙 경제부처쪽에서는 경제논리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니까 우리라도 원칙이 되는 문화논리를 가미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지영 I 우리도 경제에 대의적으로 도움이 되고 나라 전체의 국익이 확 달라지는 것이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근거가 전혀 없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영화는 상품이 아니라 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이것을 통해 ‘시청각은 교역대상에서 예외’라는 방침을 세계가 결정했다. 미국은 시청각도 교역대상으로 삼자고 하는 거다. 미국이 투자협정을 통해 각각의 나라와 시청각 분야를 무역대상으로 삼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시청각 분야가 워낙 강하고 누구랑 붙어도 불패니까. 우리가 실익을 챙길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이 일반에게 쿼터 축소의 근거로 이해되는 대목에 대해 좀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정지영 I 쿼터 덕에 그나마 현재의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제대로 쿼터가 적용한 것은 94년부터다. 쿼터가 제대로 적용되고 극장들이 그것을 지키기 시작하면서 점유율 10% 수준에서 점점 올라와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것을 지금 줄인다면 성장할 때보다 더 심한 반대효과가 빚어질 것이다. 멕시코를 봐라. 미국과 나프타 협상을 통해 시청각을 교역대상으로 삼고 5년 만에 국내 영화산업이 완전히 궤멸되었다.

안성기 I 지금이 후일 돌이켜보면 “그때가 한국영화가 최고였어”라고 말할 순간인지도 모른다. 물론 더 발전해서 절대 그런 결과는 없어야겠지만. (웃음)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실질적인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산업적 흐름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3∼4년이 더 지나야만 작게라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재 우리 영화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중요한 문제를 왜 그렇게 섣불리 생각하고 결정하려는지 모르겠다. 영상산업과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정지영 I 한국의 전자산업이 현재 세계 정상 수준이다. 그런데 ‘전자산업이 너무 발전했으니 속도를 늦추거나 비중을 좀 줄이자’ 이런 이야기 아무도 안 한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국내외에서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데 이걸 왜 줄여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안성기 I 우리에게 국내 점유율 50%를 근거로 쿼터를 줄이라는 미국영화의 자국시장 점유율은 98%이다. 해외시장 점유율은 85%.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창동 장관의 고뇌를 알기에 미워하지는 않는다

-이창동 장관 및 문화관광부의 태도 변화에 대해.

정지영 I 그는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1기 내각에 들어가서 문화정책의 수장이 되었다. 재경과 외통부에서 끊임없이 쿼터의 축소를 요구했고 이제까지 버티고 버텼다. 현재는 시점상 옷을 벗을 단계다. 그러자면 영화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영화인에게 욕을 안 먹는 방법은 그냥 침묵하며 옷을 벗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참여정부 입장에서만 보면 이 장관을 이기주의자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뭔가를 던져야 하는데 그러자니 또 영화인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쿼터 조절이 불가피하다면 내가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이 영화계와 정부의 충돌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장관의 세 가지 원칙은 비현실적이다. 고민에도 불구하고 협상 상대인 미국을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기 때문이다.

안성기 I 워낙 이창동 감독이 평소에 진실된 사람이고 스크린쿼터에 대한 것도 99년부터 운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그의 고뇌를 가늠할 수 있다. 장관으로서의 결정과 문화부의 태도변화에는 매우 유감이며, 강경하게 대응하지만 영화계의 그 누구도 그를 개인적으로는 미워하지는 않는다.

-연동제가 만약 미국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면.

정지영 I 미국과의 협상에서 연동제가 받아들여지고 국제법상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가정이 있다면, 대책위 내부에서 공론화된 단계는 아니지만 40%를 기준으로 한 연동제를 개인적으로는 동의한다. 미국이 국제협약에 적용받는 걸로 연동제를 수용한다는 조건인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즉 통상협상의 예외조항에 스크린쿼터를 두는 것인데, 국제법상으로 이걸 수정해야 할 시기가 되면 그 제도를 없애고 접근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입법안이 시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 문광위 위원들과의 간담회는 어땠는지.

정지영 I 현재처럼 정부나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쿼터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를 통해야 하는 것으로 법규정의 소재를 모법으로 변화시키려는 중이다. 핵심은 의무상영일수를 영화진흥법 모법에 넣는 것이다.

안성기 I 결의대회 직후 열린우리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아직 사안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초선 의원들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고 접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공감한다’는 표현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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