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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시대, 어디까지 왔나 [1]
조종국 2000-02-29

영상매체, DVD 산업현황과 마니아 문화

안방에서 만끽하는 디지털 세상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이다. 개념이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디지털 혁명은 성큼 우리 생활 가까이 와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 디지털의 가공할 위력은 안방에서 극장의 느낌을 만끽하며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TV나 모니터 크기의 한계 때문에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보는 스펙터클은 덜하겠지만 안방극장으로서의 기능은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다.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영상매체 DVD(Digital Versatile Disc). 많은 사람들이 '그건 또 무슨 첨단기기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이미 DVD를 둘러싸고 마니아문화가 성황이다.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엔 DVD동호회도 셀 수 없을 정도고,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이는 관련업체도 부지기수다. DVD가 뭔지, 궁금하다면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에 들어가보라, 거기엔 또다른 세상이 있다!

CGV강변11에서 마케팅 일을 하는 조홍석씨도 DVD 마니아다. 뻔한 월급쟁이지만 한달에 DVD 타이틀을 구입하는 데만 15만원 가량을 들인다. 98년 DVD 플레이어(DVDP)를 장만해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비디오는 볼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홍석씨는 초기에는 청계천, 용산전자상가 등지에서 불법 타이틀을 한장에 8만∼10만원씩 주고 사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해 주로 미국에서 시판되는 타이틀을 사서 본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정가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미국에 주문할 때 타이틀 한장 가격은 15달러에서 25달러선. 여기에 우송료가 붙어 2장을 한번에 살 때 50∼70달러 정도가 든다. 물론 대금은 신용카드로 치른다. 인터넷으로 DVD 타이틀을 살 때는 주로 2장 단위로 산다. 3장이 넘거나 구매가격이 70달러가 넘으면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도 DVD 마니아다. 정지우 감독이 DVD를 애용하는 것은 그 기능도 기능이지만 타이틀에 들어 있는 부록을 활용하는 재미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산 타이틀의 경우 예고편에서부터 극장판의 삭제컷들, 특별편집본, 제작과정 등이 부록으로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지우 감독이 눈여겨보는 것은 특별편집본의 특수효과나 제작과정이다. DVD타이틀의 부록에대한 관심은 비단 정지우 감독만이 아니다. 멀티미디어를 가르치는 젊은 교수들은 DVD 타이틀의 부록을 강의 교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용자들이 말하는 DVD의 최고 장점은 물론 뛰어난 화질과 음향이다. TV 화면에 맞게 양옆이 잘려나간 화면이 아닌 극장 상영과 같은 ‘풀 사이즈’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또 비디오테이프에 비해 크기가 작아 보관이 쉽고, 아무리 오래가도 화질과 음질에 훼손이 없어 반영구적이라는 점도 DVD의 매력이다. 게다가 디지털 방식이라 비디오처럼 빨리감기, 되감기 과정없이 원하는 장면을 한번에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점 도 ‘환상적인 기능’이다.

DVD는 우선 저장 용량이 어마어마하다. 영화를 74분까지 저장할 수 있는 CD롬이 600MB인데 비해 DVD는 4.7GB로 저장 용량만 7배가 넘는다. 앞으로 8.5GB로 늘어날 전망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정도다. 기능도 다양하다. 디지털 TV 수준의 화질과 돌비서라운드 기능을 가진 음질은 기본이고 시중에 나와 있는 CD롬, 오디오CD, 비디오CD 등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최대 7개 국어까지 더빙이 가능하고 자막은 32개 국어까지 넣을 수 있다.

직배사경쟁으로 DVD 타이틀 급증할 듯

이처럼 만장일치로 ‘꿈의 매체’로 평가받는 DVD가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DVDP의 가격이 비싸다거나 VCR을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보다는 당장 국내에서 볼 수 있는 DVD 타이틀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타이틀은 영화 60여편과 공연실황 몇편, 영화 몇편을 묶은 세트 등 모두 합해야 76편(인터넷 사이트 ‘DVD’자료)이다. 지난해 직배사 컬럼비아트라이스타에서 <미이라> <세익스피어 인 러브> 등 영화 39편을 내놓았는데, 컬럼비아의 DVD 타이틀 출시는 애호가들에게 큰 화제가 됐고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모조리 미국에서 제작된 타이틀만 보다가 한글자막이 들어 있는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던 것.

올해부터 직배사를 중심으로 DVD 제작사에서 타이틀을 쏟아낼 계획이어서 마니아들은 들떠 있다. 선구자격인 컬럼비아는 매달 10여편씩 올해 안에 총 120편 정도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에 뒤질세라 지난해 DVD사업을 위해 ‘워너 홈비디오’를 설립한 워너브러더스도 4월10일쯤 50편을 무더기로 내놓고 매월 서너편씩 출시해 올해 총 100편 정도를 출시한다. 특히 워너는 현재 2만5천∼2만7천원인 타이틀 가격(지금도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는 훨씬 싸게 살 수 있다)을 1만6500∼1만9500원 정도로 내려 공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디즈니의 브에나비스타와 20세기폭스, CIC코리아 등도 시장 전망을 살피며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특히 브에나비스타는 상반기중에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며 셀스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관심이 많다. 국내 업체로는 일본의 오메가 프로젝트가 사실상의 주인인 스타맥스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H.O.T 라이브 콘스트> <링> 등 20여편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스타맥스는 올해 50편 정도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스타맥스는 3월에 신촌 현대백화점 건너편에 누구나 DVD를 직접 볼 수 있는 견본숍을 열어 잠재 고객에게 직접 마케팅에 나서기로 해 눈길을 끈다. 한편 지난해 <쉬리> 등 한국영화를 출시한 비트원은 올해 20여편, <마스크> 등 6편을 출시한 스펙트럼은 <개미> <딥임팩트> <피스메이커> 등 제일제당 CJ엔터테인먼트 작품을 중심으로 출시량을 늘려 나갈 예정이다.

국산타이틀, 화질음향상태와 심의문제도

우리나라의 타이틀 수 76개는 미국 4500개, 일본 3500개, 중국 3000개, 유럽 1000개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우선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출시사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 것이 큰 이유다. 출시사 관계자들의 따르면 제작단가가 높아 경쟁력이 없다는 것도 한 고민거리다. 제작원가가 비디오가 한장당 2700원, 비디오CD 1400원 정도인데 비해 DVD는 2천장을 제작한다고 할 때 9500원 정도라고 한다. 여기다 판권료, 케이스, 물류비용 등 부대 경비를 더하면 현재 소비자 가격인 2만7천원 공급도 빠듯하다는 것. 제작 단가가 이처럼 높은 것은 국내에서는 제작 기반이 취약해 미국이나 대만에서 제작해 들여오기 때문이다. 또 업게에서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겨냥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대여를 원한다. DVD를 대여해주는 인터넷사이트가 생긴 것도 이런 소비자들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타이틀이 많이 나오고, 영화마을 같은 대형 체인점에서 본격적으로 대여에 나서면 시장은 한층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은 업계의 공통된 기대다.

DVD 마니아들은 국내에서 타이틀이 많이 나온다고 해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는 원판 필름 보관 상태도 나쁘고 제작 과정에서 화질이 떨어지거나 음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DVD의 가장 큰 매력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심의도 문제다. 미국산 타이틀에는 극장 상영본에서 잘린 장면도 부록으로 들어 있는데, 이런 타이틀은 국내에서는 합법적으로 유통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한국용으로 따로 제작하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영화만 DVD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즉 DVD 타이틀 출시도 문제지만 DVDP 보급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97년 삼성전자에서 첫 제품을 내놓은 이래 현재까지 보급대수는 약 1만대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수출은 LG전자가 올해 70만대, 내년까지 100만대를 수출하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유럽지역에 100만대를 수출한 데 이어 내년까지 200만대를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 DVDP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7%로 소니(25%), 파나소닉(20%)에 이어 세계 3위다. 가전업체들도 국내시장이 워낙 취약해 내수보다는 수출에 주력해온 결과다. 최근들어 DVDP를 생산하는 가전업체들이 하드웨어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출시사들과 공동마케팅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외 소프트 업체와 협력해 매월 타이틀 30편 정도를 출시한다는 자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타이틀 출시사인 스타맥스가 가전업체와 제휴해 3월부터 자사 브랜드로 30만원대 DVDP를 내놓기로 한 것은 눈길을 끈다. 컬럼비아도 비슷한 공동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전세계 예상 보급대수 400만대, 새로운 세상 올까

업계에서는 97년 미국에서 DVD가 첫선을 보인 이래 전세계 보급대수는 올해 40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한다. VCR이 5년 만에 200만대, CD플레이어가 140만대를 보급한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업게에서는 이런 급속한 보급 추세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은 1만대 시장이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6만∼10만대로 급속하게 불어날 것으로 점 친다. 게다가 타이틀 출시가 늘고, 하반기부터 DVD롬 드라이브가 내장된 PC까지 나와 DVD가 좀더 대중적으로 알려지면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런 전망을 근거로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부터 서서히 DVDP가 VCR를 대체하기 시작해 5년 정도면 DVDP 시대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 심지어 10만∼20만원짜리 중소기업 제품도 나오고 있고, 오는 3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0만원대 새 모델을 내놓아 현재 40만∼80만원대인 DVDP 가격이 떨어지면 DVD의 새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