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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2]
2000-01-11

테이프 보유량, 좋은 영화 구비 최우선

비디오를 즐겨보는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왜 영화 잡지에 소개된 좋은 비디오는 우리 동네 가게에서 찾아볼 수 없냐는 것과 TV 방영까지 된 고전을 왜 비디오로 볼 수 없냐는 것이다. 비디오 제작, 유통 전반을 짚지 않고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좋은 비디오를 많이 구비한 대여점을 선정해 알려주는 것으로 급한 갈증은 해소시켜 줄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갖고 심사에 참여했다.

서울지역 30개 숍 선정 경쟁률은 1/3 정도였다. 대여업계의 불황 운운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많은 숍이 응모하리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적었다. 영화 잡지 사보는 대여점이 드물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고객 응모는 단 한 가게뿐이어서 어떤 대여점을 이용하며 불평해왔는지 짐작이 갔다.

심사의 우선 순위는 테이프 보유량과 좋은 영화 구비 비율이었다. 1만장 이상 소장해야 좋은 비디오 구비 상위권에 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진열 방식, 인테리어, 청결, 교통 접근성 등 하드웨어, 그리고 숍 주인과 직원의 영화 사랑, 친절, 서비스, 대여업에 대한 의지와 같은 소프트웨어 부분을 체크했다. 동점일 경우에는 지역 안배를 하였다.

초창기부터 대여업을 해온 이들은 좋은 프로를 많이 구비하고 있었지만, 사업에 매력을 잃어 창고처럼 숍을 방치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최근 개업한 점주들은 넓은 매장, 밝고 깨끗한 인테리어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두세개 숍을 경영하는 등, 편의점 체제를 택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고객 취향에 맞는 프로 안내와 같은 휴먼 터치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여점이 하루빨리 구멍가게를 벗어나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한다고 생각하므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비디오와 책 비율이 5 대 1인 20평 매장이 이상적으로 보였다.

점주들은 한결같이 게임방, PC방, 인터넷 등의 새로운 오락거리가 생겼는데, 비디오 소프트는 예전에 비해 양이나 질에서 떨어져 고객이 줄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고객이 현저하게 줄어 영화광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대책을 세워줄 주체나 방안은 없는데 제작사는 프로 가격을 2만7500원으로 일방 책정하는 고가 정책을 쓰고 있고, 대여점들은 덤핑 가격으로 제살을 깎아먹는 상황이 몇년째 계속되어 시장 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시사권을 안 주면서 반품과 애프터서비스가 불가하고 중고테이프 활용이 늘어 몇번 돌리지 못해 망가지는 점 등을 제작사의 횡포로 꼽았다.

관람 등급별 분리 진열은 반드시 폐지해야할 사항으로 지적됐다. <007>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을 수 없다든가, <스탠 바이 미> 같은 청소년 영화가 빨간 등급이라는 것은 이제 우스개로 회자된다. 속칭 16mm로 불리는 국내 창작 극 영화 등을 제외하고는 감독, 배우, 장르별로 진열할 수 있어야 한다. 대여료 덤핑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자유경쟁 운운하며 나 몰라라 하면서, 진열을 업주 뜻에 맡기지 않는 것은 원성을 살 만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일년에 한번도 대여되지 않는 <십계> 10부작을 구비하는 대여점주가 있다는 것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이제는 고객이 힘을 보태주어야 할 때다. 차를 타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듯 제대로 된 대여점을 이용해주는 것이 영화팬의 기본 도리 아닐까. <샤이닝> <황금 연못>이 왜 출시되지 않냐고 불평들 하는데 그 이유를 아직도, 정말 모르고 있냐고 묻고 싶다.

내가 어떤 테이프를 어떤 가격에 대여해 보는가가 우리 비디오산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매트릭스>는 한달 이내에 구입비가 빠지지만 <와일드 원>은 본전 뽑기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장사꾼인 대여점주에게 <와일드 원> 구입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제작사가 고전 영화 판권 구입을 망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통신에다 출시 안 된 복사판 비디오 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마니아가 할 일이 아니다. 고전 비디오 봐주기 운동이나 출시 요구 서명을 하는 '행동하는 마니아'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세계 각국 고전이 보고 싶다면 그런 영화를 적정한 가격에 대여해 보고 구입, 소장해주어야 한다. 단순 소박한 이상론일지 모르나 개개인의 선택이 정책 결정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극장 개봉을 거친 이른바 대박 영화 테이프 가격은 2만4천원, 극장 개봉 못한 고전이나 소장용 비디오 가격은 1만5천원, 그리고 대여료는 신프로 1500원, 구프로 1천원이 적정가격이라고 추정들 하는데 자, 당신이라면 이 가격에 문화상품이라는 비디오를 기꺼이 대여해보고, 소장도 할 수 있는지.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