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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2] - 디지털 혁명
2000-01-04

디지털영화가 영화제작과 배급에 미칠 영향들

9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보스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 토드 버로는 셀룰로이드의 죽음을 선언했다. 최근에 진행되는 영화계의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제작과 배급에서 35mm 아날로그 필름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건은 98년 10월에 있은 스티븐 아발로스와 랜스 웨일러가 만든 <라스트 브로드캐스트>(The Last Broadcast)라는 영화의 개봉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소니 VX-1000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DV(디지털 비디오 6mm)카메라를 가지고 저예산으로 촬영됐고 편집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으로 완성됐다. 획기적인 것은 극장상영까지도 디지털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완성된 DV영화를 키네코작업을 거쳐 35mm 필름으로 옮기는 대신 이 영화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위성을 통해 송출했다. 이것을 수신한 미국 내 다섯개 도시의 극장들은 고화질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터를 사용해 영화를 관객에게 상영한 것이다.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에서 디지털 혁명의 서곡은 아마도 99년 여름 루카스 필름이 제공한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일 것이다. 루카스는 고화질을 선언하며 디지털 영상을 별도로 제작, LA와 뉴욕의 네군데 극장에서 시험 개봉했었다.

디지털 혁명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예산 절감이다. 저예산 단편영화 제작을 위해 16mm 필름으로 60분 분량을 촬영하고 현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00만원이다. 물론 35mm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6mm DV로 촬영하는 경우 60분짜리 테이프 하나를 사는 데는 1만원으로 필름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배급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100분 길이의 극영화 한편을 복사하는 데 약 3천달러가 필요하므로 미국 전역에 있는 4천여개의 극장에 프린트 한벌씩만 보내려 해도 1200만달러가 소요된다. 거기에 무거운 프린트를 각 극장으로 우송하는 데 드는 비용을 더해야 한다. 미국에서 일년에 생산되는 많은 영화편수를 감안하고, 더 나아가 세계 각국에서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프린트가 만들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영화 한편의 배급에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인공위성을 통해 각지로 영화를 보낼 수 있다면 그같은 비용은 잊어버려도 된다.

혁명은 값이 싸다?

디지털영화의 경제성은 카메라 때문이기도 하다. 수억원이 넘는 35mm 필름 카메라는 한번 빌려쓰기에도 분명 그림의 떡이었지만 300만원 전후에 팔리는 디지털카메라는 개인이 아예 사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잘 알려진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셀레브레이션>은 소니 VX-1000보다도 훨씬 싼 소니 PC-7이라는 손바닥만한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DV용 카메라의 이점은 저렴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비디오 카메라이므로 필름 카메라에 비해 조작이 용이해 최소한의 교육과 경험으로도 누구나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크기도 작고 가벼워 촬영장에 많은 스탭이 필요하지 않으며 기동성 또한 뛰어나다. 그래서 이른바 원맨쇼 영화가 가능해진다.

베를린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디지털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베넷 밀러 감독의 <크루즈>(The Cruise)가 좋은 예다. 그는 뉴욕 관광버스의 어느 투어가이드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는데 디지털카메라 한대로 모든 촬영을 혼자 해냈다. 촬영뿐 아니라 연출과 기획까지 겸해 영화 한편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카메라의 작은 사이즈는 특히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홈 비디오용으로 보이는 이 카메라의 존재를 쉽게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다.

디지털영화를 만들면서 고려할 점은 영화상영을 디지털 비디오 상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아날로그 필름으로 옮겨서 상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디지털 비디오를 하나의 고유한 포맷으로 보고 그 상태로 상영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아직은 극장에서 비디오 프로젝터를 사용한 영사가 보편화하지 않은 이유로 자신의 영화를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기가 어렵다. 키네코 작업을 통해 필름으로 상영하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35mm 필름으로 옮기는 경우 분당 약 50만원이므로 100분 정도의 영화 한편을 하려면 5천만원이 있어야 한다. 만약 최고의 키네코를 위해 소니 HD센터에 부탁하게 되면 비용은 8천만원을 넘는다. 하지만 저예산 디지털영화를 찍으면 미리 키네코 비용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완성한 영화의 내용만 좋으면 영화사에서 키네코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영화를 개봉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콘티로부터의 자유, 편집은 무한대

테이프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디지털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많은 분량을 촬영한다. 빔 벤더스가 쿠바의 재즈음악인들을 기록한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들면서 찍은 분량은 무려 150시간이 넘었다. 촬영분량과 편집된 영화의 길이의 비율이 무려 100 대 1이 된다. 35mm 필름 촬영의 경우 많아야 10 대 1의 비율로 촬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분량이다. 많은 분량을 촬영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변화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구체적인 콘티작업 없이도 촬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비싼 필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꼼꼼히 콘티를 그려 그대로 촬영했지만 이제는 콘티에 구애받지 않고 좀더 자유로이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둘째는 편집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150시간을 100분의 1로 줄이면서 아무도 최종 영화가 어떤 모습이 될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촬영 분량이 많을수록 편집 가능성도 더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편집도 영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동시녹음으로 촬영된 35mm 필름을 편집하는 일은 보통 고생이 아니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항상 같이 움직이며 자르고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편집에선 원하는 부분을 마우스로 끌어다가 편집선 위에 갖다놓기만 하면 이미지와 사운드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작업이 쉽고 빠르다. 이런 이유로 마지막 최종 편집을 결정하기 전에 여러 가지 다양한 편집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이 <해피 투게더>를 편집하면서 수십 가지로 영화를 편집해보고 뒤에 제일 마음에 드는 편집을 골라 최종 프린트를 뽑았다는 이야기는 디지털 편집이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디지털의 또다른 장점은 아무리 많이 편집을 하고 복사를 해도 음질과 화질의 열화가 없다는 점이다. 극장에서 반복해 상영해도 아날로그 필름에서 보던 비오는 듯한 긁힌 자국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영화의 영구보관을 위해서도 디지털 정보로 기록해 보관하는 것이 부식이 가능한 필름으로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누구든 카메라를 들 수 있다

디지털 비디오라는 저렴한 포맷의 탄생으로 궁핍한 재정의 독립영화인들도 이젠 손쉽게 극영화를 제작해 내고 있으며 일반 영화애호가들도 원한다면 언제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세계각국에서 100만원도 안 되는 제작비로 100분 길이의 영화를 속속 만들어 내고 있으며 최근에 한국에서도 <돈오>라는 극영화가 3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제작되었다. 이제 더이상 영화제작은 많은 자본과 고급 테크놀로지를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신비한 것이 아니고 열정과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민주적인 것이 되었다. 혹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인해 예전보다 많은 영화가 나오지만 상당수가 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홈 비디오 수준을 넘지 못한 수준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흥행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꿈꾸는 누구나 평가와 흥행에 무관하게 영화를 만들어 볼 권리가 있다. 이제 2000년에는 여러분도 더이상 꿈꾸지만 말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가보라.

6mm 비디오카메라가 300만원선

디지털 비디오 기기

필름 작업에 비해 디지털 비디오 작업에 필요한 장비는 실로 저렴하다. 어느 정도 예산이 있는 사람은 개인이 모든 장비를 소유할 수도 있으며, 예산이 없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그룹으로 공동 구입해 소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6mm DV카메라로 가장 알려진 것은 소니 VX-1000인데 아직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고 있지만 용산에서 300만원 정도에 구입 가능하다. 이보다 한 단계 고가의 장비가 미국에서 4천달러에 팔리는 캐논 XL-1인데 이 카메라는 비디오 카메라임에도 다양한 렌즈를 바꿔 쓸 수 있으며 XLR오디오 연결이 가능해 좀더 전문적인 사운드 녹음이 가능하다. 좀더 예산을 투자할 수 있으면 5천달러인 JVC의 GY-DV500이 좋은 선택이다. 이 카메라의 렌즈 주위에는 필름카메라 렌즈처럼 노출, 렌즈 사이즈, 거리의 세 가지 내용이 눈금과 숫자로 표시되어 있어 좀더 완전한 수동촬영에 큰 도움이 된다.

디지털 편집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은 펜티엄 III 450, 128M 램, 16M 비디오카드, 19인치 모니터 등에 디지털 캡처보드를 장착하고 편집전용 하드 18기가(DV 비디오 80분 캡처할 수 있는 용량) 정도를 준비하면 되는데 전체예산은 350만원 정도. 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편집용 하드가 클수록 좋다. 여기에 프리미어 등의 편집용 소프트웨어를 추가한다. 애플컴퓨터 아이맥DV는 디지털 편집을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고 편집용 소프트웨어로는 파이널 컷 프로가 이상적이다.

다음은 촬영에 도움을 주는 장비들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쉽지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선 카메라 움직임을 부드럽게 해주는 글라이드 캠과 이걸 올려놓는 조끼는 각각 600달러와 150달러면 구입 가능하다. 이같은 장비를 무게가 많이 나가는 필름카메라용으로 구입하자면 수십배의 예산이 필요하다. 비디오 카메라용 집 암(소형 크레인 효과를 위해 삼발이에 연결하는 긴 쇠팔로 그 끝에 카메라를 고정시킴)도 550달러밖에 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장비면 600만∼900만원 예산으로 구입 가능한데 9명이 일인당 100만원씩 부담해 위의 장비를 공동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인터넷사이트의 방명록을 통해 문의바란다.

http://my.netian.com/~skc39.

임왕태/ 서울필름 아카데미 원장·미 캘리포니아 아트인스티튜트(칼아츠) M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