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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최진성, 촛불집회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뒤쫓다
글·사진 최진성(영화감독) 2008-06-24

#1. 타이틀 시퀀스

연일 펼쳐지는 촛불집회 혹은 시위 혹은 축제. 뭐라고 불러도 좋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노는 거’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고, 퍼질러 앉아서 맥주도 먹고, 수다를 떤다.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면, ‘온수’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여전히 냉수 물대포를 쏘면 그 냉수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굳이 ‘비누’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거거든. MB나 꼰대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구호나 플래카드나, 조직위원회의 커다란 차나, 확성기 외침 따위가 아니다. 인민대중의 쉬지 않는 웃음과 놀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무기. 위대한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유머는 공포에 대한 반응이자, 신을 찾아서 안도하고 싶은 몸짓이다.” 21세기에 다가온 이 뜬금없는 무책임한 공포를 우리의 친구들은 이렇게 여유로운 유머로 맞이한다. 그리고 이들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다. 바로 카메라. 모양도, 색깔도, 성능도, 기능도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카메라로 논다. 예전의 시위현장에서 보았던 진지한 카메라는 여기에 설 자리가 별로 없다. 친구들의 카메라는 놀지만, 그 ‘놂’ 속에서 놀라운 키노-프라우다(영화-진실)를 건져낸다. 신문사나 방송사의 어떤 카메라보다도 더 놀라운 진실을 그들은 기록해내고 공유한다. 이 글은 새롭게 출현한 어떤 카메라‘들’에 대한 기록이자, 이번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느꼈던 짧은 여행기이기도 하다. 키노-프라우다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위대한 카메라맨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 제목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타이틀 <카메라를 든 사람들>

#2. 종로_ 밤

아들을 위해 카메라를 든 아저씨

오늘도 역시나 시청 앞 집회가 끝나자 곧바로 거리행진이다. 종로로 접어드는데 40대 초반 즈음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초미니 캠코더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아저씨는 휴대폰 카메라와 초미니 캠코더 두개를 바꿔가면서 거리행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초미니 캠코더. 내가 본 캠코더 중에 가장 작은 캠코더다. (갖고 싶다.) 찍는 이유를 물어보니 아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아내와 아들이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데, 나중에 녀석이 크면 이런 멋진 일이 있었단다, 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촬영 중이란다. 아저씨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수줍어하면서 그냥 가신다. 멀리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찍어 보았다. 아내와 몇년 뒤의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어떤 진실이자 기록. 아내와 아이를 위해 카메라를 든 사람. 초미니 캠코더는 너무나 따뜻했다.

#3. 세종로_ 새벽

촛불집회를 가감없이 롱테이크로 생중계하는 진보신당의 칼라TV

SONY PD 170 캠코더와 노트북, 그리고 무선 인터넷 와이브로. 이 장비들로 새로운 역사가 지금 쓰여지고 있다. 시위 생중계. 그것도 편집된 것이 아니라, 가감없이 롱테이크로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진보신당의 컬러TV를 만드는 조대희 PD와 카메라맨 김일안. 시위현장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컬러TV 채널 혹은 아프리카를 이용해 생중계를 지켜보고 분노한다. 한참 느리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편집된 언론사들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편집없이 펼쳐지는 현장 상황을 인터넷 생중계로 지켜본다. 이날도 역시 새벽녘에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새벽 1시가 되자 세종로에서 버스를 흔들거나 혹은 뒷전에서 수다를 떨며 놀고 있던 사람들을 남대문쪽으로 수천명의 경찰들이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경찰들이 방패를 휘두르며 무차별 진압이 시작되고, 진중권 리포터와 컬러TV 스탭들은 경찰들과 시위대 한가운데서 현장을 급박하게 중계한다. “경찰들의 무차별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경찰들의….” 한 시간을 넘게 토끼몰이 한 뒤 이날도 60여명의 시민들이 닭장차에 실려갔다. 연행 뒤에도 시민들은 아침까지 자리를 지켰고, 그 곁에 컬러TV도 함께 있었다. 조대희 PD는 생중계가 재밌다고 한다. 즐기지 않으면 이 짓을 할 수가 없다며. 그들의 카메라는 왜곡을 일삼는 주류 언론을 막아내는 대항 언론으로서 새로운 이미지의, 미디어의, 혹은 영화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든 사람들. 베르토프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글쎄 와이브로 노트북과 캠코더를 들고 다니지 않았을까.

#4. 시청 앞 광장_ 낮

OBS 보도국 조성진 기자

내가 만난 카메라 중에 가장 비싸고 좋은 카메라다. SONY XDCAM 블루레이 방식. 가격은 약 4천만원. 바로 OBS 보도국 조성진 기자의 카메라다. 카메라가 기본적으로 크다보니 트라이포드에 세워놓고 촬영을 하는데, 사진을 찍으니 카메라맨 간지가 제대로 난다. 와이브로 생방송 카메라든, 자신과 같은 지상파 방송 카메라든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를 지지하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의 카메라는 그럴수록 더욱 냉정하다. 그게 자기 카메라의 자리다. 커다랗고 차가운 카메라를 든 사나이.

#5. 덕수궁 앞 도로 위_ 해질녘

카메라를 들지 않은 대신 딸 푸른이와 함께 시위에 참석한 김동원 감독

항상 카메라가 손에 있어야지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다. 바로 <상계동 올림픽> <송환>의 김동원 감독. <상계동 올림픽>도 찍기 전인 80년대 중반부터 집회 촬영을 했었는데, 당시엔 집회에 카메라가 없는데다가, 그때의 아날로그 카메라는 지금의 소형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무겁고 커서 티가 확 났다. 당시에 시위대들에게도 찍지 마라는 항의를 들으며 눈치를 먹었고, 경찰들도 카메라를 보면 싫어해서 카메라맨은 이중으로 난처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오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이 바뀌는 걸 카메라를 보며 실감한다. 소니만 떼돈 버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이 와이브로 생중계하는 걸 보면서 김동원 감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보기엔 쉽고 간편하다하나, 자기가 보기엔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워보인다. 어찌됐건 지금은 카메라를 갖고 오지 않아서 너무 편하다. 찍고 싶지도 않고. 무겁기까지 하니까. 이렇게 부담없이 노는 게 좋다. 딸 푸른이와 함께 말이다. 카메라를 버린 사나이. 집회장의 영원한 카메라맨일 것 같았던 김동원의 쿨한 카메라 이야기다.

#6. 을지로 입구역 화장실 앞_ 밤

필름 카메라를 든 두 사나이

행진 도중에 을지로 입구역 화장실에 들렀는데, 눈에 띄는 대학생 두명이 있었다. 두 사내 모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것. 골동품같은 것이 꽤나 멋있어 보였다. (이것도 갖고 싶었다.) 이호득씨의 카메라는 yashica electro 35인데, 30년 이상 된 걸 중고로 구입했다. 손재헌씨의 카메라는 pentax me super인데 아버지가 군대에서 돈을 모아서 사신 카메라를 물려받았다. 필름은 현상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고, 한장을 찍더라도 신경써서 찍게 된다. 디지털이 빠르고 편리하긴 하지만, 이런 필름 카메라의 불편함이 오히려 매력이다. 오늘이 처음 나온 촛불시위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언론이 무언가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그들 말이 맞는지 직접 보고, 직접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든 사람들. 디지털이 편리하긴 한데, 간지는 역시 아날로그인 듯.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경찰들의 채증 카메라

#7. 서대문_ 새벽

경찰들의 채증 카메라. 이것도 이번 촛불집회에서 자주 출몰하는 카메라 중 하나다. 비폭력 구호를 외칠 때나, 노래를 부를 때나, 밧줄로 전경버스를 끌어당길 때나, 전경 버스에 시민들이 올라탈 때나, 그들의 카메라는 항상 돌아간다. 성실하게. 집요하게.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그들의 태도. 참, 거시기하다.

#8. 세종로_ 낮

카메라에 전혀 무심한 커플

한가로운 낮. 가족, 연인, 친구들 모두 온갖 유머로 낙서 도배가 된 전경차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서로를 찍어준다. 그야말로 국민엠티. 이런 평화로운 풍경. 그런데도 경찰은, 이상한 신문은, 배후가 있다느니, 폭력집회라느니, 흰소리를 해댄다. 이런 와중에 카메라에 전혀 무심한 커플을 만났다. 연애 6개월차의 대학생 커플. 인삼녀와 강나루. 이 커플 독특하다. 남들 서로 열심히 사진 찍는 분위기에 그 흔한 디카 하나 들고 오지 않았다. 실은 6개월간 커플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단다. 그러면서도 내내 손을 꼬옥 잡고 있는 그들이 예뻐보였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어보니, 뒷모습을 보여주며 꼬옥 껴안는다. 카메라를 든 가족들, 연인들, 카메라를 거부한 커플. 모두들 평화롭다.

#9. 시청 앞 광장_ 해질녘

나홀로 방송국, 김균열씨

소니 노트북을 들고 집회장을 왔다갔다하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아저씨. 이런 풍경을 이번 시위에서 꽤 볼 수 있다. 컬러TV나 오마이TV의 와이브로 생중계가 최소 2명이 움직이는 반면에 노트북에 내장된 웹캠과 와이브로만 이용해 혼자서 노트북만 달랑 들고 생중계를 하는 시민의 모습. 전직 케이블TV PD 김균열씨는 예전에 케이블 방송에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아카데미 생중계를 했었는데, 이렇게 노트북 하나로 혼자서 저렴하게 생중계가 가능한 현실에 스스로 신나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생중계 중이다. 중계창 옆에 있는 채팅창을 통해서 청취자들의 의견을 듣고, 그 안에서 작은 토론의 장을 만들어간다. 노트북을 든 사나이. 키노-프라우다를 실천하는 작지만 커다란 시민.

#10. 시청 앞 광장_ 저녁

8mm 필름 카메라를 든 꽃순이, 이원우씨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든 소녀. 이번엔 스틸이 아니라 8mm 필름 카메라다. 이원우씨의 카메라는 캐논 514XL, 중고로 8만원에 구입했다. 지금 찍고 있는 이야기는 전경이나 시민이 개인으로 있을 때와 집단으로 있을 때의 의미파장이 다르다는 고민들. 개인과 집단. 그닥 쉽지 않은 주제로 보였다. 시위장에서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어떤 공포에 대한 전염. 평화가 공포로 바뀌던 순간을 기억하는데, 바로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는 순간이였다. 그렇게 전달된 시민들의 공포가 다시 전경에게 전해지고, 다시 역으로 전해지는. 그런 공포의 전염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머리에 화사한 녹색꽃을 달고 나왔다. 빨간 재킷에는 예쁜 흰꽃들이 수놓아져 있고. 꽃순이. 8mm 카메라를 든 꽃순이. 이런 평화. 이란의 폭력적 현실을 아름다운 유머로 풀어낸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손녀 마르잔이 “할머니한테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나요. 비결이 뭐예요?” 하자, 할머니가 웃으며 답한다. “매일 아침 재스민 꽃을 따서 브래지어 안에 넣어둔단다. 그래서 좋은 냄새가 나는 거지.” 공포보다는 꽃을. 공포보다는 향기로운 냄새가 여전히 넘쳐나는 국민엠티 현장이다.

#11. 에필로그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영화 연출가인 마크 페로가 1975년 6월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한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이다. “역사가의 첫 번째 의무는 여러 제도권 기관들이 이 사회로부터 빼앗아간 역사를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사회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귀 기울이는 것, 내 생각에는 이것이 역사가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여기에서 영화는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극영화이든 이른바 뉴스 영화라고 부르는 다큐멘터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나는 여러 유형의 영화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적어도 상상력이 역사[역사적 인식]이면서 동시에 ‘역사’[역사의 흐름 자체]인 역사가에는 그렇습니다.” 와이브로 미디어 생중계, 수많은 카메라맨의 등장, 디지털 민주주의, 그리고 놀기. 카메라로 놀기. 이번 판은 이런 상상력의 승리. 페로가 말한 (영화)역사가의 첫 번째 의무의 실천. 제도권 기관/언론들이 빼앗아간, 왜곡한 역사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 이를 인민대중이 스스로 카메라맨이 되어 실천하고 있다. 게다가 신나게 놀면서 말이다. 키노-프라우다, 시네마베리테의 무/의식적 실천. 더이상 놈들의 거짓이, 왜곡이 들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블로그를 통해, 미니홈피를 통해, 아프리카를 통해, 여러 채널을 통해 카메라로 찍은 진짜 사실들을 우리는 만나는 중이다. 그리고 아예 우리 스스로가 ‘카메라를 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2008년의 6월. 대한민국의 역사가 카메라를 통해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