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드래곤볼> 웨스턴의 고향, 비밀의 손오공
오정연 2008-11-13

9개월 전의 <드래곤볼> 멕시코 촬영현장 보고

지금으로부터 9개월 전.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실사영화 <드래곤볼>이 촬영현장으로 기자들을 초청했다. 드래곤볼? 초등학생 무렵 교실에서 돌려보며 낄낄거렸던, 꼬맹이 오공이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만화책으로 TV애니메이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던 그 ‘드래곤볼’? 그렇다. 바로 그 드래곤볼. 드래곤볼을 찾아 나서는 오공의 심정으로 출발했고,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현장에서 익숙하고 낯선 감독, 배우들을 만났다. 어느덧 겨울이 훌쩍 다가와 앉은 11월. 쨍한 태양빛이 먼저 반기던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뒤늦게 전한다.

인천에서 LA, LA에서 멕시코시티, 멕시코시티에서 두란고까지 이어지는 비행 여정을 전달받았다. 멕시코는 가본 적 없었고, 두란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지명이었다. 인천에서 멕시코시티까지는 직항이 없었고, 멕시코 북서쪽에 자리한 두란고는 고속버스만한 여객기로 승객을 실어나르는 소박한 곳이었다. LA에서 10시간, 멕시코시티에서 6시간을 기다렸고, 집 나선 지 근 36시간 만에 호텔에 짐을 풀었다. 멕시코와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그리고 아시아의 한국까지 초대받은 기자들은 모두 11명. 기나긴 여정으로 초췌해진 얼굴을 마주한 이들이 공유한 첫 번째 질문은 ‘하필이면 왜 여기?’였다.

장장 36시간 만에 도착… 왜 하필 두란고지?

“<드래곤볼>의 배경은 ‘근미래의 어딘가’다. 다양한 풍광을 한꺼번에 제공할 만한 로케이션을 우선적으로 물색했다. 그중에서도 멕시코는 LA의 스튜디오에서 가깝고, 물가가 싸다는 엄청난 장점을 지녔다.” 영화사 폭스 홍보담당자의 말이다. 두란고 영상위원회의 서지오 구티에레스가 덧붙인다. “사실 두란고는 역사 깊은 ‘영화도시’다. 영화가 태어난 지 3년 만인 1898년에 에디슨의 조수가 이곳에서 증기기관차를 영화에 담았고, LA와 기후가 비슷하면서 사막부터 우거진 숲까지 풍부한 풍광을 지닌 덕분에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과 멕시코가 제작했던 100여편의 웨스턴이 이곳에서 제작됐다.”

‘필름 시티’ 두란고의 홍보 영상에는 <와일드 번치>부터 <마스크 오브 조로> <밴디다스>까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화 속 장면들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두란고를 얼마나 자주 접했는지를 깨닫기에 부족함이 없다. 존 웨인이 출연했다는 서부극 <대열차강도>(1973)의 교회, <밴디다스>(2004)의 은행이며 바가 한자리에 모여, 그 자체로 서부극의 황량한 마을을 재현하는 세트도 방문했다. 이곳에서 일련의 영화들을 촬영하다가 두란고의 팬이 된 존 웨인 소유의 목장이 바로 옆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차기 대권까지 노릴 정도의 유력인사, 두란고의 주지사 이스마엘 에르난데스 데라스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영화기자들과 조찬을 함께하며 두란고 홍보에 열심이었다. 좀더 저렴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세계 영화산업을 향한 두란고의 적극적인 구애 흔적은 곳곳에서 엿보였다.

‘망가’에 관한 프랑스·멕시코 기자의 추억

그렇다면 두 번째, 어찌보면 가장 궁금한 질문. 11년에 걸쳐서 출판됐고, TV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애니메이션 등으로 지속해서 제작됐던 <드래곤볼>을 이제 와서 할리우드의 실사 가족영화로 옮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코믹북을 통칭하는 용어 ‘망가’가 일본어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벽안의 기자들 중 아시아인은 필자가 유일했다. 원작 만화 <드래곤볼>을 접한 적이 있는 기자는 필자를 포함하여 세명이었다. 손오공의 나이대가 언제로 설정되었는지를 궁금해하거나, 홍콩 누아르의 비장미를 거쳐 중후한 미중년의 포스를 내뿜게 된 주윤발이 ‘변태 늙은이’의 대명사 격인 무천도사로 캐스팅된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세명밖에 없었던 거다.

프랑스에서 온 줄리앙 샤반느에 따르면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일본 만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해왔다. 15살 때 <드래곤볼>을 처음 읽었다는 그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명 TV쇼 <클럽 도로시>(Club Dorothy)가 일본 만화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드래곤볼>은 그중에서도 제일가는 성공작이었다고 한다. 수백권에 이르는 일본 만화책를 소장하고 있다는 멕시코의 훌리오 벨레스는 멕시코는 물론 미국의 히스패닉계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이미 주류 문화라고 소개했다.

‘망가 열풍’의 최초 진앙지 격인 <드래곤볼>을 가족영화로 만들려는 할리우드의 시도는 자국 내 아시아계 이민 2, 3세를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과 유럽 일부,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관객이 확보된다는 타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달려라 번개호>를 난해한 키치영화로 완성했던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와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손오공한텐 꼬리가 없고 호이호이 캡슐도 없고…

현장 공개는 단 한번. 2월25일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이루어졌다. 시나리오도 대강의 줄거리도, 캐릭터에 대한 대강의 설명도 없이,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모니터만을 기웃거리는 식으로 이뤄진 탓에 대체 무엇을 ‘공개’한 것인지가 헷갈린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주윤발이 무천도사를, <우주전쟁>의 말썽쟁이 아들 저스틴 채트윈이 주인공 손오공을, <오페라의 유령>으로 이름을 알린 에미 로섬이 부루마를, <스피드 레이서>를 비롯해서 할리우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박준형이 야무치를 연기한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이 밖에도 <히어로즈> 시즌2에 얼굴을 비췄던 일본계 다무라 에리코가 마이, 한국계 미국인 제이미 정이 치치로 캐스팅되는 등 <드래곤볼>의 곳곳에서 아시아의 중견과 신인 연기자가 눈에 띈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로 자리를 잡은 제임스 왕 감독 역시 중국계. <드래곤볼>의 영화화 프로젝트다운, 아시아 관객을 적절히 의식한 포석일 것이다.

‘평범한 10대였던 고쿠는 특별한 계기로 드래곤볼의 존재를 알게 되고 부루마, 야무치 등과 함께 드래곤볼을 모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것이 제작진이 당시 기자들에게 알려준 플롯의 전부였다. “드래곤볼을 모으려는 건 당연히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근데 그게 무슨 소원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는 책임 프로듀서 팀 반 렐림에게 기자들은 “뭐, 틀림없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겠지”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폐쇄된 청바지 공장을 영화제작을 위한 사무실과 촬영장으로 개조해 사용 중인 세트는 밤이 되자 다소 을씨년스러웠고, CG를 통해 그려넣어질 용암을 상상하며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공간 안에서 각자 무기를 들고 선 배우들이 무슨 대사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배우 및 감독부터 의상감독, 비주얼 슈퍼바이저 등의 라운드테이블 인터뷰를 비롯해서 얻어낸 정보는 다음과 같다. (만화와 달리) 손오공에게는 꼬리가 없다. 어디든 타고 다닐 수 있는 근두운이나 무엇으로든 변신 가능한 호이호이 캡슐도 없다. 부루마와 야무치, 손오공와 치치의 대략적인 성격이며 러브 라인은 그대로다. 주윤발의 무천도사는 (다행히도?) 원작보다는 체통을 지킬 것이다. 손오공의 헤어스타일과 주된 의상은 웬만큼 유지될 것이다. 7, 8살부터 30대까지 원작의 골수팬부터 일반 관객까지 모두 즐길 만한 가족성장모험영화가 될 것이다….

유창한 영어로 분위기 주도하던 박준형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질문과 그렇지 못한 질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3박4일이 흘렀다. 그리고 11월. 2007년 말과 2008년 초에 걸친 7주간의 빠듯한 두란고 촬영이라지만 낙천적인 햇살을 닮아선지 시종일관 쾌활하고 긍정적이었던 현장 분위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애인, 혹은 가족을 대동한 채 현장에 머물던 배우들은 짐짓 피곤할 만한 라운드 인터뷰 자리에서 편안한 태도였다. 특유의 어눌한 한국어보다 훨씬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박준형은 현장에서 ‘준 팍’(Joon Park)으로 불렸는데, 활달하게 인터뷰를 주도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보다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드래곤볼>의 한국 개봉은 2009년 3월 예정. 알고 보니 익숙한, 낯선 장소에서 이뤄진 촬영은 지난 봄에 끝났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원작과의, 왠지 낯선 방식의 만남을 기다릴 차례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