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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테러범의 내면을 스릴러로
김도훈 2008-11-21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정한 시선과 작품성을 무기로 뜨는 이스라엘영화들

거장 아모스 기타이의 이름만이 오롯하던 이스라엘영화가 지난해와 올해 국제영화제들을 통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만 무려 여섯편의 이스라엘영화들, <바시르와 왈츠를>과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 <젤리피쉬>, 58회 베를린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레몬 트리>,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작 <누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출품작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 베를린영화제 경쟁작 <천국을 향하여>가 국내 개봉한 것은 이스라엘영화의 국제적 부상을 보여주는 튼튼한 증거다.

성공 거두지 못한 ‘팔레스타인 웨이브’

흥미로운 것은 국내 개봉작들이 각기 다른 장르를 차용함에도 공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사회·문화·정치적 분쟁,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레몬 트리>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레몬 농장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여인의 삶을 다룬다. <밴드 비지트…>는 이스라엘의 시골마을로 우연히 기어들어간 이집트 악단의 이야기를 통해 적대적인 두 민족이 일구는 우정을 그린다. 물론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다루는 <바시르와 왈츠를>과 팔레스타인 폭탄테러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천국을 향하여>는 좀더 직접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언급한다.

<레몬 트리>

<천국을 향하여>

사실 80년대 이전 이스라엘영화들은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입을 완강히 다물었다. 이스라엘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반성하기 시작한 건 레바논 전쟁과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벌어진 1982년부터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니엘 왁스맨의 <함신>(Hamsin, 1982), 권력에 항거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유대인/팔레스타인 죄수들을 다루며 84년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우리 바바시의 <벽을 넘어서>(Beyond the Walls) 같은 영화들이 갑자기 등장하자 서구 비평가들은 이를 ‘팔레스타인 웨이브’라고 불렀다. 그러나 80년대 이스라엘영화들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스라엘 대중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영세한 아트하우스 영화들의 한계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모슬렘의 유대인의 할리우드적 화합?

이스라엘 영화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건 90년대다. 영화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조금씩 늘어났고 지역 방송국도 새롭게 출범했다(1993년 이전 이스라엘에는 단 하나의 자국 TV채널만이 존재했다). 게다가 2000년에는 개인이 영화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영화법이 탄생하면서 많은 신인 감독들이 본격적으로 데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가장 먼저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은 거장 아모스 기타이다.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순혈주의에 칼날을 들이댄 <카도쉬>(1999)는 이스라엘영화로서는 25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며 국제무대뿐만 아니라 자국 관객에게도 큰 주목을 얻어냈다. 기타이 이후 가장 주목받은 감독으로는 하니 아부 아사드를 들만 하다. 변화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라나의 결혼>(2002)으로 주목받은 아부 아사드는 <천국을 향하여>에서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범의 내면을 스릴러의 방식으로 파헤친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영화가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을 표정없는 시한폭탄이 아니라 인간으로 묘사할 수 있고, 이스라엘 대중 역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몇몇 서구 비평가들은 지난 몇년간 국제무대에 데뷔한 이스라엘영화들이 모슬렘과 유대인의 할리우드적 화합을 이끌어내며 현실을 유화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는 리버럴의 잣대로 영화를 평가하는 서구 언론의 한계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스라엘 바깥의 사람들에게와는 달리) 영원히 지속되는 오래된 일상이다. 지금 이스라엘 감독들이 예전보다 대중적인 이야기의 방식, 혹은 대중적인 장르를 차용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들의 영화는 아우슈비츠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할리우드 유대계 영화인들의 프로파간다에 맞서는 건강한 해독제로도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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