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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제국’의 태양은 지지 않으리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09-01-13

<택시>에서 <트랜스포터>까지, 세계 유일의 인터내셔널 프로듀서인 그와 그 동지들의 활약

프랑스 누벨 이마주의 신성이었던 뤽 베송은 어느덧 세계 상업영화계의 촉망받는 제작자가 됐다. 나라의 경계를 넘고, 각국 배우들을 뒤섞으며, 홍콩 액션스타일과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를 결합하더니 온전히 그만의 영화제국을 만들었다. 이제 그에게 할리우드와 유럽의 경계란 없다. 더불어 루이 레테리에, 피에르 모렐, 크리스 나흔 등 그가 양성한 후배들은 어느덧 속속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저 멀리 <택시> 시리즈부터 이연걸과 제이슨 스타뎀을 경유해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뤽 베송 사단의 화려한 면모를 살펴본다.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에서 프랭크(제이슨 스타뎀)와 발렌티나(나탈리아 루다코바)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헝가리로 향한다. 여권도 필요없다. 그냥 수백 킬로미터를 마치 서울에서 부산 가듯 일단 떠난다. 흔히 미국 로드무비에서 볼 수 있는 한밤의 모텔도 없다. 그냥 일일생활권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 뮌헨까지 100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뜨고 발렌티나는 당장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프랭크는 “뮌헨에 가면 소시지와 맥주가 있다”고 말하지만 발렌티나는 ‘화이트 와인과 송아지 구이, 그리고 발사믹 식초’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신다. 영화에서 영어를 쓰지만 프랑스가 고향이고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그리워하는 프랭크는 그만 입맛을 다시고 만다. 아니 왜, 독일에 무슨 감정이라도?

세계로 뻗어나가는 ‘프렌치 인베이전’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

‘출신’을 따지기 시작하면, 이건 참 이상한 액션영화다. 영국 배우 제이슨 스타뎀이 프랑스로 와서 뤽 베송과 함께 영화를 만들며, 나탈리아 루다코바는 우크라이나 환경보호협회장의 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00% 뉴요커 모델 출신 배우다. “내 고향은 우크라이나라니까요!”라는 발렌티나의 항변에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그게 그거”라는, 유럽연합 대부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프랭크의 대사도 빠지지 않는다. 어설프지만 프랑스 경찰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 모두 영어를 쓴다. 게다가 ‘대머리 제임스 본드’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제이슨 스타뎀의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역시 영국 배우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007 시리즈의 또 다른 변형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영어권 배우를 데려다 영어를 쓰면서 북미시장을 겨냥한 전형적인 유럽 액션영화로 보이지만, 비꼬듯 ‘소시지와 맥주’ 운운하는 것처럼 프랑스인으로서의 취향과 자부심도 은근히 잊지 않는다.

더불어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유럽연합 이후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액션영화이기도 하다. ‘유럽연합 시대의 무경계’에 대해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가 그 화두를 던졌다면 <트랜스포터>는 냉큼 그것을 집어들어 상업화한 경우다. ‘부다페스트까지 600km’라는 표지판이 이제는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마르세유 조그만 마을의 경찰서장이 직접 우크라이나 환경보호협회장에게 가서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일은 그래서 발생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영화들이 나오게 됐고, 또 어떻게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는 걸까. 그리고 또 우리는 한·중·일 3개 나라를 하나의 언어로 관통하는 상업영화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뤽 베송은 그것을 해낸 사람이다. <테이큰>은 같은 방식으로 대서양을 건너버린 영화일 뿐이고.

뤽 베송 프로덕션을 설립한 뒤 첫 번째 작품인 <택시>(1998) 이후 뤽 베송은 제작자로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직접 연출한 100% 영어 영화 <제5원소>(1997)나 <잔다르크>(1999)와 달리 규모에 대한 강박을 떨치고 오직 스피디한 스타일, 이른바 ‘파리지앵’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영화계의 낭만성과 결별한 새로운 누아르 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거대한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불과 지난 10년 사이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다채로운 면면으로 입증된다. <택시>의 제라르 피레, 제라르 피레에 이어 <택시4>(2007)까지 완성한 제라르 크라브지크, 뤽 베송이 손잡은 홍콩 액션스타 이연걸의 <더 독>(2005)으로 데뷔해 <인크레더블 헐크>(2008)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루이 레테리에, <테이큰>(2008)으로 일약 스타 감독이 된 뒤 역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준비하는 피에르 모렐, <키스 오브 드래곤>(2001)으로 역시 이연걸과 함께한 뒤 할리우드로 건너가 현재 전지현 주연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8)의 개봉을 기다리는 크리스 나흔에 이르기까지 그 사단의 면모는 정말 화려하다. 이른바 ‘상업영화’라는 관점에서 이처럼 뤽 베송이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방사형으로 펼쳐나가는 ‘군락’은 현재 세계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 계보는 루이 레테리에와 피에르 모렐 등에서 보듯 과거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빗대 ‘프렌치 인베이전’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뤽 베송은 원래 ‘할리우드적’이라는 찬사 혹은 비난을 함께 듣던 사람이었다. 장 자크 베넥스, 레오스 카락스와 더불어 프랑스 ‘누벨 이마주’의 3총사로 불렸던 그가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프랑스의 스필버그’라 불리기도 했던 그는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할리우드적인 속도와 스타일을 추구했다. 실제로 그는 할리우드로 떠나 밑바닥 잡일부터 시작해서는 <007 문레이커>(1979)의 촬영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로 돌아와 만든 <마지막 전투>(1983)는 핵전쟁 이후의 미래사회로 설정된 암울한 흑백 이미지와 실험적 스타일로 젊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반면 ‘프랑스 아트필름’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그 어떤 계보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히 돌출된 지점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할리우드 필름누아르였고, 더 세월이 지나서는 홍콩누아르영화와 무협영화를 가장 깊이 흡수하게 된다.

‘Speed, Free, Fun’이라는 명쾌한 깃발

어쩌면 ‘뤽 베송 사단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명제를 가정할 때 가장 직접적인 시초라 할만한 작품은 <니키타>(1989)다. <그랑 블루>(1988)로 대표되는 뤽 베송의 서정과 완전히 단절하고 도시의 음울하고 폭력적인 취향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총격전과 스피디한 스타일,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프랑스 폭력조직의 양상은 국내에서 폭력과다와 무국적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다.

물론 좀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서브웨이>(1985)를 빼놓을 수 없다. 지하철 밑에서 살아가는 기이한 아웃사이더들의 모습은 이른바 ‘13구역’으로 대표되는 뤽 베송 사단 특유의 새 영토(할리우드영화로 치자면 할렘 정도?)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티외 카쇼비츠의 <증오>(1995) 정도를 제외하면 이전 어떤 프랑스영화에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테이큰>(2008)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동유럽 이민자들을 포함해 다국적 조직원들로 무장한 새 폭력조직의 양상은 변화하는 유럽연합의 풍경이기도 하다. 어쩌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2007)에 영향을 준 영화가 이들의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택시>

뤽 베송 사단 영화의 특징이 스피드라면 그것은 세 가지 스타일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택시> 시리즈로 대표되는 놀라운 프랑스식 카체이스신, 원규 무술감독과 이연걸과 손잡은 홍콩 무협액션, 그리고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의 도입이다. <제5원소>의 성공 이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Speed, Free, Fun’이라는 명쾌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카레이서 출신이자 푸조와 샤브, 볼보 등 세계 명차들의 CF를 수십편 제작한 제라르 피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면서 <택시>를 만들게 되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화 속 배경을 파리가 아닌 마르세유로 설정한 것이었다. ‘LA처럼 시원하게 도로가 뚫려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할리우드 카체이스신 못지않게 완성된 <택시>는 그해 <타이타닉>을 누르고 프랑스 흥행 1위에 올랐다. 당시 <타이타닉>과 겨뤄서 자국의 영화가 흥행1위에 오른 나라는 <택시>의 프랑스뿐이었다. 할리우드 테크닉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는 세련미와 완성도, 그리고 그에 따른 놀라운 성공은 뤽 베송을 탄탄한 입지에 올려놨다. ‘프랑스 상업영화’라는 표현은 이제 견고한 그 무엇이 됐다.

물론 여기서도 독일에 대한 은근한 농담이 빠지질 않았다. 프랑스의 자존심이라는 푸조를 개조한 흰색 택시는 “또다시 독일 놈들에게 조국을 내줄 수 없다”며 벤츠와의 대결에서 이긴다. 게다가 영화에서 희화화된 독일 갱단은 벤츠의 성능을 민족적 우월성과 연결짓는 족속들이다.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에서 벤츠를 박살내는 아우디의 모습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물론 아우디도 독일 차다. <트랜스포터> 시리즈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뿐). 그렇게 두 시리즈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데, 경찰과 드라이버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수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도 <트랜스포터>는 <택시>의 인터내셔널 액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파워풀한 할리우드식 카체이스신과 다른 아기자기함을 보여준 <택시> 시리즈는 존 프랑켄하이머의 <로닌>(1998),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1996)에서 확인되듯 그 기술이 역수출되기도 했다. 그렇게 흰색 푸조 택시는 뤽 베송 사단의 상징이자, 이제 프랑스영화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그것은 <러시 아워3>(2007)에서 성룡과 크리스 터커를 태우고 미친 듯이 범죄자를 쫓는 택시 드라이버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콩 무협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결합

뤽 베송 사단의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에서 탈피한 액션영화다. 유럽 내에서의 경계, 유럽과 할리우드 사이의 경계를 무화하려는 뤽 베송의 의도는 이야기구조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미지의 지역인 파리 뒷골목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들의 영화가 종종 일차원적 영화, B급영화 대접을 받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뤽 베송 사단 영화들이 널리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한편으로 홍콩 무협액션과의 결합이 큰 역할을 했다. <키스 오브 드래곤>으로 뤽 베송과 결합한 이연걸과 <트랜스포터>를 연출하고 이후 대부분 뤽 베송 사단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맡은 원규는 그 중심에 있다. 제이슨 스타뎀이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킥을 날리고, 웃옷을 벗어 상대를 휘감으며 싸우는 홍콩식 키치적 액션은 그렇게 탄생됐다. 게다가 일찌감치 홍콩에서도 이연걸과 단짝이었던 원규는 단신인 이연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종종 거구와의 대결 장면을 꼭 집어넣었는데,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에서도 굳이 210cm가 넘는 K-1 선수 세미 슐츠를 캐스팅해 대결을 완성한 모습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촬영 전 이 역할을 한국의 최홍만에게 맡긴다는 계획도 있었다).

이처럼 <키스 오브 드래곤> 이후 홍콩액션 스타일과의 접목은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한때 붐이 일기도 했는데 이듬해 나온 프랑스, 홍콩, 일본의 합작영화 <사무라이>(2002) 같은 영화도 있었다. <늑대의 후예들>(2001)의 무술을 맡았던 곽추가 <사무라이>의 무술을 맡고, 과거 쇼 브러더스 출신 배우였던 구라다 야스키가 출연까지 했던 것. 이 영화의 제작자는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들을 줄곧 제작해왔던 마크 미소니에와 올리비에 델보스크였고 그들은 다음해 <블러디 말로리>(2002)라는 또 다른 무국적 액션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모두가 뤽 베송과 이연걸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할리우드 자본이 투자되고 할리우드 배우(브리지트 폰다)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싸우는 홍콩 액션스타’의 이미지(<키스 오브 드래곤>)는 그렇게 완성됐다. 이후 뤽 베송이 넘본 스타는 바로 <옹박> 시리즈의 토니 자였다. 하지만 국제적 상품성이라는 측면에서 토니 자와의 지속적인 작업은 현재 유보됐고, 대신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를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직접 <야마카시>(2001) 각본을 쓰면서 아무런 안전기구와 일체의 장비 없이 맨 손으로 도시의 고층빌딩과 출입이 금지된 건물 등을 타오르며 점프하는 뒷골목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것은 다시 <13구역>(2004) 시리즈로 이어졌으며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는 물론, 대니얼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은 새로운 007 시리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테이큰>

<키스 오브 드래곤>

역으로 할리우드에 영향을 끼치다

뤽 베송은 할리우드와 경쟁한다는 의미를 넘어 이제 배우와 언어, 그리고 고유의 스타일을 넘어 자기만의 제국을 만들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홍콩의 배우들이 영어로 대화하고 쿵후로 싸우며 13구역을 헤집고 동유럽을 넘고 대서양을 건너 적을 찾아다니면서 불현듯 프랑스 요리를 예찬한다. 뤽 베송 사단은 이제 할리우드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그의 화법과 스타일이 어느덧 역으로 할리우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뤽 베송은 현재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유일의 인터내셔널 프로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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