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다 보니 너무 많았다. 참으로 치열한 경쟁이었다. 막장드라마 속 최악의 순간들을 뽑았다. 가볍게는(?) 막말부터 불륜, 패륜, 납치, 심지어 살인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아내의 유혹> <에덴의 동쪽> <흔들리지마> 등 각종 드라마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막장의 명장면들을 공개한다. 독기가 보통이 아니니 심장 약한 분들은 건너뛰시길.

1. 이수현이 쓰러진 시아버지를 두고 거짓말하는 장면 <흔들리지마>

‘재혼가정 세 자녀들의 사랑을 통해 소중하지만 지긋지긋한, 하지만 우리가 사랑해야만 하는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기획의도 한번 거창하나 이 드라마대로 사랑하자니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약혼남을 붙잡기 위해 거짓 임신을 고하는 것도 모자라 멋대로 혼인신고를 올린 이수현(홍은희). 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 상대가 새어머니가 데려온 의붓남매 중 한명인 민정이니 환장할 노릇이다. 약이 제대로 오른 수현은 민정과 승강이를 벌이다가 그녀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고, 그 광경을 또 다른 의붓동생의 여자친구 영아가 목격하자 그녀를 납치하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말씀. 영아의 납치를 교사받은 두환이 수현을 협박하던 중 시아버지 한 회장이 집으로 들이닥치고, 수상쩍은 인기척을 느낀 한 회장에게 옷장에 숨어 있던 그가 발각되고 만 것. 격렬한 몸싸움 끝에 두환은 트로피로 한 회장을 내리치고, 의붓동생들의 존재가 알려져 궁지에 몰려 있던 수현은 시아버지가 강도에게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물론 이 기막힌 드라마가 여기서 멈출 리 없지 않은가. 자신의 비밀이 폭로될까 불안해하던 수현은 겨우 기력을 되찾은 시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이다 그를 쓰러뜨리고, 실려나간 한 회장은 그 길로 세상을 등진다.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이건 분명한 살인. 며느리와 함께 TV 보던 시아버지들, 등골 서늘하셨겠다.

패륜 지수 ★★★★★ 사기 지수 ★★★★★ 시아버지들 움찔 지수 ★★★★★

2. 교빈·애리가 은재 옆방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 <아내의 유혹>

한 남자가 두 여자와 신혼여행을 갔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않나. 망측한 사건을 논할 때 한번쯤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던 그 유명한 이야기가 브라운관에서 버젓이 재현된다. 이 버전에서 다른 점이라곤 굴러온 돌, 즉 내연녀가 박힌 돌, 본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 아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남자를 유혹했다는 사실. 그리고 두 여자가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 사이로, 처의 가족이 갈 데 없는 내연녀를 따뜻하게 보듬은 정 많은 사람들이라는 사실.

선심쓰듯 아내와 여행을 떠나온 교빈은 “오늘 안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혼자 있으라”며 자리를 비운다. 애리가 같은 펜션 그것도 옆방에 자리잡은 것. 양심 따윈 밥 말아먹은 애리는 은재에게 전화해 너네 남편이 바람 피우고 있노라며 고해바치고, 도리질하는 그녀에게 “세상 사람이 다 아는 바람둥이도 정작 그 부인은 모른다지 않느냐”며 악담을 퍼붓는다. 옆방에 들리도록 깔깔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애리와 교빈.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바다 보며 잠드는 장면.” 세탁 맡겨둔 교빈의 셔츠와 아침식사를 보란 듯이 옆방으로 배달시키는 애리의 주도면밀함을 보면 그 영화 분명 만만찮은 공포물일 거란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불륜 지수 ★★★★ 해외토픽감 지수 ★★★★ 아내가 바보냐 지수 ★★★★★

3. 신태환이 유미애를 강제로 낙태시키는 장면 <에덴의 동쪽>

이건 분명 피도 눈물도 없는 신태환(조민기)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다. 야망을 위해 가릴 게 없는 그는 자기 앞길을 막는 자라면 그 누구도 살려두질 않으니, 빛 한번 못 본 자기 핏줄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태백병원 간호사 유미애는 신태환의 불륜 상대. “남의 영혼 따위는 관심없다”는 그는 미애를 납치하고 배를 갈라 아이를 낙태하도록 친히 사주한다. 이후 펼쳐지는 풍경. 임신부의 배를 긋는 메스와 항의라도 하듯 의사의 얼굴에 튀어오르는 핏물. 이거 15세 관람가 맞습니까? 노약자와 임신부도 볼 수 있는 드라마, 정말 맞습니까? 여성단체에서 최악의 남자를 뽑는다면 정교빈도, 한원수도 물리치고 신태환이 1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에덴의 동쪽> 1화에 있다.

윤리·도덕 지수 ☆ 최악의 남자 지수 ★★★★ 노약자·임신부 관람 금지 지수 ★★★★★

4. 국영란이 <아리랑>을 부르면서 춤추는 장면 <에덴의 동쪽>

이건 좀 다른 의미의 막장이다. ‘발호세’와 더불어 ‘발연기’로 명성을 떨친 이연희. <에덴의 동쪽>에서 카지노 대부 국 회장(유동근)의 딸 국영란 역을 맡은 그녀는 극중 영어 발음, 노래, 춤, 연기력과 관련된 각종 구설에 휩싸였다. 네티즌의 논란에 불을 붙인 게 바로 장구 장단에 맞춰 <이리랑>을 부르면서 전통춤을 선보이는 장면. 아버지의 사랑을 극진히 받고 자란 외동딸이니 ‘빽’ 없는 이동철(송승헌)과는 절대 맺어질 수 없는 몸. 그런 영란과 마카오 재벌의 아들 마이크의 결혼이 만천하에 발표되는 자리인데 어째 눈물 대신 웃음이…. 배우야 불발에 그친 사랑의 아픔을 판소리 선율에 녹이려 했겠지만 전통음악과 춤을 하루이틀 연습으로 어찌 마스터하랴. 배우의 전적을 고려치 않고 소화 불가능한 장면을 써댄 작가를 탓할 수밖에. 자매품으로 “아저씨, 벌써 날 사랑하게 된 거니?”, “난 슬플 땐 학춤을 춰” 등이 있다.

연습 요망 지수 ★★★ ‘난 슬플 땐 학춤을 춰’ 지수 ★★★★ 왜 눈물 대신 웃음이… 지수 ★★★★★

5. 한원수가 모지란에게 이별 선고하는 장면 <조강지처클럽>

“너만 보면 열받으니까 내 눈앞에 보이지 말고 나가라. 만정 다 떨어졌어!” 돈 떼먹은 친구에게 내지르는 말이 아니다. 한원수(안내상)가 아내를 내쫓고 데려온 여자, 남편이랑 딸 버리고 온갖 멸시와 지탄을 받으면서 그의 집에 들어온 모지란에게 외치는 말이다. 더욱 해괴한 건 모지란이다. 이 여자, 정말 어딘가 모자란 건지 남자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는 등 오기도 부리다가 끝끝내 무너진다. “오다가다 만났으면 즐기면 되지, 왜 집까지 나오냐. 난 널 멸치 똥만큼도 사랑한 적 없어!”라는 충격적인 일갈에 충격받더니, 그래도 가지 말란다. 같이 살잔다. 하지만 이별의 법칙 제1장. 한번 멀어진 연인은 잡을수록 더 빨리 도망간다. 뒤에서 껴안는 여자를 내동댕이친 채 돌아선 남자의 마음은 마하의 속력으로 떠나간다. “죽어도 이런 식으로 못 나가.” 이를 박박 갈면서 소주를 꺼내 들이켜는 지란. 막장으로 접어든 여자 인생이 소주 병나발을 분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 마음도 쓰다, 써.

막말 지수 ★★★ 애걸복걸 지수 ★★★★ 소주 병나발 지수 ★★★★

6. 정교빈이 구은재를 물속에 밀어넣는 장면 <아내의 유혹>

‘싸대기’는 기본이다. <아내의 유혹> 첫화 오프닝. 그 몇분간 언급되는 범죄만도 강간, 폭력, 불륜, 납치 및 살인미수 등. 이 정도라면 한평생 감방에서 썩고도 남을 형량이다. 그중 압권은 남편 정교빈(변우민)이 “같이 죽자”며 아내 구은재(장서희)를 데리고 물속에 들어가는 장면. 임신한 아내를 산부인과에 데려가 낙태시키려는 발상도 끔찍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거기다 홑몸도 아닌 여자를 죽게 내버려둔 채 불륜녀 신애리(김서형)와 함께 도망치는 작태는 또 뭔가. 신혼 초에 이어 어렵사리 가진 아이를 다시금 유산하는 은재.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라면 뱃속 생명 따위 죽이고 또 죽이는 무서운 막장의 저력이다.

더욱 희한한 건 교빈, 은재, 애리가 대소동을 일으킨 그 바닷가에서 같은 시간 다른 여자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 그녀가 은재의 조력자로 급부상한 민 여사(정애리)의 외동딸 민소희, 의붓오빠 민건우에 목매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바다로 뛰어든 비운의 인물이다. 그런 건우가 은재에게 사랑을 느끼니, 이 무슨 기괴한 인연인가. 먼 옛날 고전소설의 설정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우연이다.

살의 지수 ★★★ 생명경시 지수 ★★★★★ 우연×우연×우연 지수 ★★★★

7. 장새벽이 엄동설한에 이불빨래하는 장면 <너는 내 운명>

아무리 며느리가 싫다 한들 해도 너무했다. 서민정(양금석)은 아들 강호세(박재정)가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장새벽(윤아)이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내 아들을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착하고 말 잘 듣던 호세가 내내 그 여자 편이란 말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아들이 자기 품안 자식이었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독한 시집살이로 이어진다. 며느리가 일하느라 바쁘다니 버럭 화를 내는가 하면, 대뜸 손님에게 대접할 민어찜(김치찌개도 아니고!)을 내놓으라 명령하고, 엄동설한에 다리 걷어붙이고 찬물에 이불빨래를 하게 만든다. 감기에 걸려 골골하는데도, 밤늦게까지, 인정사정봐주지 않고. 이러니 어느 누가 가만히 있을까. 아내를 위해서라면 <노바디> 춤도 불사하는 호세는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가 따지는데, 그녀 입장에선 그것마저 서럽다. 결혼 적령기 여자들이 남자를 피하는 이유, 이런 드라마에 있지 않을까. 시어머니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나쁜 드라마, 나쁜 장면이다.

결혼이 무섭다 지수 ★★★★ 편견 강화 지수 ★★★ 엇 추워 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