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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민] “역사에 얽매이기 싫었다”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09-04-09

<그림자살인> 연출한 박대민 감독

<그림자살인>으로 충무로에 입성한 박대민 감독은 원래 건축을 전공하다 뒤늦게 영화과에 진출한 영화마니아였다. <키노>를 섭렵하고 벽에 포스터를 붙이며 시네키드로 성장하는 동안 그는 영화연출의 A to Z를 배웠다. 조곤조곤, 스탭과 배우와 대화를 많이 하기로 소문난 <그림자살인>의 현장. 그는 허투른 낭비없이 설계도대로 이 영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2004년 착상 이후 그를 연출자의 고민에 빠지게 한 <그림자살인>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지금, 그는 홀가분한 기분 한편으로 첫 영화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다. 소재가 독특한데 어떻게 구상했나. =구한말과 탐정의 컨셉은 김봉서 PD가 먼저 제안했다. 당시 연출부 스탭으로 생활했는데 김 PD가 함께 작품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구한말과 탐정이라는 요소만 있으면 뭘 해도 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탐정이 움직일 수 있는 사건은 죄다 뒤져보고, 참고가 될 만한 책도 모두 읽었다.

-영화 속 사건의 중심 장소인 ‘주사옥’이나 아동성매매에 관한 부분은 실화인가. =아편문제는 당시 사회적인 문제였다. 물론 아편을 하는 카페 같은 영화 속 공간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동성매매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커스단이 아닌 남사당패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원인 모를 화재로 없어진 ‘원각사’라는 국내 최초 상설극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어 영화의 서커스단을 만들었다. 이규택이 쓴 <개화백경>이나 쉽게 풀어쓴 당시의 역사서를 참고해 사건의 소재를 만들었다.

-사건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 영화의 색깔도 바뀌게 된다. 영화의 ‘서커스단’ 사건 말고 따로 염두에 두었던 사건들도 있었나. =많았다. 처음엔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사건으로 접근했다. 고종황제 독살사건같이 미스터리로 남은 큰 사건이나 조선의 ‘골드러시’라 할 광산왕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경우, 또 일본에서 발행한 화폐를 쓰면서 그 사실을 모르는 지방으로 가서 사기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생각했다. 탐정이 풀 수 있는 사건은 무궁무진하다.

-조선 최초의 탐정 컨셉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멋진 탐정과는 거리가 멀다. =진호는 털털한 캐릭터로 설정했다. 처음부터 너무 프로페셔널한 탐정의 면모를 갖추는 것보다 범인과 경찰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채 좌충우돌하는 느낌을 주고 싶더라. 황정민 선배는 그래서 시나리오 보자마자 “난 이 영화에서 연기 안 하고 놀 거다”라고 농담을 하더라. 이번 사건을 통해 좀 면밀함을 기를 순 있겠지만, 지금은 막 탐정을 알아가는 그 정도만 보여주는 선이다.

- 진호의 심경 변화가 미미한 편이다. 사건을 접하면서 심리적인 변화를 겪고 성숙해지는 그 시대의 일반적 캐릭터들과 달리 자신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한다. 진호의 일관된 심리 덕에 이 영화는 다른 시대극과 달리 시대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 초고에는 진호가 사건을 의뢰받고 소동을 겪으면서 좀더 원대해지는 설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인물이 너무 역사적인 무게에 눌려버리더라. 시대와 역사 때문에 극을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역사에 얽매이는 대신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일제 강점기는 원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닌 원치 않아도 이루어지는 변화다. 아이들을 물건처럼 팔 수밖에 없었던 악인 역시 사회구조에서 파생된 악인이었고, 그걸 응징하는 방법도 국가라는 거대한 틀로 발전하지 않고 사건 자체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15세 관람가다. 아동성매매라는 설정 등에 비추어보면 의아하다. 사건 전개에 다소 강한 묘사와 언급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음에도 두루뭉술 넘어가버린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의 선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게 하려다 보니 사건이 벌어질 부분에서 카메라가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시나리오에는 있었는데 촬영 과정에서 제한했던 장면도 있다. 나 역시 찍어놓고 보니 좀더 임팩트있는 장면이나 과감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을 넘어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신인감독으로서 만만치 않은 규모의 작품이었다. 연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컸겠다. =현장 대화에 많이 서툴렀다고 생각한다. 좀더 빠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스탭들이 활동하는 데 확신이 있었을 텐데 처음이다 보니 그런 과정에서 내 고민을 드러냈던 점이 아쉽다. 스탭들의 도움이 내가 놓치는 부분을 보충해줬고, 덕분에 <그림자살인>이 지금의 모양새를 갖춘 것 같다.

- 탐정 진호의 탄생이란 점에서 시리즈물의 프리퀄 같은 인상을 준다. 혹시 속편 계획도 있나. =물론 속편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건 이번 작품이 돼봐야 알 일이다. (웃음) 촬영하면서 배우, 스탭 모두 속편이 나오면 어떻게 하면 좋겠다면서 2편에 대한 계획도 세워놨다.

- 벌써 다음 작품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작품을 하기 전엔 고교 배경의 로맨틱코미디를 썼다. 그런데 지금 머릿속으로 준비하는 작품은 공포물이다. 기타노 다케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의 영화에는 잔잔한 듯 흐르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존재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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