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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귀환과 발견
2009-04-30

폴란드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돌아왔다. 스리랑카영화는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보고.

폴란드 거장의 강펀치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회고전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안나와의 하룻밤>(2008)은 어떤 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름 아니라 그 영화의 크레딧에는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란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르디두르카>(1991) 이후 17년의 긴 시간 동안 자기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그의 예전 영화들을 봐왔던 이들은 그것들이 남긴 짙은 잔상을 아직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는 그처럼 오랜만에 감독의 자리로 돌아온 폴란드의 거장을 아주 시기적절하게도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골랐다.

<페르디두르케>

스콜리모프스키라고 하면 크지슈토프 자누시와 함께 전후 폴란드영화의 부흥을 이끈 이른바 ‘폴란드 유파’(Polish School) 이후 세대로서 폴란드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젊은 스콜리모프스키가 일종의 영화 ‘신동’이었던 것은, 우츠 영화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안제이 바이다(<순결한 마법사>, 1960)와 로만 폴란스키(<물 속의 칼>, 1962) 같은 유명 감독들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학교 졸업작품인 <신원미상>(1965) 이후 자신의 영화들을 만들게 된 그는 무정부주의적인 블랙유머가 곁들인 당대 사회에 대한 관찰과 해석을 실험적인 스타일로 담아내 주목을 받았다.

<부전승>(1965), <장벽>(1966)에서 스콜리모프스키는 주로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통해 반항과 순응주의의 문제를 그렸고 이것은 <손들어!>(1967)로 이어진다고도 할 수 있는데, 후자 영화의 경우 반스탈린주의적인 태도였다. 스콜리모프스키는 자신의 영화를 결코 잘라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결국 <손들어!>는 80년대까지 개봉이 금지되고 만다. 이후로 그는 서구 세계에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로는 <딥 엔드>(1970)와 <문라이팅>(1982)을 들 수 있다.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양손으로 우리를 강타하며 우리를 따라오는 파이터와 같다고 스콜리모프스키와 그의 영화가 가진 매력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모두 10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스콜리모프스키 회고전’은 그가 우리에게 어떤 식의 강타를 날리는지를 경험케 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비극적 리얼리즘의 발견

스리랑카영화 특별전

그 영토가 눈물방울처럼 생겼다 하여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스리랑카는 식민 경험의 과거와 내전의 현재로 인해 그 모양처럼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다. 지난 5년간 쿠바, 마그렙, 구소련, 터키 등 비서구권 영화를 발굴·소개해온 전주영화제에서 올해는 실론의 섬나라, 스리랑카영화 특별전을 마련했다. 본 특별전에서는 내전으로 얼룩진 신산한 현대사 속에서도 독특한 영상 미학을 발전시켜온 스리랑카의 특별한 감독 5인의 12작품이 선별되었다.

<꿈 속의 미래>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이며 사회영화를 만들어온 스리랑카의 숨겨진 거장 달마세나 파티라자의 영화는 <머나먼 하늘>(1974), <폰마니>(1978), <질주>(1980) 등 6편이 소개되어 주목을 끈다. 그는 1974년 데뷔한 이래 기존 영화의 전통과 과감히 결별하고 모던한 영상, 급진적 감각,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한 관심을 선보여왔다.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그의 영화들은 과감한 앵글과 인상적 음영을 통해 매혹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영상 미학을 창조해왔다. 특히 초기작에서 선보인 ‘도시 청춘영화’의 나른한 낙관성과 폐쇄적 파괴성은 보편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실업문제와 결혼제도, 낙태와 신구 갈등 등 사회문제를 담았던 그의 영화는 대개 죽음이라는 비극적 파토스로 종결되지만 그 기저에는 지적이며 온정적인 휴머니즘이 깔려 있다.

스리랑카 내전의 현재를 미학적 영상 속에 담아낸 동시대 작가 프라시나 비타나게와 아소카 한다가마의 작품도 2편씩 소개된다. <팔월의 태양>(2003)과 <이것은 나의 달>(2000)은 스리랑카의 오랜 내전과 정치 갈등이 일상의 삶을 우울한 악몽으로 만들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오랜 무명의 스리랑카영화를 세계에 알린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의 <버려진 땅> 역시 먹먹한 현재를 탈색된 시적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오랜 근현대사의 비극은 스리랑카의 젊은 감독들에게 내전에서 카메라를 뗄 수 없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이들의 지배적 미학은 비극적 리얼리즘이 되었다. 동시대 스리랑카영화들은 종결되지 않는 우울한 질문을 던진다. 슬프고 아름다우며 고요하다.

송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