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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물 스타가 날리는 안녕처럼 보여도 사랑스러워
이화정 2010-06-29

3D로 마침표 찍는 <슈렉 포에버>로 본 시리즈 총정리

‘옛날 먼 옛날, 무시무시한 용이 사는 첨탑에는 마법에 걸린 공주가 살고 있었어요. 낮엔 어여쁜 공주, 밤엔 섬뜩한 괴물. 진정한 사랑의 키스만이 공주를 구할 수 있답니다. 괴물 슈렉은 용맹함을 떨치며 공주를 구해내고 사랑도 얻게 되지요. 행복한 결혼과 출산. 겁나먼 왕국에도 행복이 찾아왔답니다.’

이대로 책장을 덮는다면 <슈렉>일 리 없다. 2001년 <슈렉>이 탄생한 뒤, 근 10년 사이 <슈렉> 시리즈의 동화책 뒤집기는 벌써 세 차례나 반복됐다. 괴물에게 구출된 공주는 미녀가 아닌 내숭없는 추녀였고, 동화 속 내로라하는 공주들은 공주병에 걸린 얌체였으며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매번 위기에 봉착했다. 파이널을 표방하고 나선 <슈렉>의 네 번째 이야기 <슈렉 포에버>의 걸림돌은 자가당착에 빠진 괴물 슈렉이다. 사랑하는 피오나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어언 몇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들을 돌보고, 똥통까지 뚫어가며 가장 노릇에 전념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나의 괴성은 어디로?’ 하루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악마 럼펠과 거래를 하면서, 슈렉은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은 평행우주에 빠지는 악몽을 경험한다. 그곳은 제니스 조플린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피오나가 독재자 럼펠에 맞서는 저항군의 여전사가 되어 있는 ‘완전 딴판의 겁나먼 세상’이다.

더 저렴해진 유머와 입담으로 웃음꽃

저주에 빠진 건 결국 공주 피오나가 아닌 괴물 슈렉이다. 럼펠의 저주를 풀 유일한 해결책은 피오나와의 진정한 사랑의 키스. 존재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공주를 구출하지도 않았던 원점의 ‘과거’로 돌아간 슈렉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피오나와 안면을 트고, 무서운 용과 맞서 공주의 키스를 얻기 위한 모험을 반복해야 한다. 과거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피오나와의 미래도 없다는 점에서 <슈렉> 시리즈의 완결판인 <슈렉 포에버>는 속편인 동시에 일종의 프리퀄인 셈이다.

장화고 모자고 벗어던진 비만 ‘장화 신은 고양이’가 변화라면 변화랄까. <슈렉 포에버>는 지난 10년 세월쯤 가뿐히 빗겨간 듯 사뭇 익숙하다. 사람이 되게 해준다는 럼펠의 달콤한 제안에 대뜸 ‘개 수작은 개한테나 부려’하고 소리 지르는 ‘피노키오’의 욕설이 포문. 슈렉을 미친 괴물 취급하는 동키의 현란한 말과 노래 솜씨도, 제 몸 하나 부스러질까 법석 떠는 진저 브레드의 유난한 제스처도, 속시원하게 제 할 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오나 공주의 화끈한 성격도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더 저렴해진 싸구려 유머와 거칠어진 입담 덕에 단언컨대 전편에 비해 웃음은 확실히 배가 된다. 특히 이번 편에선 동화 속 인물들의 패러디가 아닌, 앞선 시리즈에 기반을 둔 조연 캐릭터들의 자기 패러디를 즐길 수 있는 파이널 시리즈만의 덤이 있다.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유머와 익숙한 팝 음악을 적절히 배치하는 센스, 시리즈 전편에 걸쳐 개근한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이르는 유명 배우들의 더빙까지 결코 낯설지 않은 <슈렉> 시리즈의 풍경이다.

노년의 시리즈가 3D로 회춘

파이널이 (자기 시리즈 중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면 그건 바로 트렌드에 발맞추어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는 정도다. 지난해 “드림웍스에서 제작되는 모든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겠다”는 CEO 제프리 카첸버그의 선언으로, 노년에 접어든 장수 시리즈까지 최첨단 기술의 수혜를 얻은 셈이다. 회춘을 도운 건 물론 <몬스터 VS 에이리언>과 <드래곤 길들이기> 등을 통해 섭렵한 드림웍스의 3D 기술력이다. 드림웍스의 첨언에 따르면, 입체적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인트루 3D’ 기술은 영화 속 피오나의 머릿결 연출에 적극 활용됐다. 확실히 머릿결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기술력에 한획을 그은 설리의 털(<몬스터 주식회사>)만큼 강력한지는 의문이다.

3D 기술력만을 놓고 볼 때, <슈렉 포에버>가 이 분야에 가져다줄 영향력은 거의 전무해 보인다. 그럼에도 스케일이 큰 액션장면들의 3D 표현력은 제법 주목할 만하다. 슈렉이 럼펠 궁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액션장면이 대표적이다. 날아다니는 마법 빗자루와 마녀들의 호박 폭탄이 투여되는 가운데 벌이는 아수라장 추격전은 익룡이 활보하는 <드래곤 길들이기>의 야외 추격전을 좁은 실내로 그대로 옮겨온 듯 활기차다. “관객을 겁먹게 하고 싶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높게 가되 클로즈업 때는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공포감을 조성하는 거다. 마치 관객의 면전에서 무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말이다.” 연출을 맡은 마이클 미첼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어드벤처와 공간감을 확보한 3D 연출력 덕에 적어도 이 장면만큼은 본전 생각 안 나게 제대로 완성됐다.

뭐라해도 지금의 드림윅스를 만든 건 슈렉

안타깝지만 몇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슈렉> 프랜차이즈에 대한 평가는 회의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실패하기에 <슈렉> 프랜차이즈는 이제 너무 거대해졌다”라며, <슈렉 포에버>를 ‘별것 아닌 담보를 내놓은 대출자’로 몰아붙였다. 전편의 성공에 안이하게 기대 재활용 스토리를 거듭 반복하는 드림웍스에 가해진 비난의 수위는 거셌다. 내년 개봉 준비 중인 스핀오프 <장화 신은 고양이>마저 덩달아 드림웍스의 철저한 상업성을 보여주는 예로 도마 위에 올라버렸다. 3D 편승 효과도 진부한 시리즈의 구원타가 돼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버라이어티>는 “<슈렉> 시리즈가 별 발전 없이도 이익을 내며 장수를 하건 말건 시간과 기술력이 이번 시리즈를 무시하고 지나친 건 확실하다”고 비꼬았다. 일반 티켓보다 비싼 3D 관람료를 두고, ‘티켓 비용을 올리려는 속셈’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연이어 속출했다. 수치는 비난을 입증했다. 첫주 주말 713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슈렉 포에버>의 박스오피스 1위는, 1억달러를 훌쩍 넘긴 전편의 정상등극과는 격이 달랐다. “기대치 자체가 낮았다. 마지막 편은 우리의 수익대차대조표로 따지지 않는 보너스 제작이다”라는 드림웍스쪽의 자기변명과 위안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편이 해피엔딩을 맛보지 않은 것만은 확연하다. 가장이 된 중년의 슈렉이 처한 위기를 설파하려던 <슈렉 포에버>는 결국 자신의 노회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나약한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극장이 더이상 <슈렉> 시리즈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9년을 장수하고 노회한 <슈렉> 시리즈에 내려진 지금의 철퇴는 사뭇 씁쓸하다. 지금은 ‘너무 오버한다’고 비난하는 <슈렉> 시리즈의 패러디와 익살은, 당시 전통의 디즈니식 착한 동화를 단숨에 완패시킨 성인 취향 애니메이션의 출발이었다. 픽사의 아성에 눌려 2인자에 머물렀던 드림웍스를 조명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 또한 <슈렉>이었다. <슈렉>이 있었기에 <마다가스카> 시리즈가 <쿵푸팬더>가 나왔고 드림웍스가 성장할 수 있었다.

수익은 적지만 위험부담 역시 적은 안전빵 <슈렉 포에버> 대신에 드림웍스가 올인하는 현재 구원타는 <드래곤 길들이기>다. 속편 제작에 착수한 <드래곤 길들이기>는 픽사의 따뜻한 감성에 전도라도 된 듯 말 많고 수다스러우며 자칫 사악하기까지 한 ‘슈렉’류의 캐릭터를 모두 버린 이 작품으로, 비평과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하긴 디즈니마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한 동화 패러디(<공주와 개구리>)와 2D라는 역발상으로 성공을 거둔, 지금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변화의 과정에 있다. 결국 <슈렉 포에버>는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지난 시대의 스타가 팬들을 향해 건네는 마지막 안녕이다. 유행에는 뒤처졌을지 몰라도, 10년 전 당당히 팝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던 수다스러운 캐릭터들을 다시 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관람에 앞서 당부를 하자면 이렇다. 그러니 예우 차원에서라도 ‘TV에서나 보면 모를까’라는 비난만은 자제해주길.

스토리는 픽사, 스케일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 비교분석

‘돈은 드림웍스가 가져갈지라도 1인자는 픽사다.’ 드림웍스로선 억울하겠으나 업계의 암묵적인 선입견은 이렇다. 애니메이션계의 젊은 주자 소니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으로 참신함을, 고전을 면치 못하던 디즈니가 <공주와 개구리>로 1990년대 고전 애니메이션의 향수를 부추겼지만 아직 위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업계를 평정할 스타는 역시 드림웍스와 픽사라는 양대산맥. 드림웍스는 <드래곤 길들이기>로 3D애니메이션을 선점했으며, 픽사는 장수 시리즈 <토이 스토리3>가 ‘노스탤지어와 테크놀로지의 완벽한 결합’이라며 상찬을 받은 상태다. 두 제작사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한정된 공간에서 디테일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픽사에 비해 드림웍스는 일단 배포는 큰 편. 픽사의 <토이 스토리>는 작은 방이 무대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몇천 마리 용이 하늘을 나는 건 기본. 공간이나 스토리, 스케일 모두 커야 직성이 풀리는 게 드림웍스의 방식이다. 관객이 울고 웃고 사랑이 충만하게 하는 감상적인 측면에선 픽사가 월등히 앞선다. 관객이 픽사의 <업>을 보고 심리적 충만함을 느끼는 동안, 드림웍스는 <몬스터 VS 에이리언>처럼 캐릭터의 몸집을 집채만 하게 늘리며 관객을 짜릿한 모험으로 안내한다. 이를테면 픽사가 당신을 다른 장소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는데 비해 드림웍스는 관객을 로켓 발사기에 태우는 식. 한편 <슈렉>에서부터 과감하게 전개된 고전 비틀기가 드림웍스의 전유물로 인식돼서인지, 픽사는 동화의 원형을 건드리는 데는 인색한 편이다. 덕분에 픽사가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고 잘 정제된 캐릭터들을 만들어 퀄리티를 보장한다면 드림웍스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을 불쑥불쑥 제멋대로 생산하며 재미를 주는 식이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Hiccup’(딸꾹질)같이 막 지은 캐릭터 이름은 픽사엔 어림없는, 드림웍스에나 용납될 성질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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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신두영 디자인 한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