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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 어린 과부들, 옷고름을 풀다
김용언 사진 최성열 2010-07-29

<이화에 월백하고>(가제)의 방은진 감독

“조선시대 소녀 버전 <섹스 앤 더 시티> 혹은 <미녀 삼총사>.” 방은진 감독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 말부터 꺼냈다. 아주 새끈한 로맨틱코미디라고. 그런 영화들이 있다. 가장 첫 번째 전제만 들어도 호기심이 확 동하는 영화. <이화에 월백하고>(가제, KM컬처와 진인사필름 공동제작)가 그런 경우다. 이른바 할리우드에서 말하는 ‘하이 컨셉 무비’인 셈이다. 이건 조선시대 소녀 과부들의 좌충우돌 로맨스다.

혼례 당일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신랑이 죽어버린다. 어린 이화는 오갈 데 없이, 옷고름도 못 풀어보고 청상과부가 되어버렸다. 시댁에선 가문의 누가 되게 하지 않으려 이화를 과부들의 모임인 ‘석란회’에 보낸다. 음전한 도를 익히고 유교적 가치를 체득하며 타의 모범이 되라는 의도였으나…. 이 석란회를 구성하는 멤버들의 면면이 충격적이다. 누군가는 방중술에 심취해 있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맘에도 없는 결혼을 억지로 했으며, 또 누군가는 소심한 남편이 대과에 붙지 못하자 자살해버렸고…. 그리고 이화는 월백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어린 과부들은 그렇게 금기로 가득한 조선사회 한복판에서 미팅도 하고 연애도 하며 성장한다.

최근 한국영화계와 드라마쪽에서 활황을 맞이한 사극 장르는 기본적으로 무거웠다. 방은진 감독은 그것을 “금기에 도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파멸”이라고 정리하며, 하지만 <이화에 월백하고>에선 다른 방식의 비틀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기존 사극에선 어떤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당대의 가치를 거슬러야 하고 금기를 깨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관객 입장일 때 나는 무거운 피칠갑으로 도배되는 후반부터 그다지 보고 싶지가 않더라. <이화에 월백하고>는 그렇게 가기 싫었다. 파도가 밀려오는데 저기 보이는 섬까지 가려고 아무리 몸에 힘줘봤자 원위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서핑 보드를 띄우고 바람도 불게 해서 가볍게 빨리 가보자는 거다.” 처음 읽었던 <이화에 월백하고> 초고도 좀 무거웠다고 했다. 연애가 들통나서 자결을 종용받고, 가문을 위해 희생받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방은진 감독은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붙들고 앉아 ‘옆길로 슬쩍 새는’ 로맨틱코미디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나갔다.

한옥에서 얻은 자유와 일탈의 아이디어

방은진 감독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잘 먹고 잘 사는 사극’ 아이디어를 한옥에서 얻었다고 했다. 기묘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석재 교수의 한옥 강의를 들으면서 어떻게 꽉 짜인 규율 속에 어떻게 군데군데 틈을 내고 호흡을 고르며 자유와 일탈을 꿈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는가를 배웠다고 하자 납득이 간다. 그 옛날 한옥을 만들면서 각 채를 분리하고, 마당을 틔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금기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제어되진 않았을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본능은 타고난 것이고, 그렇다면 꼭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파장을 일으키지 않아도 슬쩍 옆길로 새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길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감히 담장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녀들이라도 그 안에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저희끼리 속닥거리고 뭔가 꾸미지 않았을까.”

20대 초·중반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게 될 <이화에 월백하고>는 막 시나리오가 탈고된 상태기 때문에 아직 수위 조절에 대해서는 기준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방은진 감독은 처음에 15세 관람가를 생각했지만, ‘소녀 과부의 로맨스’라는 특별한 설정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성적인 코드에 아주 무관심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고민 중이라고 했다. “수위가 조금 올라간다 하더라도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밝고 건강하고 예쁘게, 어떻게 이 아이들이 이럴 수가 있었을까를 더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추워지기 전에 얼른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녀의 조바심은 소녀 과부들의 달뜬 설렘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이미지

“만발한 꽃에 나비가 날아드는 화접도 병풍, 문양이 아름다운 대문, 찬란하게 흐드러진 메밀꽃 위로 보이는 보름달, 조선시대 사진집에 등장하는 단아하고 무표정한 여인들. 아무 장식 없이 하얗고 순수한 옷을 입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 여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들이 웃으면 어떤 표정일까, 어떻게 웃었을까’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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