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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소설가’의 성장
이다혜 2010-08-12

<상실의 시대>부터 <1Q84>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아주 오래전에 무라카미 류씨를 만났는데, “이봐요 하루키씨, 한번 정도는 밀리언셀러 같을 것을 써놓는 게 좋을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연해서 ‘태평한 말을 하는 사람이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밀리언셀러의 작가가 되고 보니 그가 말한 대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지쳐버렸지만요. -무라카미 하루키

2010년 7월28일. 트위터 최고의 화두는 재보궐선거와 <1Q84> 3권 출간이었다. 서점에서 <1Q84> 3권을 구입한 사람들은 인증숏을 올리며 책 구입 사실을 알렸다. 그럴만도 하다. <1Q84> 1, 2권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총 115만 부가 팔려나갔고, <1Q84> 3권은 예약판매가 시작된 직후 모든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1Q84> 1, 2권이 출간 12일만에 100만권이 판매되는 기록적인 성적을 기록하던 중인 8월5일, <상실의 시대>(원제를 따른 <노르웨이의 숲>라는 제목의 한국 번역본도 있다) 상·하권의 누적 판매부수가 1천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1Q84>에 등장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도 히트상품이 되었다. <신포니에타>를 수록한 미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바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앨범은 일본에서 1990년에 발매되어 <1Q84> 이전까지 6천장이 팔렸는데, 책 출간 이후 3주간 그 배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작가 후루카와 히데오의 대담이 실린 문예계간지 <몽키비즈니스>는 평소의 3배에 달하는 3쇄 2만부를 팔았다. 트란 안 훙 감독이 영화화하는 <상실의 시대>는 지난해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로 꼽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1Q84> 출간 즈음 하루키 붐의 힘과 성격이 90년대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상실의 시대를 끌어안다

한국에서 하루키 붐의 시작은 1989년 하루키 유일의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실의 시대>가 출간되면서부터였다. 6·10 항쟁이후 한국사회는 올림픽, 신도시 건설, 문익환 목사 방북으로 인한 공안정국이라는 뜻밖의 전개를 맞게 되었다. 이는 <상실의 시대>가 다루고 있던 60년대 전공투 투쟁의 갑작스러운 종결(1972년 2월19일 연합적군 사카구치 히로시 등 5명이 총격전을 벌이다 28일 모두 체포된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인한) 이후 일본의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던 상실감과 그로 인한 개인주의의 본격적인 태동과 맞닿아 있었다. 일본의 단카이세대(전후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세대로 하루키 역시 단카이세대)를 대변하는 작가로 하루키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중국 도회지에 사는 부유한 젊은이들 사이에 하루키 작품을 읽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왕가위의 영화는 90년대 한국사회에 그 어떤 ‘이즘’보다 강렬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표절 논란이 이어졌다. 1992년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작),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오늘의 문학상)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한국 문단의 목에 걸린 가시’ <한겨레21> 제772호) 한편 김의석 감독의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을 비롯해 많은 CF가 ‘왕가위 짝퉁’ 논란에 휩싸였다. 하루키의 소설은 비평적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후보가 된 81회 아쿠타가와상 심사에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다키이 고사쿠는 “번역소설을 많이 읽고 쓴 듯한 겉멋 든 버터 냄새 나는 작품”이라고 하루키의 문학을 비판한 것을 비롯해 의식은 없고 스타일만 남았다거나, 자폐적이라거나 하는 평이 뒤따랐다. 일본의 인터넷상에 ‘하루키풍으로 말하는 댓글 생성기’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스타일이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지만. 한편 하루키 자신은 갑작스럽게 350만부가 팔린 소설의 작가가 된 데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신문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느 서점에서나 <상실의 시대>가 1위였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고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일종의 안타까움을 벗을 수 없었다. 어디를 가도 내가 있을 곳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실의 시대>는 그의 소설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속편을 쓸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태도는 강경하다. “쓰기를 마쳤을 때 리얼리즘 이야기는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은 두번 다시 쓰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가 정말 쓰고 싶은 타입의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략) 본래 나의 스타일이 아닌 소설이 저렇게까지 팔린다는 것은 꽤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하루키의 스타일은 비단 문체나 문학에 국한되지 않았다. 하루키가 에세이를 통해 보여준 라이프스타일도 하루키 팬덤을 키우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 몸의 근육을 다지는 동시에 번역, 에세이, 단편과 장편소설을 집요할 정도로 쉬지 않고 써내려감으로서 소설가로서의 근육을 종합적으로 키워나갔다(이에 대해서는 이 글 뒤에 이어지는 에세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즈음 하루키의 소설은 번역가이자 교수인 제이 루빈의 번역으로 영미권에도 소개되었는데, 그쪽의 평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중국행 슬로 보트>를 포함한 하루키 대표 단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코끼리의 소멸(The Elephant Vanishes)>는 1993년 영역판이 출간되었는데 미국의 아이콘과 브랜드명이 없이는 소설이 안되느냐는 비판과 함께 “독자가 동양의 지혜를 구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작가는 당신에게 빅맥 버거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 1997년 <태엽 감는 새>에 대해 미치코 가쿠타니는 “우리 대부분에게 예술이란 현실의 혼란을 단순히 반영하는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불행히도, <태엽 감는 새>는 종종 워낙 엉망이라 끝맺음을 거부하는 것은 예술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게으름의 산물인 듯 느껴진다”라고 썼다. 2000년에는 독일의 한 TV문학 리뷰 프로그램 <문학 사중주>에서 하루키의 글쓰기에 대한 의견 대립이 격화된 나머지 패널 중 한 사람이 12년간 몸담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이런 비평을 돌이켜보면,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하루키와 하루키를 둘러싼 신드롬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비평이 고스란히, 현재 하루키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하루키와 예루살렘상

<상실의 시대> <태엽 감는 새> <댄스 댄스 댄스> <해변의 카프카>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대다수가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40여 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루키는 직접 번역판 출간에 힘을 기울였다. “나는 뉴욕으로 가서 직접 에이전트를 구하고 출판업자를 구하고 편집자를 구했다. 어떤 일본 소설가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능력을 해외에서 시험하고 싶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로 만족하는 대신에.” <해변의 카프카>는 번역서로는 사상 두 번째로 2005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10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노벨문학상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이야기되는 프란츠 카프카상(2006)과 예루살렘상(2009)을 받기도 했다. 영국 <타임스>는 2008년 <어둠의 저편>이 출간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판매되었을 때 쓴 기획기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마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성공했고 영향력있는 컬트 작가일 것이다”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그의 책을 영어권에 소개해온 번역가이자 교수인 제이 루빈은 “무라카미의 책을 읽는 일은 당신의 뇌를 바꾸는 일이다. 그의 시선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 데이비드 미첼 같은 소설가, 플레이밍 립스 같은 뮤지션에 영감을 주었다”라고 평했다. 2006년도에 <뉴욕타임스>는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서 도난 추세가 증가 일로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는 일본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사소설의 전통보다는 미국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은 시간이 가면서 그의 소설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데 호재로 작용했다. 한국에서는 하루키 붐을 타고 레이먼드 카버나 트루먼 카포티, 스코트 피츠제럴드 같은, 그가 좋아한 소설가에게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미국이나 유럽 독자에게는 비틀스와 비치보이스, 바흐, 빌리 홀리데이,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음악이나 미국영화에 대한 언급은 타문화권 이야기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열쇠가 되었다. <상실의 시대> 이후 그는 다시 리얼리즘 소설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독자에게 인식시키기 시작했다.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 62명을 만나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를 위한 1년간의 취재가 환상성과 현실성을 하루키 스타일로 완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상실의 시대>를 제외한 내 소설들이, 소위 리얼리즘 소설은 아니지만, 새로운 리얼리즘으로서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9·11 이후로는 특히. 그와 동시에 나는 발자크처럼 세속 자체를 그린 소설을 좋아해서, 한 시대의 세상 전체가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나름대로의 ‘종합소설’을 쓰고 싶었다.”(<요미우리 신문>, 2009년 6월18~20일) 그 고민의 결과물이 <1Q84>다.

하지만 <1Q84> 출간 전 하루키는 소설 밖 현실 탓에 고민에 빠졌다. 하루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낳던 시기, 예루살렘상 수상을 수락했다. 수상을 거부하라는 충고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수상연설에서 “만일 높고 단단한 벽과 그에 부딪히는 달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이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연설에 대해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진정 하루키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모호함”이라고 비꼬았으며, 아랍 일간지 <알 하야트>는 “헤브라이어는 노벨 클럽에 입회하기 위한 비자와 같은 것이며, 노벨문학상 후보이기도 한 작가는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가는 길 위에 이스라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라며 통렬히 비판했다. 이스라엘로서는 당시와 같은 타이밍에 서구 작가를 초청하면 사퇴해서 창피를 당하거나, 수상연설에서 호되게 비판을 받을 것이 뻔했다. 결국 그들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비정치적 경제 대국의, 그것도 거품경제기에 인기 절정이었던 작가를 선정한 것이다. 그 기획은 훌륭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다케우치 신 ‘무라카미 하루키를 둘러싼 피곤한 모험’). 하지만 그 뒤에는 하루키의 소신이 있었다. “연설에서 나는 이스라엘이 나쁘다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나의 비판적 견해는 전해질 수 있도록 신경썼지만 콕 집어서 비난하는 말은 피했다. 거기에 대해 무르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에게는 소설가의 말과 문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총론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다. 개인이라고 하는 존재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된다고 하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이제부터의 하루키를 기대한다

하루키 외적인 여러 소동이 있었지만 지금의 그와 그의 팬덤을 있게 한 것은 진행형 작가로서 하루키와 그의 소설이다. “작가의 역할이란, 원리주의나 어떤 종류의 신화성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남는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형식에 따라, 장조와 단조,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교대로 쓰자고 정했다.” <1Q84>는 하루키의 말대로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지며, 전공투의 끝에서 파생한 현실의 흐름과 하루키적 환상성을 한데 아우른 작품으로 쓰여졌다. <1Q84>가 ‘무라카미 하루키 종합선물세트’같은 인상을 준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1, 2권이 동시에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키는 3권을 쓸 계획을 발표했고, 그 3권은 2010년 4월16일 새벽 0시부터 전국 서점에서 동시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1, 2권은 모두 244만부가 나갔다. 3권의 초판은 일본에서 60만부를 인쇄했다. 한국에서 3권 발매와 동시에 하루키 붐도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1Q84>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권을 다 읽은 뒤 2권을 다 읽은 다음에 느꼈던 것 같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 2010년 여름호에 실린 장장 3일에 걸친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4권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3년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쉬지 않고 <1Q84>를 써온 데 대한 피로감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면 중인 곰처럼 그 시기(다시 쓰게 될 시기)가 오기를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Q84>의 4권이라거나 0권이라거나 하는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내 안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수태되어 있다. 즉 속편을 쓸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덴고의 어머니는 누구에게, 왜, 어떻게 살해당했는가. 임신한 아오마메는 새로운 세계에서 아이를 낳을까. 태어난 아이는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 환갑을 넘겼다. 그가 좋아한다고 몇번이고 말했던 스콧 피츠제럴드보다, 헤밍웨이보다, 레이먼드 카버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그만큼의 이야기가 더 생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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