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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추천작] ①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 <해일 앞에서> <부엌의 전사들> <레이디월드> <빌리와 엠마>
이주현 2019-08-22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 God Exists, Her Name Is Petrunya

테오나 스트루가르 미테브스카 / 마케도니아, 벨기에, 슬로베니아, 프랑스, 크로아티아 / 2018년 / 101분 / 개막작

페트루냐는 마케도니아의 작은 마을에 산다. 변변한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마을에선 매년 1월이면 강물에 십자가를 던지는 종교의식이 행해지는데, 성직자가 번영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나무 십자가를 강물에 던지면 남자들 수백명이 십자가를 쟁취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다. 마침 그길을 지나던 페트루냐는 물속에 뛰어들어 십자가를 손에 넣는다.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종교행사에 여자가 참여해 가장 먼저 십자가를 손에 넣었으니 남자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무효라 주장한다. 페트루냐는 경찰 조사까지 받지만 십자가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이건 내 거야!”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다. 여성을 배제해온 종교, 차별이 만연한 가부장 사회에 대항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끌고 가는 페트루냐의 모습이 시종 흥미롭다. 침체돼 보이는 마을 공동체를 원경으로 조망한 화면과 감정으로 들끓는 페트루냐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낸 화면의 대비는 삐져나온 송곳 같은 페트루냐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든다. 마케도니아의 여성감독 테오나 스트루가르 미테브스카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이다.

<해일 앞에서> The Fearless and Vulnerable

전성연 / 한국 / 2019년 / 85분 / 한국장편경쟁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됐다. 대한민국에 “페미니즘의 해일”을 몰고 온 충격적 사건이었다. 같은 해 6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인 페미당당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이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페미존’을 꾸려 행진하며 “민주주의와 여성혐오는 함께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고,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의 여성 관련 공약을 검증했고, 낙태죄 폐지에 힘을 보태는 거리 이벤트와 행동을 이어갔다. <해일 앞에서>는 페미당당의 지난 활동과 활동 과정에서 페미당당 구성원들이 느낀 고민을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누구는 엘리트주의적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을, 누구는 이성애 중심의 세상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다수는 친목의 공동체 이상의, 지속 가능하며 유의미한 공동체로 존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페미당당의 미래를 고민한다. 20대 페미니스트 집단으로서 페미당당이 보여준 놀라운 에너지와 그 에너지가 발현되기까지 이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눈물 흘렸던 시간을 비추는 작품이며,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을 휩쓴 페미니즘의 ‘해일’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부엌의 전사들> The Heat: A Kitchen (R)evolution

마야 갈루스 / 캐나다 / 2018년 / 72분 / 쟁점들: ‘룸’의 성정치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프랑스의 안 소피 픽, 뉴욕의 아시아 퓨전요리의 대가 아니타 로, 뉴욕의 유명 베지테리언 식당의 셰프 아만다 코헨 등 <부엌의 전사들>에 등장하는 7명의 여성 셰프는 남성 셰프들이 점령해온 식당에 변화를 몰고 온 이들이다. 여자들은 항상 요리를 해왔지만 유명 식당의 키친을 진두지휘해온 건 대부분 남자였다. 칼과 불을 쓰는 주방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만연하고, 셰프는 작전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처럼 행동한다. <부엌의 전사들>에 등장하는 여성 셰프들은 주방의 수직적 문화에 문제제기를 한다. 다시 말해 영화가 주목하는 건 안소피 픽, 아니타 로와 같은 유명 여성 셰프들의 성공신화가 아니라 이들이 남성 중심적 키친 문화를 어떻게 바꿔가고 있고 이것이 젊은 셰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이다. 일류 셰프들의 요리와 비밀스런 공간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러온다.

<레이디월드> Ladyworld

아만다 크레이머 / 미국 / 2018년 / 94분 / 국제장편경쟁

생일 파티 중이던 8명의 10대 소녀들이 지진으로 집 안에 갇힌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모두 막혔다. 생존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오히려 이들은 편집증적으로 변해간다. 아니 미쳐간다. <레이디월드>는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인 <파리대왕>의 소녀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 안에 고립된 소녀들은 광기가 이성을 잠식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불안과 공포가 우정과 믿음을 시험하는 단계를 경험한다. 영화엔 오로지 8명의 소녀만 등장한다. 하이패션의 화보같은 구도로 서 있는 소녀들의 이미지와 고음의 새된 소리 등을 섞어 만든 불길한 분위기의 사운드는 <레이디월드>를 잔인한 이미지 없이도 잔인한 호러영화처럼 보이게 만든다. 미국의 주목받는 여성감독 아만다 크레이머의 작품이며 마야 호크, 애너리즈 바소, 아리엘라 바러 등 라이징 스타를 만나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빌리와 엠마> Billie & Emma

사만다 리 / 필리핀 / 2018년 / 107분 / 퀴어 레인보우

필리핀에서 만들어진 풋풋한 10대 퀴어영화다. 마닐라에서 시골로 전학 온 빌리. 짧은 머리에 투박한 워커를 신은 빌리는 가톨릭 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 이모의 집에 머물게 된다. 전학 첫날부터 학교의 모범생 엠마와 빌리는 이런저런 일로 엮이고,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한 뒤부터는 비밀스럽게 쪽지를 주고 받으며 연애를 이어간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던 엠마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아이들은 또 다른 장애물에 맞닥뜨린다. 10대의 동성연애와 임신을 다루지만 영화는 밝은 기운을 잃지 않는다. 무게잡지 않고 훈계하지 않으며, 아름답게 빌리와 엠마의 앞날을 응원한다. 참고로 친구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빌리가 의지하듯 읽는 책은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레즈비언 작가인 리타 메이 브라운의 <루비프루트 정글>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퀴어 문학의 고전 <루비프루트 정글>을 빌리의 손에 쥐어준 사만다 리 감독의 따뜻한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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