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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처음 꽃향기를 만난 순간’, 구태여 돌담을 세워도 범람하는 강물처럼
이자연 2023-01-04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이후, 레즈비언 결혼식이 거행되던 한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밍(임진희)과 팅팅(정여희)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동승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만남은 학창 시절을 상기시키고, 오랫동안 묻어둔 기억을 끄집어낸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고등학교 시절, 이밍은 배구 선수로 활약하며 많은 관중의 환호를 받는다. 활기찬 이밍을 보고 한눈에 반한 팅팅은 함께 배구부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힘겨운 연습이 끝난 뒤 하교를 같이하며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미묘한 감정선에 진입하게 된다. 서로의 간격이 완전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모순적이게도 둘은 가장 멀어진다. 자신의 열망과 감정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10대의 선택이었다.

청소년기의 서툴고 풋풋한 첫사랑을 회자하는 공식을 따른 <처음 꽃향기를 만난 순간>은 한때 가장 의지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 일상의 균열을 그린다. 무심한 남편에게 싫증과 답답함을 느끼던 이밍에게 늦봄의 소낙비같이 예상치 못한 팅팅의 등장은 고등학교 시절 이미 통과해온 혼란기로 다시 돌아가는 도돌이표와 같다. 시소 놀이처럼 두 주인공에게 번갈아 찾아오는 널뛰는 감정은 영화의 기압을 서서히 증폭시키고, 오랫동안 방치해온 각자의 마음을 직면하도록 만든다. 6부작 미니시리즈의 흥행과 인기에 힘입어 나온 극장판으로 생략돼버린 이야기의 공백이 아쉽지만 임진희와 정여희 두 배우의 호연과 아름다운 영상미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원작 미니시리즈가 2022년 대만 최고 영예의 금종상 시상식에서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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