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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럽 제로', 웃을 수도 화낼 수도 없는 무기력한 부조리극
김예솔비 2024-01-24

미스 노백(미아 바시코프스카)은 엘리트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다. 환경과 건강을 염려하는 아이들에게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라는 느린 식사법을 제안한다. 눈앞의 음식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먹으면 먹는 속도가 줄고 자연스레 먹는 양도 줄게 된다. 음식을 적게 소비하면 환경을 지킬 수 있고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마음의 평화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부드럽게 헤아려주는 노백의 관심에 학생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고, 결국 믿음을 향해 완전히 잠기게 된다. 의식적 식사를 성공적으로 터득한 학생들은 노백의 지도에 따라 다음 단계로 향하며,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모노 다이어트를 거쳐 아예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금식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전한다. 이것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 이미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아이들은 다음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노백은 아이들에게 세상 어딘가에 먹지 않고 지내며 비밀스럽게 편견에 맞서고 있는 ‘클럽 제로’라는 집단이 있다고 말한다. 먹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상식은 의지력만으로 바꿀 수 있는 연약한 사실일 뿐이다. 클럽 제로의 일원이 되기 위해 수행을 굽히지 않는 아이들의 몸은 은근한 보디 호러의 현장으로 변한다.

<클럽 제로>는 독특한 식이요법을 중심으로 한 서사의 줄기를 충실히 따라간다. 이 영화는 고집스럽게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영화는 학생과 선생 사이의 유대가 깊어지는 과정과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식이요법을 실천하면서 가정의 식탁에 부조화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이 모든 것을 CCTV처럼 한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건조한 문법을 택한다. 천천히 줌인하고 빠져나오는 특유의 느린 화면의 운동과 정적인 인물들은 분명 이 영화만의 독특한 리듬을 자아내지만, 단선적인 서사와 더불어 영화의 활력이 지나치게 희미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컬트 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게 영화는 상식을 넘어선 믿음이 초래하는 부조리한 풍경을 제시하며, 아이들의 식이장애에 거칠거나 무력하게 반응하는 상류층 부모들의 태도는 아이들이 노백을 따르게 된 심리를 암시하는 동시에 씁쓸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백의 가르침을 따르는 벤의 이야기는 다른 가족의 사정과 대비돼 모순을 자아내는 서사의 변칙적 요소다. 그러나 영화는 대체로 믿음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복잡한 웃음이라는 긴장을 통해 부조리극의 효과를 발휘하는 대신 독특한 소재를 중심으로 단순화된 컬트에 머무는 것 같다. <스토커>와 <맵 투 더 스타>의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주연을 맡았다.

“음식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워요. 사회적, 상업적인 압박에서요. 우린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어요.”

부모가 가져온 식사를 거부하며 금식의 효과를 설명하는 엘사의 말. 결국 아이의 그릇된 믿음을 제대로 반박하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상류층 부모의 무력함은 명백히 풍자의 대상이다.

CHECK POINT

<송곳니>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2009

<클럽 제로>에 선생 노백이 있다면, <송곳니>에는 자녀들을 폐쇄적인 가정에 가둔 채 거짓된 질서를 만드는 아버지가 있다.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주체성을 묻는다는 점, 어른이 교육을 수단으로 아이를 향해 더이상 이성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 뒤집힌 세계의 믿음을 주입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았다. 다만 <송곳니>가 주어진 질서 바깥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여정이라면, <클럽 제로>는 아이들이 스스로 믿음 안쪽에 빠져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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