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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벙커 게임’, 매력도 윤리도 없는 난이도 최하의 방탈출 게임
최현수 2024-03-06

2차대전에서 나치가 승리하고 10년 뒤 미국은 핵전쟁을 시도한다. 독일은 소수의 생존자를 소라테 벙커에 남겨 제4의 제국을 건립한다. 물론 이 설정은 평행세계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캐릭터를 직접 연기하는 롤플레잉 게임 LARP의 일부다. 끝을 향하던 게임은 정전으로 인해 중단되고 스탭들은 참가자들을 돌려보낸 뒤 벙커 안으로 복귀한다. 로라(가이아 와이스)는 알 수 없는 여자의 환영을 목격하며 두려움에 떠는 가운데, 게임의 설계자였던 그레고리(로렌초 리켈미)는 홀연히 사라지고 출구는 봉쇄된다. <벙커 게임>은 ‘만약 나치가 전쟁에 승리하고 핵전쟁이 일어난다면?’이란 도발적인 질문으로 포문을 연다. 동시에 영화는 논쟁을 피해 허구와 현실의 양면성을 지닌 롤플레잉 게임이란 소재를 차용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설정과 도발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벙커 게임>의 사회학 실험은 완벽한 실패로 끝이 난다. 지체장애, 인종, 여성, 젠더 등 약자성을 부여한 캐릭터를 밀실에 가두고 공허한 살육만을 자행하는 사이 민감한 역사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한다. 안이한 장르의 클리셰만 쫓아다닌 요란한 ‘방탈출 게임’은 역사의 질문을 비겁하게 회피하며 무력하게 막을 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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