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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워터 보이즈
2002-08-13

■ Story

유일한 수영부원 스즈키의 성적 부진에다 인원 부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수영부에 미모의 여교사 사쿠마가 부임해온다. 수영부는 지원자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사쿠마 선생의 주력 종목이 수중발레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가 줄행랑을 친다. 스즈키를 비롯, 농구부에서 쫓겨난 사토, 깡마른 몸매가 불만인 오타, 물에 뜨지도 못하는 공부벌레 가나자와, 좋아하는 누군가를 따라온 사오토메만이 ‘얼떨결에’ 남는다.

이들은 멍청이 군단이라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뭔가 보여주고자 하지만, 사쿠마가 출산 휴가를 받아 떠나고, 학교 풀장 사용 금지령까지 떨어지면서, 훈련에 차질을 빚는다. 돌고래 조련사를 찾아가 한수 가르침을 구하면서 여름방학은 지나고, 드디어 축제가 다가온다.

■ Review

남자 고등학생들이 수중발레에 도전한다. 불가능에의 도전? 자기 자신과의 싸움? 젊은 패기 또는 치기? 천만에 말씀이다. 이 아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여자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단순명쾌하다. 미모의 여교사가 수영부 코치를 맡지 않았더라면, 이웃한 여학교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수중발레에 도전하는 수고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워터 보이즈>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혈기방장한 10대들의 성 호르몬이다. 성공기에 어울릴 만한 동기는 아니지만, 하찮은 인물들이 기이한 동기로 일탈을 시도한다는 설정이야말로 야구치 시노부표 코미디의 핵심인 것이다.

야구치 시노부의 캐릭터들은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잘해보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한심하고 가련하고, 그래서 정겨운 청춘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어떤 근성을 지니고 있어서, 한순간 딸깍 뚜껑이 열리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든다는 것이다. 삶의 낙이라곤 없어 보이던 <비밀의 화원>의 여주인공은 돈가방을 손에 넣기 위해 지질학 공부부터 수영, 암벽 등반까지 마스터하고, 소심하고 무기력한 <아드레날린 드라이브>의 주인공 커플 역시 돈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야쿠자에 맞서는 등 대담한 행각을 보인다.

<워터 보이즈>의 아이들은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우유부단하고, 조금 더 오래 방황한다. 수중발레를 꼭 해야 하는지 별 확신없이 우왕좌왕하다가,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들에 떠밀려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동안 열심히 한 건 이것뿐”이라거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깨달음은 늦게 찾아오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진짜 해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워터 보이즈>는 요절복통할 코미디이면서도, 단순히 ‘웃기는 영화’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 비범함을 빛내는, 그리하여 마음의 키가 자라는 순간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으랏차차 스모부>와 <쉘 위 댄스>를 닮았지만, <워터 보이즈>의 정서는 그보다 어린 세대를 공략하며, 무엇보다 ‘관객 웃기기’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보통 코미디는 웃기는 장면이 나온 뒤 한참 쉬었다가 다시 웃기지만, 이 영화는 관객이 쉬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는 감독의 변 그대로다. 인물은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고, 이야기는 논리적으로나 구체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수족관 닦으며 팔힘을 기르고, DDR 하면서 리듬감을 키우고, 물고기들의 생태를 연구한 덕에, 수중발레를 할 수 있게 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비약과 과장에, 기발하고 뻔뻔스런 상상력에 웃지 않을 수 없다.

♣ <쉘 위 댄스>의 다케나카 나오토가 아이들에게 수중발레의 기본기를 훈련시킨다.♣ 아이들의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건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여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소박한 목표다♣ 오합지졸에 우유부단하고, 수중발레를 왜 해야 하는지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던 아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한 가지 목표에 전력을 다하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리스트의 수중발레쇼는 그래서 유쾌하고도 가슴 찡하다.

시커먼 남자애들이 남사스럽게도 수중발레를 선보인다는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14년째 축제 프로그램으로 남성 수중발레를 선보여왔다는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워터 보이즈>의 제작진도 극중 수중발레쇼를 ‘시늉’이 아닌 ‘실연’으로 펼쳐 보였다. 수영 실력과 각선미 등을 기준으로 선발한 28명의 ‘워터 보이즈’들은 한달간 시골 수영장에 갇혀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결과, 라스트의 수중발레쇼에 직접 출연할 수 있게 됐다고. 그 수중발레쇼가 ‘진짜’라는 사실은 <워터 보이즈>를 더욱 감동스럽게 만든다. 여성 관객에게 바치는, 이 유쾌하고 시원하고 짜릿한 스펙터클(!)은 <워터 보이즈>의 주요한 미덕이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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