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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자반고등어 / 호모파베르
2002-11-06

→ 자반고등어

■ Story

명훈은 농아인 동생과 함께 수산시장 고등어 도매상에서 점원으로 일을 한다.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명훈은 최선을 다해보지만, 사장은 가불을 해주지 않고,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사채업자에게는 냉대를 당할 뿐이다. 결국 명훈이 돈을 구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사채업자의 사무실을 무작정 쳐들어가는 것이다.

■ Review

형, 명훈은 이미 삶의 희망에 대해 한풀 접은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고 돈을 구해야만 할 뿐이다. 그는 이미 절반은 죽어 있는 사람이다. 오히려 <자반고등어>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귀가 들리지 않으면서도 드러머를 꿈꾸는 동생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작을 여는 명훈의 보이스 오버는 이미 후반부의 절망감(결국 명훈은 깡패들에게 몰매를 맞아 어머니의 병실에 나란히 눕게 된다)을 내재하고 있는 선 진술인 셈이다. ‘명훈의 목소리로 영화는 시작하지만, 듣지 못하는 동생의 시선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렇다면, 반대로 희망은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머니는 나을 수 있을까 이제 어머니 옆에 형이 누워 있으니 병원비는 두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장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명훈의 목소리로 영화는 시작하여, 듣지 못하는 동생의 한쪽 시선으로 영화는 끝난다’(깡패들과의 싸움에서 동생은 한쪽 눈을 다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지연된다. 한쪽 눈으로 꿈을 보면서. 어쩌면, 이 영화에서 형제의 직업은 상징적인 의도이고, 자반고등어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대상에 대해 감독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 호모파베르

■ Story

소독가스를 쫓아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소년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시각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긴장하는 어머니와 아들. 밥을 먹다 돌을 씹은 아버지는 돌과 쌀을 골라내는 벌을 부여하고, 아들의 교육에 들어간다. 방안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아버지의 가르침들. 한편, 고도리점의 믿음에 따라 당당하게 집을 나간 어머니는 수박을 핑계로 다시 들어오고, 아들은 아버지의 호통과 어머니의 비명을 들으며 환상에 빠진다.

■ Review

먼저, 이 영화는 전혀 심각한 영화가 아니므로 6, 7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내뿜는 소독차의 흰 연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상도 싸나이 아버지가 심수봉의 무궁화를 읊조린다고 해서, 그런 아버지가 말끝마다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며 관습과 억압의 교육적 태도를 강요한다고 해서, 극단적인 하이 앵글과 로우 앵글과 광각을 오가며 폭력적 가장의 실체를 부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벽에 붙어 있는 김좌진 장군의 포스터가 경직된 민족주의에 관한 따끔한 일침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혹시 이것이 한국의 근대사에 관한, 즉 박정희식 민족민주주의에 관한 날카로운 알레고리가 아닐까 하는 질문은 던질 필요가 없다. <호모파베르>는 과잉의 ‘스타일’을 추진하며 희극의 정서들을 자극한다. 그 묘사들은 신속하게 흡수되고 각인된다. 무자비한 아버지. 멍청한 어머니. 어리둥절한 아들. 이 셋이 뭉쳐 이 영화를 색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색다르게 웃기다는 점’, 이것이 이 영화의 장점인 듯 보인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즉 시트콤 스타일의 효과를 위해서 역사를 부려먹는다는 것은 장난끼와 역사가 타협되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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