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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음악의 발자취,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이은 빔 벤더스의 음악 다큐멘터리. 편안하게 듣고 보고, 즐기면 된다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을 가능하게 했던 초안자는 다름 아닌 마틴 스코시즈였다. 스코시즈는 6명의 감독에게 블루스 음악의 발자취를 뒤좇아보는 <더 블루스> 시리즈를 제안했고, 빔 벤더스의 <소울 오브 맨>(이 영화의 원제이며,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동명타이틀 곡)을 포함해 <고향에 가고 싶다>(마틴 스코시즈), <피아노 블루스>(클린트 이스트우드), <레드, 화이트 그리고 블루스>(마이크 피기스), <아버지와 아들>(마크 레빈), <악마의 불꽃에 휩싸여>(찰스 버넷), <멤피스로 가는 길>(리처드 피어스)이 스코시즈의 지휘 아래 만들어져 TV에서 연작으로 상영되었다. 90여분 내외로 완성된 그 작품들 중 처음으로 빔 벤더스의 영화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이 스크린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20세기 초 블루스의 숨겨진 명인을 찾아 떠나는 빔 벤더스의 음악 여행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은 그 음악적 기원의 처연함을 한없이 서정적인 음조로 전할 뿐 아니라 그저 들으면서 감상하기만 해도 아름다운 곡들로 가득하다. 빔 벤더스는 자신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세명의 블루스 뮤지션 블라인드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 J. B 르누아르의 음악과 삶에 영화의 초점을 맞추면서, 실제 자료화면의 한계를 재치있게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진 재현 화면과 역사적 사건들을 담고 있는 현장 기록화면과 그들의 곡을 리메이크하여 부르는 후대 뮤지션들의 공연장면과 그들 시대의 사회적 코멘터리들을 적절하게 배치해나간다.

영화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음성이 우주로부터 내려와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식으로 시작하는데(1977년 나사가 쏘아올린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곡 〈Dark was the Night-Cold was the Ground>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단지 영화의 한 부분에서 등·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음성으로 영화 전체를 설명하면서 스킵 제임스와 J. B 르누아르의 음악적 삶을 소개하는 역할까지도 맡는다.

그런데, 이미 죽은 고인을 화자로 등장시킨다는 설정이 바로 이 영화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빔 벤더스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과 스킵 제임스의 자료화면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둘의 이야기를 1920, 30년대 당시 쓰였던 16프레임 수동식 회전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한 뒤에 극화하게 된다(그 과정에서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목소리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로 유명해진 로렌스 피시번이 맡게 된다. 그런데 그 음성이 꽤 감미롭다). 이로써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은 빔 벤더스가 창조해낸 가상의 블라인드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의 모습 위에 그들의 실제 연주와 노래가 덧입혀지면서 묘한 현실과 허구의 조화가 생겨난다.

빔 벤더스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이야기에서 1930년대 몇장의 앨범을 내고 사라졌다가 30년이 지나서야 다시 블루스계에 복귀한 스킵 제임스의 신화로 옮겨간다. 불후의 명곡들을 녹음한 뒤 단돈 40달러를 받고 사라진, 종교계에 헌신하며 몇 십년을 살아온, 우연히 다시 발견되어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가 숨을 거둔 스킵 제임스의 드라마틱한 삶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는 J. B 르누아르이다. 학생 시절 우연히 존 메이올의 노래 〈J. B 르누아르의 죽음>을 들었던 빔 벤더스는 그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고, 스웨덴 출신의 한 부부가 생전 J. B 르누아르의 모습을 담은 필름을 어렵사리 보게 된다. 그 장면이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렇게 세 아티스트의 음악과 삶을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의 유대감으로 엮은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은 빔 벤더스의 전작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비견할 만큼의 감동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루 리드, 카산드라 윌슨, 로스 로보스, 닉 케이브 등 현재의 많은 거장들이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노래들도 흥미를 더해준다. 비록,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라이 쿠더와 함께 쿠바 인민의 음악적 정서를 매끄럽게 포장해서 자기 영화로 권력화해버렸다는 비난 역시 받았지만, 빔 벤더스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훌륭한 아티스트와 음악을 식별할 줄 아는 훌륭한 음악적 감식안을 가진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어찌보면 불운이고, 어찌보면 재능이지만 때때로 빔 벤더스는 창조적 예술가의 자리에 있을 때보다 취향을 전제하고 자세를 낮춘 평전가의 위치를 자처할 때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낸다. 어쨌거나,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이 그 감독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보고 듣기에 편안한 영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 세명의 블루스맨, 그들은 누구인가?

빔 벤더스가 존경과 열정을 동시에 헌사하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 J. B 르누아르는 어떤 아티스트들인가? 그들은 블루스 음악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곡의 제목을 가져와 영화에 붙일 만큼 빔 벤더스가 좋아하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902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년 시절 아버지와 싸우던 양어머니가 뿌린 양잿물에 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길거리 공연으로 기타를 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뛰어난 슬라이드 기타리스트였다. 종교에 애착을 보이면서 가스펠 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1927년 12월3일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6곡을 녹음한 것을 시작으로- 이중에는 그의 대표작 〈Dark was the Night-Cold was the Ground>가 있다- 약 30여곡을 레코딩했지만, 1930년대 이후에는 텍사스 거리에서 공연하며 보냈다. 아내 안젤린을 만나 음악생활을 같이했고, 밥 딜런, 에릭 클랩튼, 라이 쿠더 등이 그의 커버곡을 발표했다. 〈Dark was the Night-Cold was the Ground>는 라이 쿠더의 <파리, 텍사스> 음악작업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델타 블루스맨으로 통하는 스킵 제임스는 1902년 미시시피 벤토니아에서 태어났으며 기타와 피아노에 능통했다. 일명 벤토니아 사운드를 독창적으로 구사했다. 1920년대 멤피스에서의 거리 음악 생활을 지나, 1931년 파라마운트사에서 몇장의 앨범을 제작했지만 불운한 시대의 외면과 회사의 파산으로 곧 잊혀졌다. 그뒤 음악계를 떠나 침례교회 목사가 되어 1960년 초까지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964년, 존 파헤이가 병원에 있는 그를 찾아냈고, 포크 페스티벌과 블루스 콘서트에 참가하면서 잊혀진 이름을 다시 알렸다. 그의 대표곡 중 〈Devil Got My Woman>은 로버트 존슨의 〈Hellhound on My Trail>의 기초가 되었고, 〈I'm So Glad>는 에릭 클랩튼이 소속되어 있던 로큰롤 그룹 크림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1969년 암으로 사망했다.

J. B 르누아르는 1929년 미시시피 몬티첼로에서 태어났으며,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라이트닝 홉킨스, 아서 크러더프 등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뉴올리언스의 음악 생활을 지나 1940년대 시카고에 정착했고, 1951년 첫 번째 싱글 〈Korea Blues>를 발표한다. 1954년 〈Mama Talk To Your Daughter>와 1958년 몇곡의 싱글을 발표하면서 블루스계의 명인으로 떠오른다. 그의 곡 중 〈Vietnam Blues>는 빔 벤더스가 아끼는 노래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닮았을 뿐 아니라 미국의 사회적 현안들을 음악적 주제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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