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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부시 프로파간다 영화, <화씨 9/11>

‘스토킹 무비’의 대가 마이클 무어의 안티-부시 프로파간다 영화

올해 칸영화제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궁지에 몰린 영화미학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대안적인 영화형식으로서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심사위원장이었던 타란티노의 궁색한 변명이야 어찌됐건 <화씨 9/11>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누가 뭐래도 확실히 정치적인 제스처였다고밖에는 달리 판단할 길이 없다. 무어는 화씨 911도가 “자유가 불타는 온도”라고 말했다지만, 생각건대 그것은 영화가 타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온도이기도 한 것 같다. 그는 기꺼이 미학을 찢어발기고 논리를 포기하면서 프로파간다의 길을 선택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화씨 9/11>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엔 한참 못 미치는 영화이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부시 대통령의 온갖 행태들에 반감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원할 법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또 들려주는 영화다.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의 긴밀한 유착관계, 자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기 위해 공화당 정부가 취한 온갖 비열한 술수들, 명분없는 전쟁에 투입됐다 죽거나 다친 젊은이들, 졸지에 집과 가족을 잃고 분노에 차 있는 이라크 민간인들 등등 <화씨 9/11>이 다루고 있는 이러한 것들은 조금도 새로운 것은 없지만 여하간 우리가 공적인 미디어들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강도 높게, 또 선동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로저와 나>(1989)에서부터 이미 분명해졌듯이 그의 장기는 브리콜라주(bricolage)와 캐리커처(caricature),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킹(stalking)에 있다. 즉 뉴스화면, 극영화, 그리고 직접 촬영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조합하고, 특정 사안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 하나를 골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퍼부어대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황색 저널리즘의 좌파적 전유라 할 만한 것이다. 또한 무어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그 특유의 과장과 조롱, 풍자에 의해 변형되어 지극히 희극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물론 <화씨 9/11>은 (9·11 테러 자체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장시간의 암전 뒤에 뉴욕시민들의 놀란 표정을 하나씩 보여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무어의 전작에 비하면 약간은 조심스러워졌고 또 신중해진 게 사실이다.

<화씨 9/11>에서 무어가 제기하는 비판과 주장은 넓게 보면 대부분 수긍할 만한 것이다. 솔직히 감히 누가 그의 견해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어떤 점에서 무어의 논변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일종의 ‘우물에 독 타기’(poison in the well)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문제는 그의 견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개되는 방식에 있다. 무어는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2002), 그리고 <화씨 9/11>에서 언제나 쟁점이 될 만한 핵심적인 문제를 곧바로 제기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수다는 종종 지엽적인 것으로 향하고 또한 지엽적인 것을 과장함으로써 원래의 논지를 흐리곤 한다. ‘무능한’ 대통령 부시가 백악관 참모들과 결탁하여 9·11 사태에 뒤이은 대중의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게 된 경위를 비판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여기엔 위험천만한 제노포비아(xenophobia)적 사고 또한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무어는 9·11 직후 미 정부가 빈 라덴 가문의 일원들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치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해, 부시 가와 빈 라덴 가의 오랜 유착관계를 파헤치고 나서, 갑자기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미국 경제의 7%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가- 전형적으로 마이클 무어적인 치기어린 질문, “만일 그들이 돈을 다 빼내간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요?”- 를 강조한다.

결말부에 이르기까지 <화씨 9/11>은 9·11 사태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치의 역학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침묵한다. 대신 순박하고 애국적인 시민들이 국가권력의 거짓에 속아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가를 고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점에서 <화씨 9/11>은 미국인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보수적인 백인 민주당원임을 자처하는 한 여성이 이라크로 파병된 아들을 잃고 나서 백악관을 서성이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이다. 무어 자신이 상원의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식들을 이라크로 보내라고 권유하는 것은 <화씨 9/11>의 논리적 허점들을 다분히 치졸한 방식으로 메워보려는 시도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화씨 9/11>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이 얄팍한 지성과 조우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폐단을 안고 있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일씨 피살사태 및 이라크 파병문제 등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재의 상황하에서라면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안티-마이클 무어’ 영화제

보수주의자들, 무어에게 이의를 제기하다

제작과정에서부터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화씨 9/11>은 이제 미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 작품은 부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때 마이클 무어의 반대자들이 ‘안티-마이클 무어’ 영화들을 모아 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제는 미국 내 거물급 보수주의자들의 후원을 받아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올해 9월9일에서 11일까지 댈러스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략 24편 정도의 영화가 상영될 것이라 한다. 이 영화제를 기획한 이들은 텍사스에 거주하는 변호사 부부인데, 남편인 짐 허버드는 영화제를 구상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언제나 영화 속의 문화적, 정치적 메시지들에 흥미를 느껴왔다. 솔직히 영화 속에 나타난 그러한 메시지들은 언제나 진보주의적이었다. 근 40년 동안 좌파들이 독점해왔던 이러한 영화들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하려 한다.” 허버드가 현재 교섭 중인 작품 가운데는 <마이클 무어는 미국을 증오한다>(마이클 윌슨)와 <마이클과 나>(래리 엘더) 같은 영화들이 있는데, 이 두 영화의 연출자들은 모두 무어가 자신의 영화에서 그러했듯이 그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한편 마이클 무어는 이런 영화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영화제에서는 노골적인 ‘안티-마이클 무어’ 영화들뿐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들도 상영될 예정인데, 역시 영화제의 보수주의적 색채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들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여간 <화씨 9/11>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급기야 다큐멘터리 영화계에 대대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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