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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정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의 울림,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홍성남(평론가) 2004-07-27

어느 동정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그와 동시에 그 세상 속 아이들에 대한 근심을 멈추지 않게 하는 정서적 흡인력

트럭 뒤칸에 몸을 실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고 나이들게 하면서 저승으로 이끄네….” 이때에 영화를 보는 우리가 어떤 당혹감을 느꼈다면, 인생의 경로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이런 식의 노래는 인생의 여러 험한 굴곡들을 거쳐온 어른들의 입에서나 나올 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느낀 당혹감의 원인은 또 있었다. 영화 속 쿠르드족 아이들, 어린 나이에 생존을 위해 힘쓰다 삶의 쓰디쓴 맛을 본 그 아이들은 그 같은 노래를 부를 ‘자격’(?)이 충분히 있는 이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혹해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후 독일의 참상을 다뤘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영년>(1947)에서 이미 봤듯이, 통상적인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의 조건 속에 처해 있을 때 아이들의 성장은 보통의 속도를 넘어서며 이뤄진다. 바흐만 고바디의 인상적인 데뷔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아주 슬픈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아윱은 열두살의 나이에 가장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 소년이다. 부모 모두를 잃어버린 그는 자신을 포함한 다섯명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다. 식구 가운데에는 퇴행성 질병을 앓아 막내보다도 작은 열다섯살의 마디가 있는데, 그는 지속적으로 약과 주사가 제공되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어느 날 아윱은 의사로부터 마디는 수술을 받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몇달 더 삶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말도 덧붙여서. 마디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아윱은 이라크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꾼들과 동행한다. 동생(나이로 치면 형이지만)의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해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혹한과 지뢰와 무장강도 등의 위험 요소들로 가득한 지대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채택한 이란영화라고 하면 우리에게 절대 생소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운동화를 같이 신을 수밖에 없었던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천국의 아이들>(감독 마지드 마지디, 1997) 같은 영화를 이전에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렇지만 두 영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천국의 아이들>은 힘든 삶의 조건을 견뎌내는 아이들을 그린 영화였지만 강조점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용케 이어가는 아이들의 순수함쪽이어서 그들 삶의 조건과 그 가혹함은 결국 슬그머니 배경으로 밀려나버렸다. 오히려 그런 시선의 순진함 때문에 그것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 불편하게 다가오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반대의 예를 보여준다. 이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 쿠르드족 아이들이 놓인 그 혹독한 현실을 직시하려 한다. 그 냉정한 시선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영화로 만들어준다.

<천국의 아이들>에서와 비슷하게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아이들도 힘겨운 삶 속에서 순수한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착한 이들이다. 동생들을 위해 삶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아윱, 아파하는 마디에게 진심 담긴 위안의 입맞춤을 건네는 여동생 아마네, 마디를 고치겠다며 이웃 마을로 팔려가다시피 시집가는 누나 로진, 그들 모두는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맑은 눈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가진 진심과 선의가 그만큼의 보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한층 냉정해지고 또 좀더 리얼해진다. 이들 사이의 우애는 결국 서로간의 이별을 낳을 뿐이다. 마디를 위하는 마음을 가졌던 로진은 시집을 가면서 가족을 떠나고, 마디와 아윱은 밀수길에 오르면서 사랑하는 여동생과 헤어진다. 이들은 그들의 착한 마음을 결코 헤아려주지 않는 동정없는 세상 속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자연히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정서적인 흡인력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가 되었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간간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곤 하던 영화의 그 정서적인 힘은 종결부에서 절정에 달한다. 아윱은 이번에는 이라크로 가서 로진의 신부값으로 받은 노새를 팔아 꼭 마디를 수술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와 일행의 앞길을 무장강도들이 가로막는다. 필사적으로 도망을 쳐야 할 상황이지만 추위를 견디도록 술을 너무 많이 먹인 탓에 노새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버린다. 일어나라며 노새의 뺨을 때리는 아윱의 눈물 가득한 얼굴 속에 담긴 것은 마디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다. 이때의 아윱과 마디의 고운 눈을 주의 깊게 본 사람에게 이건 가슴속에서라도 눈물 한 방울이나마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정말이지 슬픈 장면이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무려 1년을 기다려 찍었다는(눈이 가득한 배경이 필요했기에) 이 장면의 서정성은 냉혹함의 수준에 오르고 그 시각적 아름다움은 지켜보기에 괴로운 것이 된다. 결국 마지막에 우리가 보는 것은 철망을 넘어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아윱과 마디와 그들의 노새이다. 그렇게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그들의 발걸음, 그것은 곧 그들이 스크린 너머 현실로 진입하는 발걸음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머릿속으로 걸어들어오는 행보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 대한 걱정을 거둬들일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라도 들면 더 그렇게 된다. 혹시 (진정한) 주인공도 아니면서 굳이 아마네가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것은 그 애가 유일하게 집을 지키고 있는 ‘생존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면.

:: 감독 바흐만 고바디

“나의 영화들은 가혹한 풍토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이란에서 주목받는 젊은 감독 바흐만 고바디(1969∼)는 흥미롭게도 이란영화의 두 거목,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둘 다와 긴밀히 작업한 적이 있다. 우선 그는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1999)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키아로스타미는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키아로스타미를 매우 존경하지만 그가 하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 순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겨울과 혹독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나의 모든 영화들은 가혹한 풍토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 고바디는 마흐말바프로부터는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는 마흐말바프의 딸인 사미라가 만든 <칠판>(2000)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마흐말바프와 가깝게 지낼 기회를 가졌고 마치 영화 학위를 딴 것처럼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고바디의 장편 데뷔작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과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그를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에 등극시켰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이전에 이미 여러 편의 뛰어난 단편영화들을 만들어 그 가운데 다수가 이란 밖에서 갈채를 받은 바 있다. 이란에서 출생한 쿠르드인인 고바디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후에 만든 두 번째 장편영화 <고향의 노래>(2002)에서도 자신의 인종적 뿌리인 쿠르드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아들과 함께 악단을 결성해 사라진 아내를 찾는 쿠르드족 악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 고바디는 지난해 <다프>라는 영화를 가지고 전주영화제 디지털 3인3색 섹션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영화는 다프라는 이름의 이란 악기를 만드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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